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요사이 여기저기서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주변인들의 소식을 부쩍 많이 전해 듣는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구나 싶다가도 벌써 그런 나이인가 싶어 서글프기도 하다. 지난달에는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멀지도 않은 직장동료 두 명의 본인상(喪)이 불과 일주일 간격으로 있었다.
한 분은 50대 초반의 나이에 180cm가 훌쩍 넘는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로 야외 스포츠를 다양하게 즐기는 분이었는데, 지난해부터 유독 낯빛이 안 좋아 보여 여쭤보니 간에 질환이 생겼다며 질병휴직을 고민하고 있다 하였다. 자식들이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어 버틸 때까지 버텨야 한다며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던 그는 결국 2달 전에서야 병가를 신청했다. 병가기간이 끝나고 추가로 휴직이 필요할 경우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안내하면서 ‘쉬는 동안 치료 잘 받으시고 꼭 건강한 모습으로 뵙자’며 건넸던 인사말은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나머지 한 분은 같은 층에 있는 남직원으로 나보다 겨우 1살이 많았다. 그와는 업무상 접점이 거의 없었으나 2년쯤 전에 있었던 사내징계 건을 조사할 때 사실확인자로서 면담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크게 튀지는 않지만 자기 일에 열정적이고 굉장히 꼼꼼한 성격이었다. 그가 업무 일지에 자세히 적어둔 메모 덕분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조사 건의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알게 되어 적지 않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오가며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사이였는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겉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아서 가까운 동료들도 황망한 소식을 접하고서야 뒤늦게 투병 사실을 알았다며 안타까워했다. 혹시나 해서 최근 업무가 늘어 초과근무를 했다거나, 부서 내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이나 스트레스는 없었는지 조심스레 짚어 봤다. 회사생활에 큰 불만이 없었고 단지 개인적인 사유였다는 유가족의 이야기에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자기 모습이 왠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최근 3~4년 사이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 진단서를 갖고 인사팀을 찾아와 병가와 질병 휴직 문의를 하는 직원이 부쩍 늘었다. 정신질환에 대해 안 좋게만 보던 시선이 많이 바뀌었고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져서 일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해 스스럼없이 공개하고 자기결정 하는 젊은 세대들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환자 수는 2021년 기준 93만 명으로 최근 5년간 매년 7.8%씩 증가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20대의 증가율은 연평균 22.8%라고 한다. 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독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사회적인 현상인지는 모르겠으나 몸뿐 아니라 마음이 병들어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유지하기 힘들어하는 이들이 계속 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병가를 연차휴가와 비슷한 개념으로 오해한다. 아픈데 쉬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 법에 정해져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개인적인 질병으로 일하기가 어려워 사용하는 병가는 연차휴가와 달리 근로기준법에 따로 정해진 바가 없다. 업무상 상병(산업재해)이 아닌 이상 병가는 회사마다 정해진 규정을 따르게 되어있다.
일정 기간 유급으로 병가를 승인하는 회사도 종종 있으나 이들 대부분은 공공기관으로 우리나라 기업 전체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 보통은 업무 외 질병 자체가 ‘개인 사유’ 이므로 자신의 연차휴가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고 여의찮은 경우 소속팀, 인사팀과 협의하여 사용자 재량(당신이 회사에서 놓쳐서는 안 될 인재이고, 그동안 성실히 일해왔다는 전제하에)으로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무급휴가를 준다. 그마저도 무급병가 제도를 운영하는 회사는 전체 기업의 절반 정도다. 또한 재량이라는 것은 승인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오롯이 ‘오너 마음’이라는 뜻이다.
아프면 돈도 많이 필요하다. 진료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 재활치료도 받아야 하고 약값도 들어간다. 아프다고 통신비나 공과금 같은 기초적인 생활비가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 때문에 돈이 많아 원래부터 회사를 취미생활로 다니고 있었거나, 평소 빵빵하게 보험을 들어둔 경우가 아니라면 무급 병가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하루빨리 업무에 복귀하는 것을 택한다. 짧게나마 쉬면 다행이지만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데도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다.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2025년부터 ‘상병수당’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상병수당은 산재보험과 다르게 업무 외적인 일로 아파도 생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해 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7월부터 진행 중인 2단계 시범사업을 살펴보면 이마저도 모든 이들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다. 소득 하위 50% 이하인 사람에 대해서만 적용되므로 소득이 애매하게 걸리면 지원 대상이 되기 힘들다.
사실 돈을 회사가 주느냐, 나라에서 주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을 치료하고 돌아올 수 있는 일터가 있느냐이다. 생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수당을 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앞서 치료받는 동안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지 않도록, 치료받고 업무에 복귀해도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보완할 방법이 필요하다. 사장 입장에서야 내가 직원 아픈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묵묵히 해 온 근로자들이 있었기에 회사도 존립하는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창립기념일 연설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경영자들의 단골 레퍼토리기도 하고 말이다.
떠난 이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채용이 진행 중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아픔을 참으며 일한 것일까. 그렇게 일하는 삶은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 되었을까.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나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게 먼저다. 그리고 누구나 걱정 없이 ‘아프면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성숙한 사회이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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