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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흥망] 동양그룹 사라졌지만 '동양사태' 후유증은 생생

2013년 기업회생 신청 후 계열사 뿔뿔이 매각…현재현 전 회장 7년째 복역, 오리온만 남아

2021.01.14(Thu) 18:06:48

[비즈한국] 동양그룹은 1960년대 10대 대기업에 포함된 재벌그룹으로 제과업으로 시작해 시멘트, 금융업까지 진출하며 넓은 사업영역을 확보했다. 하지만 2006년부터 심각한 자금난을 겪으며 회사채와 CP(기업어음)를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하며 기업을 유지했다. 2013년 10월 (주)동양 등 핵심 계열사 5곳이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나 결국 4만여 명의 피해자가 생긴 ‘동양사태’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양그룹은 1956년부터 2013년까지 활동한 기업으로 현재는 해체됐다. 2013년 청계천로에 자리했던 동양 사옥. 사진=연합뉴스

 

#과자로 시작해 건설, 금융업으로 

 

동양그룹은 1956년 고 이양구 회장이 적산기업인 풍국제과를 불하받아 동양제과공업(주)로 상호를 변경하며 시작됐다. 이양구 회장은 1916년 함경남도 함흥군 출신으로 10대 중반 나이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에 취업한다. 1947년 월남해 서울에서 과자판매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지만 6‧25전쟁으로 모두 잃게 된다. 

 

이후 1951년 부산에서 설탕과 밀가루를 수입 판매해 다시금 부를 축적했고, 1954년 제일제당에 설탕을 독점 판매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를 수차례 설립·해체하면서 경험을 쌓​은 이양구 회장은 동양제과공업(주)를 설립한다. 동양제과공업은 1956~1958년까지 껌·​사탕·​비스킷 생산시설을 설치했고, 1968년 초콜릿 생산시설을 마련했다. 1974년부터 초코파이 등 제품을 생산했다.

 

한편 이양구 회장은 동양제과공업을 인수한 이듬해인 1957년 귀속재산인 삼척시멘트(주)를 불하받아 동양시멘트로 사명을 바꾸고 시멘트 사업에 진출했다. 시멘트는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던 시절이었고, 삼척시멘트도 연간 생산량은 5만 톤 정도였다. 주변에서는 만류했지만 이양구 회장은 ​삼척시멘트 불하를 ​밀어붙였다. 

 

한국전쟁 이후 도시 재건 사업 덕에 시멘트 수요가 증가했고, 바다를 낀 동양시멘트 공장은 운송에 유리했다. 삼척시멘트를 인수한 이양구 회장의 선택은 옳았다. 동양시멘트는 설비를 늘려 100만 톤까지 생산량을 확보해 큰 성공을 거둔다.

 

1969년까지 순항하던 동양시멘트는 국내 시멘트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파산 위기를 겪었다. 금융긴축정책과 함께 은행 대출이 힘들어지자 이양구 회장은 사채까지 끌어서 사용했고, 그 빚이 불어 30억 원이 됐다. 연이자만 16억 원이었다. 동양시멘트는 1972년까지 빚에 허덕였다.

 

그해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8‧3 사채 동결 조치)’​을 공포함에 따라 동양시멘트는 파산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 경제 개발과 함께 시멘트 수요가 증가하며 다시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동양그룹은 1960년 동양산업개발, 1966년 동양건설진흥, 1984년 일국증권 등을 설립‧인수하며 중공업과 금융업으로 확장했다.

 

#사위 경영 시대와 오리온의 독립, 동양그룹의 해체

 

​1983년 ​이양구 회장이 고혈압으로 건강이 나빠지자 첫째 사위인 현재현 동양시멘트 사장이 그룹을 이끌었다. 6년 후인 1989년 이양구 회장이 사망하면서 현재현 사장이 시멘트와 금융업을 맡고, 둘째 사위인 담철곤 동양제과 부사장이 제과업을 이끌게 됐다.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사진=비즈한국 DB


금융업 진출은 현재현 회장이 대부분 지휘했다. 1984년 일국증권(동양증권), 1989년 동양생명, 1990년 대우투자금융(동양종합금융), 1996년 중앙투자신탁(동양오리온투자신탁)을 인수‧설립해 종합금융그룹으로 나섰다. 현재현 회장이 동양그룹을 이끌면서 동양그룹의 주력은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담철곤 동양제과 부회장은 동양마트, 오리온카툰네트워크 등을 설립해 유통업과 미디어 사업에 진출했다. 2001년에는 동양제과 등 16개 계열사를 들고 동양그룹 품에서 벗어나 오리온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현 회장이 이끌던 동양그룹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금융 계열사 부실로 크게 휘청였다. 정부는 주인 있는 금융사들에게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동양그룹의 주요 금융 계열사들은 퇴출위기에 놓였다. 현재현 회장은 자금 5000억 원을 투입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동양그룹 전체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동양그룹은 비금융 계열사가 금융 계열사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계열사들을 지켜왔는데, 자금 조달을 담당하던 시멘트 사업의 차입금과 적자가 증가하면서 연이자만 2000억 원에 달하는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동양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현재현 회장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09년부터 구조조정 등 여러 방법을 강구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후 동양그룹은 동양증권을 내세워 연 8%대의 고금리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무차별 발행하며 연명했다. 2013년 9월 은행권 대출이 1조 2000억 원, 회사채와 CP가 1조 8000억 원을 차지했다. 2013년 만기 도래하는 CP와 회사채만 각각 7523억 원, 3150억 원 규모였다. 현재현 회장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오리온그룹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당시 동양그룹이 9월까지 상환해야 할 회사채와 CP는 1070억 원이었다.​

 

결국 만기 도래한 회사채와 CP를 해결하지 못했고, 2013년 9월 30일 동양그룹은 (주)동양을 비롯해 자본잠식에 있던 동양레저, 동양인터네셔널 등 3개사에 기업회생을 신청한다. 다음날인 10월 1일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에도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동양그룹은 해체의 길로 들어선다. 현재현 회장은 사기‧배임 혐의로 기소됐으며 2015년 10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사기성 CP와 회사채를 발행해 개인 투자자 4만여 명에게 피해) 등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주)동양은 유진그룹에, 동양시멘트는 삼표그룹에 넘어갔고 나머지 계열사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동양그룹은 해체됐고, 오리온그룹만 남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정동민 기자 workhard@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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