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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묘 주인처럼 수난, 장희빈 아들 경종 잠든 의릉

중앙정보부 '정원'처럼 쓰이다 최근 복원…경종과 왕비 선의왕후 함께 묻힌 '쌍릉'

2020.10.27(Tue) 14:06:24

[비즈한국] 경종, 하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장희빈의 아들’이라 하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서른셋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용상보다 병상에 더 오래 있다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 이렇다 할 업적이 없을 수밖에. 조선이 멸망하고 대한민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그의 무덤은 권력기관의 정원처럼 쓰이다 최근에야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덕분에 아는 이도, 찾는 이도 적어 한가로운 산책이 가능하다.

 

경종과 왕비 선의왕후가 잠든 서울 성북구의 의릉. 오랫동안 중정(안기부)의 정원처럼 쓰이다가 몇 해 전에 복원을 마치고 공개되었다. 쌍릉이 일반적으로 봉분이 나란한 데 반해 의릉은 봉분이 앞뒤로 자리했다. 풍수지리상의 이유라고 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권력 기관의 정원으로 쓰이던 왕릉

 

의릉이 처음 일반에 공개된 것은 지난 1996년. 그 전까지는 (그 이름도 살벌했던)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정원’으로 관리되었단다. 마치 경복궁 태원전 일대에 꽤 오랫동안 청와대 경비군인들이 주둔했던 것처럼. 경복궁이야 청와대가 옆에 있으니 그렇다 치고, 의릉의 일반인 출입을 막은 것은 명분이 약한 일이었다. 

 

자기들 정원처럼 쓰면서 제대로 관리라도 했으면 다행이련만, 정말 자기들 정원인양 땅 파서 연못 만들고, 그 위로 다리 놓고, 주변에 불탑까지 가져다 놓았다(하필이면 유교 국가인 조선의 궁궐에 석탑을 가져다 놓은 일제와 똑같은 짓을!). 그래도 몇 해 전에 복원을 마쳐서 지금은 왕릉의 위엄을 어느 정도 되찾았단다. 

 

이 안쓰러운 왕릉의 주인은 경종이다.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천신만고 끝에 병약한 몸으로 오른 옥좌에선 권력을 잡은 신하들에 휘둘리다 결국 4년 만에 세상을 떴다. 혹 왕릉의 최근 역사 또한 이 무덤 주인의 ‘팔자’ 때문은 아니었을까.

 

경종의 묘를 지키는 무석인(위)과 석호. 사진=구완회 제공

 

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는 일개 궁녀에서 왕비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 아니면 뛰어난 미모 때문에 신데렐라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궁녀로 입궐한 것은 궁궐 안에 한 사람이라도 더 ‘자파 사람’을 심어 넣으려는 남인 세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기획입궁’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녀를 입궁시킨 남인 세력도 장희빈이 숙종의 ‘승은’은 입고 ‘원자 아기씨’를 생산하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예상치 못한 국왕의 로맨스와 맞물려 당시의 정국은 숨 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선 남인의 라이벌이자 당시 집권 세력인 서인이 장희빈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서인을 견제해 왕권을 강화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숙종은 이것을 계기로 서인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그리하여 서인을 대신해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고, ‘남인의 호프’였던 장희빈은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불행한 어머니, 안쓰러운 아들

 

하지만 남인 세력의 기고만장을 계속 지켜봐줄 숙종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서인 세력을 이용해 남인 세력을 몰아낸다. 덕분에 장희빈은 왕비에서 후궁으로 강등되고, ‘서인들의 상징인물’ 인현왕후가 중전의 자리로 복귀한다. 사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얼마 후에 세상을 뜬 것. 장희빈과 남인에게 새로운 기회가 온 것일까? 하지만 역사는 장희빈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이미 애정이 식은 숙종은 사약으로 화답한다. 

 

장희빈을 다룬 TV 사극에서 단골로 나오는 장면이 바로 사약을 안 먹겠다고 버티는 장희빈의 모습이다. 심지어 이때 장희빈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싶다 하고는, 경종의 생식기를 ‘잡고 늘어져’ 이 때문에 경종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병약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하긴, 꼭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눈앞에서 어머니가 이렇게 죽는 것을 본다면 어떤 자식이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왕위에 올라 자신의 포부를 펼쳤던 정조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하지만 경종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나 보다. 용상보다 병상에 더 오래 머물다 승하하셨다고 하니. 불행했던 왕의 왕비 또한 오래 살지 못했다. 경종이 죽고 6년 후 왕비 선의왕후 역시 26살의 짧은 생을 마쳤다.

 

의릉의 정자각. 중정 시절, 이곳과 홍살문 사이에 인공연못이 조성되기도 했다. 사진=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

 

경종과 선의왕후가 함께 잠든 의릉은 쌍릉이다. 하지만 왕과 왕비의 봉분이 나란히 있는 다른 능과는 달리 의릉의 봉분은 앞뒤로 자리했다. 풍수지리상의 이유라고 하는데, 그래서 의릉을 ‘동원상하릉’이라 부르기도 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권력에 휘둘린 불행한 왕. 이제는 원래 모습을 찾은 왕릉에서 편안히 쉬시길. 

 

<여행메모>

 

의릉 

△위치: 서울시 성북구 화랑로 32길 146-20

△문의: 02-964-0579

△이용시간: 11월~1월 09:00~17:30, 2월~5월/9월~10월 09:00~18:00, 6월~8월 09:00~18:30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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