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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주로 향하는 인류의 내비게이션 '펄사'

특정 주기로 펄스 방출하는 중성자별…우주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로 '배경 중력파' 감지

2025.08.18(Mon) 15:34:10

[비즈한국] 최근 ‘인생 영화’가 바뀌었다. 지난 6월 18일 국내 개봉한 ‘엘리오’로. 우주에는 과연 우리뿐일까? 인류가 오랫동안 간직한 이 위대한 질문에 답하는 가장 픽사다운 아름다운 이야기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육성이 흘러나올 때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칼 세이건, 그리고 그의 꿈을 품고 우주로 날아갔던 보이저 탐사선에 대한 한 편의 헌사라고 생각한다. 

 

‘엘리오’의 모든 사건은 1977년 지구를 떠난 보이저 탐사선에서 비롯된다.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는 외계인에게 발견되고, 외계인은 그 안에 실린 골든 레코드를 해독해 지구에 찾아온다. 그런데 외계인들은 이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어떻게 지구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을까? 

 

보이저 골든 레코드에 새겨진 펄사를 활용한 지도. 사진=NASA

 

골든 레코드에는 천문학자들이 새겨놓은 특별한 지도가 담겼다. 이 지도에는 사방으로 곧게 뻗은 14개의 일직선, 그리고 가장 긴 직선이 하나 더 그려졌다. 직선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그 중심에 지구의 위치를 알려준다. 이 지도는 칼 세이건의 동료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고안했다. 그는 펄사라는 특별한 별 14개를 골라 지구로 오는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으로 삼았다. 보이저보다 앞서 우주로 날아간 선발대 파이어니어 탐사선에도 같은 지도가 새겨진 동판이 함께 실렸다. 그리고 ‘엘리오’의 외계인들은 정말 그 지도에 따라 지구에 찾아왔다! 

 

그런데 펄사를 이용해 길을 찾는 건 외계인만의 기술은 아니다. 실제로 이제 인류는 단순히 GPS 인공위성을 넘어 우주에 존재하는 천연의 GPS, 펄사를 이용해 길을 찾는 새로운 시대의 항법을 꿈꾼다. 바로 펄사 항법이다. 게다가 펄사는 우주의 시공간이 통째로 어떻게 진동하고 있는지, 시공간의 떨림과 빅뱅의 흔적까지 추적하는 놀라운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제 자동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빅뱅 이후 138억 년째 출렁이고 있는 우주 시공간 본연의 떨림까지 활용하게 되는 날이 머지않았다. 

 

 

드레이크는 왜 하필 펄사를 외계인들을 위한 길잡이 별로 삼았을까? 지구에서는 북극성이 길잡이 별이 된다. 하지만 지구를 벗어나는 순간 북극성은 그저 흔한 별 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북극성에 부여된 특별한 의미는 지구에서만 유효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될 범우주적이고 공평한 길잡이 별이 필요하다. 바로 그 역할을 펄사가 해줄 수 있다. 

 

펄사는 수초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주기로 자전하는 중성자별이다. 중성자별은 거대했던 별이 작게 붕괴한 결과다. 그래서 자전 속도도 아주 빨라지고 자기장도 강해진다. 강한 자기장 축을 따라 중성자별은 강한 에너지를 토해낸다. 그런데 (지구처럼) 자기장 축은 자전축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다. 약간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등대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벗어났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중성자별이 토해내는 강한 에너지가 밝게 보였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자전 주기가 상당히 짧기 때문에 그 신호는 수초 간격으로 짧게 펄스 신호를 내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펄스를 내보내는 별이란 뜻에서 펄사라고 부른다. 

 

펄사의 주기는 수밀리초 수준에서 아주 일정하게 유지된다. 사람마다 미세하게 지문이 다른 것처럼 펄사마다 고유의 주기가 있다. 주기만 알면 펄사를 특정할 수 있다. 또 펄사가 방출하는 에너지는 매우 강하다. 그래서 먼 거리에서도 비교적 쉽게 포착할 수 있는 등대다. 특히 펄사는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든 구조물이 아니다. 우주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등대다. 

