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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워킹맘 전도연의 죽이는 액션 '길복순'

'킬빌' '킹스맨'급 스타일리시 연출 볼거리…헐거운 서사, 멱살 잡고 끄는 그녀의 독보적 존재감

2023.03.31(Fri) 14:41:08

[비즈한국]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라는 말은 게으른 표현이다. 안다. 그럼에도 전도연은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다. 그 전도연이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에서 성공률 100%의 킬러 길복순이 되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이라 흐름도 좋다. 과연 전도연은 또 다른 전도연으로 자신을 넘어설까? 다른 건 몰라도, ‘길복순’이 전도연을 위한 맞춤형 영화라는 건 확실하다.

 

오프닝에서 호텔 메이드 차림으로 손에 도끼를 든 길복순. 길복순이 마주하는 가운 차림의 야쿠자를 주목하시라. 야쿠자를 서둘러 처리한 길복순이 마트로 향한 것도 자잘한 웃음 포인트.

 

‘길복순’은 이벤트 회사로 위장했지만 본업은 청부살인인 MK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일타 킬러’ 길복순을 주인공으로 한다. 업계에 명성이 자자하고 MK엔터 대표 차민규(설경구)가 전폭 지지하는 킬러지만, 10대 딸 재영(김시아)과의 관계 때문에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오죽하면 그런 말을 할까.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재계약을 앞두고 차세대 에이스로 꼽히는 영지(이연)를 데리고 임무에 나선 길복순은 그 임무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며 회사의 ‘규칙’을 어긴다. 

 

킬러 세계의 규칙은 셋이다. 미성년자는 죽이지 않을 것, 회사가 허가한 작품만 할 것, 회사가 허가한 작품은 반드시 ‘트라이’할 것. 길복순은 임무의 진실을 알고 자의로 규칙을 어겼고, 길복순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MK엔터 이사이자 차민규의 동생 차민희(이솜)는 이를 계기로 길복순을 제거하려 든다. 어쨌거나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길복순이 생존을 위해 한바탕 혈전을 벌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일타 킬러’ 길복순이지만, 사춘기 맞은 중학생 딸 재영 앞에서는 서툴기 그지없는 엄마일 뿐이다.

 

‘길복순’은 대단히 새로운 느낌의 영화는 아니다. 영화광이 아니더라도 ‘길복순’을 보다 보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이 떠오른다. 설경구의 블라디보스톡 액션 시퀀스는 ‘킹스맨’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다. ‘존 윅’ 시리즈도 많이 언급된다. 익숙한 느낌 속에 색다른 부분이 있다면 한국 회사 및 엔터업계, 그리고 워킹맘의 노곤한 현실을 풍자하는 재미일 테다.

 

이미 ‘회사원’에서 소지섭이 회사원처럼 근무하는 킬러의 모습을 담은 바 있으나, ‘길복순’은 그에 더해 업계 스타인 길복순을 선망하며 기수별로 ‘데뷔’를 기다리는 어린 킬러들의 월말평가 모습을 더하며 엔터업계를 풍자한다. 스타의 재계약을 초조히 기다리는 대표 차민규의 모습이나 타깃이 된 길복순을 잡으면 MK엔터로 스카우트한다는 말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중소기업 킬러들의 모습도 마찬가지.

 

딸 재영과의 관계 때문에 자신을 전폭 지지하는 MK엔터 차민규 대표와의 재계약을 망설이는 길복순. 이 모습을 보는 엔터업계 대표들은 뭔가 동질감을 느낄지도.

 

육아보다 회사가 더 편하다고 토로하는 한국 워킹맘의 현실도 잔재미. 오프닝에서 ‘이마트에서 3만원 주고 산 도끼’로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던 길복순이 서둘러 임무를 마무리하는 장면(특별출연한 배우의 열연에 주목)의 이유나, 눈 하나 깜짝 않고 사람을 죽이면서도 자녀의 학교 사교 모임에서는 깔끔한 명품 옷차림으로 차려 입고 엄마들의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문 쾅 닫고 들어가 대화를 거부하는 사춘기 딸에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은 한국 워킹맘 그 자체다. ‘일타 스캔들’에서 조카를 자식처럼 키우며 모성애를 발하던 남행선 사장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길복순은 MK엔터 외에도 다른 회사 킬러들과도 돈독하게 지낸다. 다만 비정한 엔터업계를 포함해 여느 사회생활이 그렇듯, 이들의 관계도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

 

칼이나 총, 이마트에서 산 도끼 같은 살벌한 무기 말고도 현장에서 수급하는 매직펜, 나무 파편 등 다양한 물건을 무기로 쓰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전도연, 코를 찡긋하며 눈웃음을 짓는 특유의 미소로 “아, 나 한물 갔나 봐~” 하며 애교 섞인 넉살을 떠는 전도연, 회사 후배 희성(구교환)과 모종의 관계로 엮이면서도 “후져”라고 냉정한 대사를 날리는 전도연, 차민규 대표와 오가는 눈빛 사이로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도연…. ‘길복순’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도연을 보는 재미요, ‘길복순’의 존재 의미 또한 전도연이다. 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인 셈이다.

 

설명이 많진 않지만 차민규 대표와 그의 여동생 차민희 이사의 오묘한 분위기도 눈길을 끈다. ‘지천명 아이돌’로 불리는 설경구와 나른한 매력을 뽐내는 이솜의 합이 어울린다.

 

‘길복순’을 만든 변성현 감독은 ‘불한당’ ‘킹메이커’ 등으로 그 재기를 익히 선보인 바 있으나 ‘길복순’에서는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느낌이다. 변성현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설경구는 여전히 ‘지천명 아이돌’의 품격을 유지하고, 고양이처럼 나른한 매력을 발하는 이솜도 그의 역할을 다하지만, 영화 전체의 서사가 헐겁다 보니 오로지 전도연에 기대갈 수밖에 없다. 다소 사족처럼 여겨지는 동성애 코드나 ‘D.P.’로 미친 매력을 선보였던 구교환이 알뜰하게 쓰이지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

 

MK엔터 대표이자 킬러업계의 규칙이나 다름없는 차민규. ‘킬빌’의 빌이 진하게 연상되는 가운데, 액션 신에서는 ‘킹스맨’의 해리도 떠오른다.

 

헐거운 서사지만 작품 속에서 이름만 언급된 ‘은퇴한 독고할배’나 ‘휴가 떠난 사마귀’ 같은 다른 에이스 킬러를 대동해 후속편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로 처음 인사하는 전도연의 매력을 세계가 얼마나 주목할지도 기대되는 포인트. ‘길복순’은 3월 31일 오늘, 오후 5시에 공개된다. 요이, 땅!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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