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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자리에 '소비기한', 준비 없이 이름만 바뀌었네

업계 기존 날짜 그대로 적용…소비자들 혼란 속 "식품 폐기량 더 늘 수도"

2023.01.10(Tue) 15:23:32

[비즈한국] 식사준비를 위해 냉장고에서 밀키트를 꺼낸 직장인 이 아무개 씨(35)는 고민이 커졌다. 장을 볼 때는 날짜만 확인했던 터라 해당 날짜가 ‘유통기한’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소비기한’이었기 때문이다. 포장지에 적힌 소비기한은 이미 하루가 지나버린 상황. 그는 “유통기한을 하루 정도 넘긴 것은 ‘괜찮다’며 먹었는데, 소비기한을 지난 상품을 먹자니 찝찝하다”며 고민 끝에 밀키트를 버렸다. 

 

2023년 1월 1일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기하는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됐다. 정부는 안정적 제도 안착을 위해 1년의 계도기간을 갖기로 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식품 폐기량 줄일 수 있을까 

 

1일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기하는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됐다. 유통기한은 소비자에게 식품의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이며,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식품을 ‘섭취’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간을 말한다. 통상 유통기한보다 소비기한이 긴 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자체 실험을 통해 제공한 소비기한 참고값에 따르면 과자류는 유통기한이 45일이지만 소비기한은 81일로 차이가 크다. 과채주스도 유통기한은 20일인 데 반해 소비기한은 35일이다.

 

1985년 도입 후 38년간 사용한 유통기한 표시제는 식품 폐기량을 늘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유통기한은 말 그대로 ‘유통’이 허용되는 시점으로, 식품의 섭취 가능 기한을 말하는 것이 아닌데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먹어도 문제없는 식품의 상당량이 폐기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으로 식품 폐기량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식품안전정보원은 “소비기한 변경 시 가정 내 가공식품 폐기 감소(1.51%)로 연간 8860억 원, 식품 산업체 제품의 반품·폐기 감소(0.04%)로 연간 260억 원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 또한 연간 165억 원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도 버려지는 음식물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에 공감하며 소비기한 표시제에 기대감을 보인다. 주부 유 아무개 씨는 “유통기한이 지났더라도 먹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소비자로서는 언제까지 섭취해도 괜찮은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먹었다가 괜히 탈이 날까 걱정돼 아깝더라도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은 폐기했는데, 소비기한이 표시된 상품을 구매하면 식품 관리가 훨씬 수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기한이 표시된 요구르트 제품. 기존에 유통기한으로 표시하던 명칭을 소비기한으로 바꾸었다. 사진=박해나 기자


#업계 “소비기한, 유통기한 동일하게 운영”

 

일각에서는 다소 성급한 도입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취지’에는 공감하나 안전성과 직결되는 식품의 품질관리인만큼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올해 1년의 계도기간을 갖기로 했지만, 식품업계에서는 연내 안전한 소비기한을 정하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확답을 하지 못한다. 

 

한 식품회사 관계자는 “소비기한이라는 것이 안전하게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이다 보니 설정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며 “다각도로 연구·개발하며 실험 중인데 단기간에 확정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기한 표시제가 정부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움직임도 보인다. 소비기한을 확정하지 못한 기업들이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명칭만 바꿔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소비자들이 ​​‘소비기한’이 지났어도 ​품질에 이상 없는 상품을 곧바로 폐기해 오히려 식품 폐기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원F&B는 전체 제품 1800여 개 중 130개가량에 소비기한을 도입했다. SPC삼립도 제과, 빵류, 소스류 등에 소비기한을 표시해 판매하고 있으며 CJ제일제당, 오뚜기 등도 일부 제품의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소비기한과 유통기한에 특별한 차이를 두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동원F&B 관계자는 “소비기한과 유통기한을 동일하게 운영하고 있다. 소비기한을 유통기한보다 길게 잡아야 한다는 강제는 없다”며 “품질 안전한계 기간이라는 데이터를 통해 연구 중이며, 정밀하게 실험해 순차적으로 소비기한을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A 씨는 두부 판매대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는 “한 제품은 소비기한이, 다른 제품은 유통기한이 표기돼 있는데 날짜가 비슷하다. 소비기한은 보통 유통기한보다 날짜가 길다고 하는데, 그럼 더 오래전에 제조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유통기한으로 표기된 상품을 구입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마트에서 달걀을 구입한 소비자는 “날짜만 보고 상품을 샀는데, 다시 보니 유통기한이 아닌 소비기한이더라”며 “소비기한은 지나면 바로 폐기해야 하지 않나. 생각보다 남은 날짜가 짧아 당황스러웠다. 기한 내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박 아무개 씨도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상품을 종종 먹곤 했는데, 소비기한으로 표기된 상품은 먹지 않고 버린다”며 “소비기한은 폐기 시점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계도기간에 발생하는 일시적 문제라며 개선될 것이란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계도기간인 만큼 아직 소비기한을 표시한 상품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계도기간이 끝나고 내년에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되면 소비자 혼란이 줄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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