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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언제든지 화 낼 준비가 되어 있는 당신에게 '성난 사람들'

사소한 다툼이 들불처럼 번지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한인 사회 특유의 '찐 한국인 정서'도 웃음벨

2023.04.28(Fri) 10:41:45

[비즈한국] 솔직히 처음엔 제목부터 당기지 않았다. ‘성난 사람들이라니, 얼마나 성을 내려고 그러는 걸까, 피곤하네?’ 이런 마음이 든 것.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이가 들면서 예전보다 참을성이 없어지고 화가 많아지는 나 자신에 ‘현타’가 오는 순간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까지 보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게 정확할 거다. 나이가 들면 인자해진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어쨌거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성난 사람들’은 약간의 마음의 각오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다.

 

아시아계 이민 2세라는 점 외엔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던 대니와 에이미. 둘은 대형 마트 앞에서 난폭 운전과 무례한 매너로 시비가 붙으며 극한의 상황에 몰리게 된다. 난폭 운전, 보복 운전이 이렇게 무섭다는 교훈이 될지도? 사진=넷플릭스 제공

 

‘성난 사람들’에서 성난 주체인 대니(스티브 연)와 에이미(앨리 웡)는 난폭 운전으로 엮인다. 대형 마트에 숯불 화로를 반품하려다 영수증이 없어 그냥 나온 대니가 후진으로 낡은 트럭을 빼려는 찰나, 에이미가 모는 흰색 벤츠 SUV가 위험천만하게 스치고 지나가면서 사과는커녕 신경질적인 경적과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대니가 분노의 질주를 하며 추격하지만 끝내 놓치고, 이들의 난폭 운전은 지역 커뮤니티에 영상이 뜨며 화제가 된다.

 

에이미의 차 번호를 외워둔 대니가 흰색 벤츠 SUV의 주인을 알게 되고 시작한 복수의 서막은 유치하고 졸렬했다. 주소를 알아내어 수리공인 척 에이미의 집에 들어가 화장실에 사방팔방 오줌을 갈겨 놓은 것. 그러나 이 복수는 집수리를 하며 겨우 먹고 사는 도급업자 대니의 사이트에 에이미가 악플을 달고, 대니의 낡은 트럭에 ‘나는 가난하다’ 등의 낙서를 갈겨 놓은 것으로 이어지며 점점 정도를 더하게 된다.

 

배운 학식도, 변변찮은 기술도, 그렇다고 눈에 띄는 외모나 화술도 없지만 ‘K-장남’의 마인드를 탑재한 대니. 한국에 있는 부모를 모셔오기 위해 번듯한 집을 장만해야 하는 대니에게, 사촌 아이작은 위험천만하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버팀목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이 일련의 과정에서 대니의 동생 폴(영 마지노)과 사촌 아이작(데이빗 최), 앨리의 남편 조지(조셉 리)와 딸 준(레미 홀트), 앨리의 사업 파트너 조던(마리아 벨로)과 이웃사촌 나오미(애쉴리 박), 대니의 첫사랑과 결혼한 에드윈(저스틴 민) 등 주변 사람들이 얽히는 것은 물론, 오줌과 낙서 수준이었던 복수극은 여러 사람의 파경과 파국, 사망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대니와 에이미는 난폭 운전과 무례한 매너를 보인 상대에게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난 걸까? 남성과 여성, 미혼과 기혼, 가난한 하급 노동자와 성공한 원예 사업자 등 아시아계 이민 2세라는 사실 외엔 공통점이곤 없어 보이는 두 사람.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니와 에이미는 무척 닮아 있다. 사실 대니와 에이미는 각자의 이유로 불행한 삶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그 쌓여 있던 화가 우연히 대형 마트 주차장에서 만난 서로에게 터진 것뿐.