 

드레이크는 우리 인류처럼 우주를 항해하고 또 다른 존재를 찾는 문명이 있다면, 그들 역시 펄사를 발견하고 펄사의 특징을 잘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그는 우리 은하에서 일정한 주기로 진동하는 펄사 14곳을 선정했고, 지구를 중심으로 각 펄사까지의 상대적인 거리를 반영해 선을 그렸다. 각 펄사의 자전 주기는 이진법으로 표현했다. 각 일직선 끝에 그려진 지글지글한 패턴이 1과 0으로 표현한 자전 주기를 나타낸다. 거리 스케일을 비교할 수 있도록 지구에서 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 A* 블랙홀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가장 긴 선도 추가했다. 우리 은하수를 항해하는 이름 모를 히치하이커들에게 유용한 축척이 될 것이다. ‘엘리오’에 등장하는 외계인처럼 똑똑한 존재가 있다면 보이저 골든 레코드에 새겨진 각 펄사를 특정해내고 이들의 공간 위치를 바탕으로 선이 모여드는 지구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펄사는 우주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다. 이제 펄사는 지구 찾기를 넘어서 심지어 우주 시공간 전체의 떨림을 감지하는 도구가 된다. 138억 년 전 빅뱅 직후 우주는 극도로 온도가 높았다. 우주가 빠르게 팽창하면서 온도는 서서히 내려갔다. 온도가 10의 12제곱 K 아래로 떨어질 때 즈음, 비로소 따로 놀던 기본 입자 쿼크들이 양성자 중성자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 순간 우주는 급격환 대전환을 맞이했다. 수증기가 순식간에 물로 응결하는 수준에 버금가는 아주 급격한 변화였다. 실제로 이 시기를 우주의 상전이라고 말한다. 이때 우주 전역에 시공간 자체가 울리는 거대한 떨림이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 흔적은 시공간 자체에 미미하게 퍼져 있는 중력파의 떨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주 자체에 배경처럼 깔려있는 ‘배경 중력파’다. 

 

펄사 타이밍 어레이를 표현한 그림.


이것은 2015년 LIGO 중력파 검출기로 포착한 중력파와는 성격이 다르다. 당시 포착한 중력파는 육중한 두 블랙홀이 서로 충돌하면서 만든 떨림이다. 우주 곳곳에 살고 있는 블랙홀 한 쌍이 서로 충돌할 때마다 이런 급격한 중력파가 간헐적으로 퍼져나온다. 이건 예고 없이 곳곳에서 갑자기 퍼져나오고 사라지는 ‘중력파 쓰나미’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배경 중력파’는 다르다. 이것은 태초의 우주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우주 전역에 미미하게 깔려있는, 말 그대로 배경 중력파다. 중력파의 윤슬이라고 볼 수 있다. 배경 중력파는 빅뱅 이후 38만 년이 지났을 때 우주 전역에 처음 퍼진 빛이 남긴 우주 배경 복사와 비슷하다. 배경 중력파는 우주 배경 복사의 중력파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진동은 지구에서 관측하는 각 펄사의 진동하는 신호가 예상보다 더 빠르거나 느리게 도착하게 만든다. 우주 전역에서 펄사의 진동 주기의 미미한 변화를 지켜보면서 이들을 휩쓸고 지나간 중력파의 떨림을 감지할 수 있다. 펄사들이 투명한 우주 시공간의 파도를 느끼게 해주는 우주 부표 시스템이 되는 셈이다. 펄사를 통해 시공간의 떨림을 감지하는 이러한 관측 방식을 펄사 타이밍 어레이(Pulsar Timing Array)라고 한다. 

 

이 대대적인 관측을 통해 이미 2023년 천문학자들은 우주 시공간이 정말 통째로 진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수십 개의 펄사를 관측해 얻은 놀라운 결과였다. 그런데 1년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천문학자들은 그간의 관측 결과를 추가해 더욱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위치한 MeerKAT 전파 망원경을 동원한 새로운 펄사 타이밍 어레이가 함께 하면서 더 거대한 시야로 시공간의 떨림을 감지했다. 지난 5년 동안 총 83개의 펄사에서 도달하는 모든 신호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그렇게 인류는 역사상 처음 ‘중력파 지도’를 완성했다. 

 

5년 동안 총 83개의 펄사에서 도달하는 모든 신호를 정밀하게 측정해 완성한 중력파 지도.


