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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조선의 공부벌레'들을 찾아서, 성균관

고려 때 만들어져 조선 최고 교육기관으로…그 시절에도 커닝·대리출석·대리시험

2020.05.12(Tue) 13:36:06

[비즈한국] 수도권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아이들의 등교 개학이 일주일 더 연기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온라인 수업이 이어지니 자칫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잃기 쉽다. 집중해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는 줄 알았던 아이 방에 들어가보니, 방송은 저 혼자 떠들고 아이는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더라는 하소연이 심심치 않은 것도 이런 이유인 듯. 

 

이럴 때 조선 최고의 공부벌레들이 생활했던 성균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치열하게 공부했던 선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을 테니. 성균관 곳곳에 담겨 있는 재미난 이야기는 덤이다.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와 함께 조선 최고의 공부벌레들이 생활했던 성균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오늘날로 치면 ‘대강의실’쯤 되는 명륜당 전경. 사진=구완회 제공

 

#개성의 고려 성균관, 서울의 조선 성균관

 

서울 종로구 명륜동 3가 53번지. 조선의 국립대학 성균관은 600년 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이야 성균관대학교 정문 한쪽 구석에 보일락 말락 숨어 있지만, 고려 충선왕 때(1308년) 태어난 성균관은 조선 시대 내내 팔도의 대표 공부벌레들이 향학열을 불태웠던 곳이다. 

 

가만, 성균관이 조선이 아니라 고려 때 생겨났다고? 그렇다면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 아니라 고려 수도 개경(개성)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맞다. 성균관이 처음 세워진 곳은 한양이 아니라 개경이었다. 지금도 개성에는 ‘고려 성균관’이 남아 있다. 옛 모습 그대로의 건물에 고려 시대 역사 유물을 모아놓고 ‘고려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대성전은 공자의 위폐를 모신 곳으로 문묘라고도 불렀는데, 이곳에서 해마다 공자를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 사진=구완회 제공

 

고려 시대 태어난 성균관이 명실상부 국가 최고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은 것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다. 개경에서 한양으로 이사 온 성균관은 조선 시대 최고 학부였다. 그런데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유생들도 요즘 대학생들과 비슷한 점이 많았단다.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시험을 자주 봤을 뿐 아니라 대리 출석이나 커닝 같은 일도 흔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고시나 입사시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관문인 과거를 통과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했다.

 

20채에 가까운 옛집이 빼곡한 성균관의 대표 건축물은 대성전과 명륜당이다. 대성전은 공자의 위폐를 모신 곳이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좌우의 동무와 서무가 있는 영역이 문묘, 즉 제사 공간이다. 이곳에서 해마다 공자를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 명륜당은 오늘날로 치면 ‘대강의실’쯤 되는 곳이다. 이 밖에도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도서관인 존경각, 학생식당인 진사식당, 과거를 치르던 비천당 등이 있다. 

 

대성전 앞 500살이 넘은 은행나무. 사진=구완회 제공

 

#알고 보면 더 재미난 성균관 건물들

 

아무 지식 없이 보면 그냥 건물의 나열이지만 알고 보면 성균관만큼 재미난 곳도 드물다. 정문 앞 하마비(下馬碑)는 말을 내리는 곳으로, 자가용처럼 말을 타고 다니던 유생들도 이곳부턴 걸어야 했다. 아무리 고관대작의 자녀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마비 옆에는 탕평비가 자리 잡았다. 어린 유생들에게까지 퍼진 당쟁의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 영조가 세운 비석이다. 이건 당시 당쟁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성균관 정문 앞 하마비(下馬碑)는 말을 내리는 곳으로, 자가용처럼 말을 타고 다니던 유생들도 이곳부턴 걸어야 했다. 사진=구완회 제공


명륜당에선 강의뿐 아니라 시험도 봤다. 시험은 매일, 열흘마다, 달마다, 해마다 치렀는데, 이걸 빼먹거나 남의 답안을 베껴 내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이런 부정행위는 과거 시험에도 이어졌다. 물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국가의 모든 제도가 문란해진 조선 후기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버젓이 다른 사람과 함께 들어가 대리시험을 치르는 일도 공공연히 이루어졌단다.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다 사람이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권력층은 이런 수단을 총동원해서 자신의 아들을 과거에 합격시킨 것이다. 

 

평균 정원이 200명이던 성균관은 기숙사 생활이 원칙이었다.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의 방은 각 28개, 도합 56개의 방이 있으니 한 방에 묵는 인원은 평균 4명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모든 유생들이 공평하게 방을 나눠 쓴 것은 아니었다. 학생회장인 ‘장의’는 독방을 썼고, 초시를 통과한 ‘상재생’들은 두서너 명이 한 방을, 일종의 보결생(결원을 채우는 학생)이던 ‘하재생’들은 열 명까지도 한 방을 썼단다.

 

진사식당에서는 밥을 먹으며 동시에 출석체크도 이루어졌다. 아침과 저녁을 모두 이곳에서 먹으면 1점인데, 이렇게 300점을 모아야 과거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대리출석을 하거나 ‘부모님 병환’ 같은 핑계를 대고 밖으로 돌아다녔단다. 아마 그때도 학생식당 밥은 맛이 없었나 보다.​
 

평균 정원이 200명이던 성균관은 기숙사 생활이 원칙이었다. 기숙사인 동재(사진)와 서재의 방은 각 28개, 도합 56개의 방이 있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메모>


성균관 

△위치: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로 31

△문의: 02-760-1472

△운영 시간: 09:00~18:00, 연중휴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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