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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대구의 근대를 품은 붉은 벽돌집, 청라언덕과 계산성당

1900년대 초 온 미국인 선교사들이 지은 집들, 지금은 대구 근대사 박물관으로 활용

2021.04.20(Tue) 16:27:28

[비즈한국] ‘푸를 청(靑)’에 ‘담쟁이 라(蘿)’. 봄이면 담쟁이 푸르른 대구의 청라언덕에는 오래된 붉은 벽돌집들이 오순도순 자리했다. 비슷한 듯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벽돌집들은 지은 지 100년이 훌쩍 넘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원래 더 많은 집들이 있었지만, 지금 남은 건 세 채뿐. 모두 20세기를 전후해 대구로 온 미국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이다. 

 

대구 청라언덕에 자리한 스윗즈 주택은 여성 선교사 마르타 스윗즈가 살던 곳이다. 붉은 벽돌집에 한옥 기와를 얹었다. 지금은 선교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공동묘지 언덕에 자리 잡은 미국 선교사들

 

미국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건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부터다. 개항장 부산을 통해 대구로 온 선교사들은 청라언덕에 자리 잡았다. 이곳은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시신을 묻던 곳이었단다. 덕분에 별다른 텃세 없이 이방인들이 자리를 잡고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청라언덕이란 이름도 이들이 언덕 곳곳에 심은 담쟁이 넝쿨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달구벌대로에서 언덕을 오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블레어(Blair) 주택이다. 1901년 한반도에 들어온 선교사 블레어가 살던 집으로 1910년경 건축되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법인 콘크리트를 이용해 기초를 다지고 지하실을 만든 뒤 높은 굴뚝의 2층 벽돌집을 올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2층 박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원형 유리창이다. 이 창은 2층에 있는 선룸(sunroom)으로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커다란 창은 당연히 환기에도 유리하다. 

 

향나무에 둘러싸인 블레어 주택. 2층 박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원형 유리창이 눈길을 끈다. 사진=구완회 제공

 

 

챔니스 주택은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한 방갈로풍 주택으로 사람 인(人) 자 모양 지붕의 붉은 벽돌건물과 평지붕의 흰색 건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블레어 주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챔니스(Chamness) 주택이 있다. 이곳에는 선교사 챔니스뿐 아니라 미국 북장로회에서 세운 학교(현 계성중고등학교)의 교장 레이너와 병원(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원장인 마펫 등도 살았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한 방갈로풍의 주택은 사람 인(人) 자 모양 지붕의 붉은 벽돌건물과 평지붕의 흰색 건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뿐 아니라 건축 분야의 논문 소재로도 인기라고 한다. 

 

챔니스 주택 아래쪽은 사시사철 햇살이 비치는 은혜정원이다. 청라언덕에서 살았던 선교사와 가족 등 14명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었다. 그 중에는 챔니스 선교사의 어린 딸 바버라도 있다. 1927년에 태어난 바버라는 3개월 만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지역민들에게 농사와 축산을 가르치며 선교 활동을 하던 챔니스 부부는 1941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매일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양지바른 은혜정원은 겨울에도 햇살이 따스했다. 

 

선교사와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은혜공원. 사진=구완회 제공

 

#3·1만세운동길 따라 근대문화골목 산책

 

은혜정원 북동쪽의 스윗즈(Switzer) 주택은 여성 선교사 마르타 스윗즈가 살던 곳이다. 붉은 벽돌 건물에 한옥 기와 지붕을 얹은 것이 한식과 양식을 절충한 모양이다. 1907년 대구읍성을 철거하면서 나온 성돌로 기초를 쌓은 것도 눈길을 끈다. 집 주위에는 선교사들이 처음 가져왔다는 서양사과나무 3세목과 동산의료원 개원 100주년 기념 종탑도 보인다. 독신으로 살면서 18년간 교육 선교에 헌신했던 스윗즈 선교사 또한 은혜언덕에 잠들어 있다. 

 

지금 이 주택들은 대구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블레어 주택은 교육역사박물관, 챔니스 주택은 의료박물관, 스윗즈 주택은 선교박물관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부 무기한 휴관 중이다. 

 

청라언덕은 ​대구 중구 골목투어 2코스인 ‘근대문화골목’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청라는 푸른 담쟁이란 뜻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100여 년 전 청라언덕 솔밭길은 대구의 3·1운동에 참여하려는 학생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이동하던 비밀 통로 역할을 했다. 사진=구완회 제공

 

대구의 근대를 품고 있는 청라언덕은 대구 중구 골목투어 2코스인 ‘근대문화골목’의 출발지이기도 하대구다. 100여 년 전 청라언덕 솔밭길은 대구의 3·1운동에 참여하려는 학생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이동하던 비밀 통로 역할을 했다. 지금 솔밭길은 포장도로가 되었지만 ‘3·1만세운동길’이란 이름으로 그날의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3·1만세운동길을 따라 청라언덕을 내려오면 뾰족한 두 개의 첨탑이 인상적인 계산성당을 만난다. 이곳은 선교사 주택보다 8년쯤 앞선 1902년에 준공되었다. 1899년에 문을 연 한옥 성당이 화재로 소실되자 고딕 양식의 서양 건물로 다시 지은 것이다. 당시 대구에서 활동하던 로베르 신부가 직접 설계하고 프랑스에서 자재를 들여와 지었단다. 이후 몇 번의 증축을 거쳐 현재 대구 가톨릭을 대표하는 주교좌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1902년 고딕 스타일을 가미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완공된 계산성당.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메모>


청라언덕 

△위치: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일대

△문의: 053-424-6407

△이용시간: 24시간, 연중무휴

 

계산성당 

△위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

△문의: 053-254-2300

△이용시간: 미사 시간 제외하면 본당 관람 가능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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