그런데 중력파 지도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유독 중력파의 떨림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 이것은 최근 현대 천문학에서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우주의 비등방성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빅뱅이 남긴 시공간의 떨림이 퍼진 배경 중력파라면 우주 전역에 고르게 퍼졌을 테니 이런 방향성을 보일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유독 이쪽 방향의 우주에 우주 시공간에 떨림을 일으키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더 많이 모여 있기라도 한 걸까?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지도에서 나타나는 이 영역은 유독 남반구 하늘에서 나타나는데, 이것은 최근 펄사 타이밍 어레이가 남반구 MeerKAT에서 관측해 관측 편향성을 일으켰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주 전체의 떨림까지 정밀하게 보여주는 도구가 되는 펄사는 우주에서 길을 잃은 항해자들에게도 가장 정확하고 유용한 길잡이 별이 된다.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항해하는 탐사선들에게 절대적인 길잡이 별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화성, 목성 정도 태양계 안을 누빈 탐사선들은 시리우스나 카노푸스처럼 지구 주변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별 정도를 길잡이 별로 삼았다. 하지만 별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우주 공간을 움직인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평범한 별은 궁극의 가장 절대적인 길잡이 별이 되지 못한다. 보이저나 파이어니어, 그리고 뒤를 이어 명왕성 너머 태양계 바깥으로 떠난 뉴호라이즌스 탐사선들처럼 태양계를 아예 벗어난 항해자들이라면 이런 평범한 별들은 더욱 쓸모가 없다. 

 

대신 일정한 주기로 진동하는 데다가 거리가 훨씬 멀어서 사실상 시야에서 계속 한 자리에 고정된 것처럼 여겨지는 펄사라면 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특히 머지않아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 시대를 꿈꾸는 인류에게 펄사를 활용한 우주 내비게이션은 매우 중요하고 현실적인 과제다. 

 

실제로 2017년 NASA는 오직 펄사만을 활용해 우주 정거장의 정확한 위치 좌표를 잡는 실험을 시도했다. 지구 관제소와 아무런 정보를 교환하지 않고 오직 펄사에만 의존해 우주 정거장의 위치를 특정하는 시도였다. 이를 위해 우주 정거장에는 X선 신호를 감지하는 세탁기만 한 크기의 Station Explorer for X-Ray Timing and Navigation(SEXTANT) 장비가 실렸다. 이를 통해 단 네 개의 X선 펄사만으로 우주 공간에서 우주 정거장의 정확한 위치를 단 5km 이내의 오차로 특정하는 데 성공했다. 우주 정거장이 시속 2만 8000km의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중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오직 펄사에만 의존해 이 정도로 정밀하게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는 건 매우 놀라운 결과다. 

 

우리는 지구에서 머리 위, 지구 정지 궤도에 올라가 있는 GPS 위성들의 신호를 바탕으로 나의 위치를 찾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GPS 위성들도 결국 지구 주변을 빠르게 맴도는 인공위성일 뿐이다. 애초에 GPS 위성들의 절대적인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면 그것을 기준으로 길을 찾는 것도 쓸모가 없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우주 끝자락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토해내는 활동성 은하 퀘이사, 또는 우주 전역에서 아주 일정한 리듬으로 펄스 신호를 내보내는 펄사 자체를 GPS를 위한 GPS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인류 문명이 고도화되면서 우리의 삶은 1초, 1mm에도 좌우되는 아주 예민한 시대를 살게 되었다. 앞으로의 미래는 더욱 예민한 시대가 될 것이다. 단 1밀리초, 1마이크로미터의 차이만으로도 개인과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달라지는 초민감 사회가 될 것이다. 큼직한 숫자로 대충 얼버무리고, 항상 큼직한 오차가 따라다녔던 천문학도 이제는 옛말이다. 천문학도 이제는 눈 깜짝할 사이의 짧은 시간까지 신경 쓰는 초정밀 과학의 영역이 되고 있다. 그 변화는 우리 일상의 눈금을 한층 더 예리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는 펄사를 길잡이 삼아 움직이는 자율주행 버스를 타고, 퀘이사의 안내를 따라 화성을 향하는 우주선에 몸을 맡기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참고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36/2/1489/7912548?login=false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36/2/1467/7912547?login=false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36/2/1501/7912549?login=false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e18b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da9a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dac6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dc9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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