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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독일 가정 미니멀리즘 비결은 슬기로운 '켈러' 생활

집 외부에 개별 창고인 '켈러' 제공돼…활용법에 따라 삶의 질까지 달라져

2020.07.30(Thu) 10:21:52

[비즈한국] 3년 전 베를린살이를 처음 시작한 두 달짜리 임시 숙소는 방 하나, 거실 하나 그리고 독립된 작은 부엌이 하나 있는 작은 집이었다. 2층 주택에 4가구가 사는, 한국으로 치면 다가구 주택이었는데, 한국에서 출발한 짐이 도착하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작지 않은 집이었다. 

 

방에는 세 식구가 충분히 자고도 남을 사이즈의 침대 하나와 화장대로 쓸 수 있는 서랍장, 그리고 옷가지와 이불 등이 들어가는 두 칸 자리 붙박이장이 전부였다. 방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거실은 경우에 따라 침실로도 쓸 수 있었는데 많은 독일 가정에서 사용하는 침대 겸용 소파 덕분이었다. 낮에는 소파로 사용하고 밤에는 펼쳐서 침대로 사용하는 식. 40인치가 채 되지 않는 사이즈의 텔레비전과 책장 등의 가구가 비치돼 있었다.

 

독일엔 집집마다 켈러라 부르는 지하창고가 하나씩 있다. 일부는 세탁실이 켈러에 있는 경우도 있다. 사진=박진영 제공


독일 집집마다 있는 야외 테라스는 커다란 창을 미닫이로 달아 실내용 베란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아마도 작은 집 사이즈를 고려한 듯했다. 그 베란다 공간은 남편의 홈오피스로도, 매끼 식사 공간으로도 활약했다. 작은 사이즈의 부엌에서는 식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독일 집 필수인 식기세척기도 갖춰져 있지 않았던 데다 다른 공간들과 철저히 분리된 형태의 그 집 부엌에서는 오랜 시간 머물고 싶지 않아 식사도 가능한 간단한 방식으로 해결하곤 했었다. 5kg짜리 작은 세탁기와 어른 한 명 들어가면 여유 공간이 별로 없는 작은 샤워 박스가 설치된 욕실은 기본적인 생존에만 충실한 것 같았다. 

 

많은 것이 부족할 수 있었지만, 잠깐 살 곳이라 생각해서였는지 아니면 기본 생활이 가능하도록 웬만한 가구며 집기가 다 갖춰져 있어서였는지 크게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매끼 테라스까지 날라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햇빛 잘 드는 곳에서 ‘초록초록’한 마당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켈러 공간. 한 집 당 10㎡(3평) 정도의 켈러가 제공되며, 아파트에서 가장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는 곳이다. 사진=박진영 제공


처음 만난 날, 집주인은 이것저것 설명해주면서 지하창고에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으니 필요할 때 창고에 가서 사용하면 된다고, 수납할 물건이 있으면 그곳에 보관해도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대문 쪽에서 바라보면 지하 차고 옆에 딸린 공간이 집주인이 말한 지하창고인 모양이었는데, 그곳에 거주하는 두 달 간 한 번도 지하창고를 이용할 일이 없었다.

 

여름이라 침구가 단출하니 대형 세탁기까지는 필요하지 않았고, 써본 적 없던 건조기는 더더욱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임시 생활자에게 창고에까지 보관해야 할 물건이 있었을 리도 만무.

 

현재 거주하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그제야 지하창고의 위력을 알게 됐다. 독일 집에는 ‘켈러’라 부르는 지하창고가 집집마다 하나씩 있다. 전용 주차 공간처럼 매월 돈을 지불해야 하는 공간이 아닌 기본 제공 공간이다. 

 

집을 보러 왔을 때 관리인은 지하 켈러를 보여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구당 10㎡(3평) 정도의 작지 않은 켈러가 하나씩 배정됐는데, 면적도 컸지만 쾌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음 입주하는 새 아파트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창고’ 치고 꽤나 공들여 만들었다. 

 

베를린 생활 초기, 두 달 간 생활했던 임시 거주지. 네 가구가 사는 2층짜리 단독주택은 넓지 않았지만 사는 데 큰 불편이 없었다. 켈러의 활용이 아마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사진=박진영 제공


처음엔 켈러를 한국에서처럼 ‘창고’ 개념으로 잘 안 쓰는 물건, 부피가 큰 물건을 보관하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이삿짐을 쌌던 튼튼한 박스 수십 개를 3년 뒤 귀국 때 쓸 요량으로 켜켜이 쌓아두었고, 한국에서 가져왔지만 불필요하게 된 몇 가지 가전제품 등을 늘어놓았다.

 

어느 날 우연히 옆집 켈러를 보게 됐는데, 선반 여러 개를 짜 넣은 그곳은 일목요연하게 수많은 물건들이 정리돼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안 쓰는 물건이 아닌, 다만 지금 계절에는 쓰지 않는 필수품들로 보였다.

 

그랬다. 켈러는 ‘창고’가 아닌, ‘또 다른 집’이었다. 물건들을 집안 여기저기 쌓아두지 않고, 계절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지하 켈러에 두고 집은 최대한 미니멀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봄이 되면 겨울 이불, 옷가지, 크리스마스 물품을 켈러에 갖다 두고, 가드닝을 위한 물품을 꺼내오는 식. 

 

이웃들이 박스나 수레에 뭔가를 싣고 켈러에 내려가는 것을 보곤 했는데, 물건의 대이동이 필요한 시점이 오면 켈러를 오가곤 했던 것이었다. 그제야 작은 집에서 넓게 살 수 있는 이유를 알게 됐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만 덜어내도 집은 넓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일 년 내내 옷과 이불을 수납할 대형 옷장이나 신발장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일부러 냉장고 없이 켈러에 식재료나 병조림 등을 보관하며 산다는 독일 거주 한국인 부부의 이야기도 들었다. 여름이 되도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나는 3년간 켈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3년 후 사용할 이삿짐 박스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해 세팅을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켈러 덕은 톡톡히 보고 있다. 옷장도 없는 집에 보관이 쉽지 않았던 겨울용 온수 매트, 겨울용 부츠나 여름용 샌들 등의 신발들, 지금 당장 읽지 않지만 언젠가 필요할 책, 크리스마스 용품 같은 계절에 맞지 않는 소품들까지, 집안 어딘가를 차지했을 물건을 켈러가 담당하고 있으니까. 

 

몇 해 전 서울의 한 신축 고급 아파트가 지하에 가구당 창고 하나씩 배정해줬다는 말을 들었다. 직접 가봤다는 지인에 따르면, 대부분 잘 안 쓰는 캠핑용품 같은 덩치 큰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어 독일의 켈러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고 했다. 지하창고를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버리지 않고도 미니멀리즘이 가능할 것 같은데 언젠가 한국에서도 일상화될 날이 있을까.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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