 

유명한 예술가 부모를 둔 일본계 미국인 남편 조지와 베트남-중국계 아내 에이미. 에이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원예 사업가처럼 보이지만 재능 없는 예술가이자 전업주부인 남편과 어린 딸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미국에서 모텔을 운영하다 사촌형의 불법 사업이 발각돼 한국으로 떠나야 했던 부모님을 다시 미국으로 모셔오고 싶은 대니는 전형적인 ‘K-장남’이다. 게임과 코인에 빠져 있는 백수 남동생 폴을 돌보면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으나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없어 변변찮은 일거리를 전전하는 중이다. 유명한 예술가 시부모와 전업주부 겸 예술가 남편을 둔 에이미는 대니에 비해 성공한 인생 같지만 실상 생활력 없는 남편을 대신해 일하느라 지쳐 있다. 사업을 포스터스 회장 조던에게 매각하고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매각 과정 역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에이미는 대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니의 동생 폴에게 접근했다가 자신에게 결여돼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나 에이미의 이런 일탈은 또 다른 파국을 불러 일으킨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툭 건드리면 폭발할 것처럼 분노가 쌓인 두 사람의 모습은 화가 쌓일 대로 쌓인 현대인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그런 보편성에 한층 더 공감을 얹은 것은 아시아계 이민 2세가 지니는 특수성이다. 미국에서 자라 영어를 쓰며 미국식 사고방식에 익숙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습득한 동아시아계 특유의 가족에 대한 헌신, 희생, 책임감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나 에이미가 백인 지인에게서 ‘선불교의 온화함’을 지닌 동양인의 모습으로 재단되는 모습 등 미국에서 소수계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무의식적에 짓눌려 있는 무게를 세밀하게 그려내 공감을 산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 안에서 남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비교에 의한 스트레스를 덜 받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완벽하게 초연한 사람은 성인군자의 반열일 것. 에이미의 이웃사촌인 나오미도 마찬가지로 에이미나 조던을 보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대니와 에이미뿐 아니라 드라마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누구나 그렇듯, 쌓여 있는 분노와 스트레스가 있고, 감내해야 할 일들이 있고, 감추고 싶지만 감춰지지 않는 자격지심 등으로 괴로워한다. UC 어바인을 졸업하고 어여쁜 아내와 살며 한인교회 찬양팀 리더를 맡고 있는 에드윈이나 여유롭게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보이는 전업주부 나오미도 알고 보면 자신이 가지지 못한 영역에서 남을 질투하고 그로 인해 분노의 임계점을 들락날락 하며 공격성을 보이는 것을 보라. 처음엔 ‘분노는 일시적인 의식 상태’라며 언제나 긍정적 마인드로 임하는 에이미 남편 조지에 빙의해서 드라마를 보지만, 보다 보면 조지가 그러하듯 보는 사람들 역시 감추고 있던 나를, 내 안의 분노를 들여다보게 된다.

 

극한에 극한을 거듭하다 마지막에 겨우 서로의 속내를 터놓으며 닮아 있는 서로를 깨닫는 대니와 에이미. 과연 이들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라도 반나절을 내리 할애하며 드라마를 보게 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한국인이라면 대니와 폴의 관계성, 한인교회로 대변되는 재미교포 커뮤니티의 분위기, 카카오톡과 LG제품에 대한 감탄 등 ‘찐 한국인 정서’가 녹아 들어 있어 곳곳에서 진한 공감과 ‘찐웃음’을 터트릴 수 있다. 스티브 연, 영 마지노, 조셉 리, 데이빗 최 등 한국계 배우들을 비롯해 대다수가 아시아 배우들이고, 연출과 각본과 제작을 맡은 이성진 감독 등 한국계 제작진이 포진해 있는 덕분이다. ‘김씨네 편의점’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넘어 서양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형화한 아시아계 인물들에 대한 편견을 전복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보다 보면 점점 이 미쳐 버린 사람들에게 감정이입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10부작이나 편당 35분가량의 미드폼이라 속도감 있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 오늘도 참다 참다 화병이 날 지경인 당신에게 추천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결말을 바라는 이들은 패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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