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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렇게까지…" 패션쇼핑몰 엔터식스 '버드스파이크' 설치 논란

뾰족한 침 모양에 새들 다치거나 죽거나…유해조수라도 마음대로 죽일 수 없지만, 버드스파이크 규제 기준 없어

2023.10.11(Wed) 18:11:58

[비즈한국] 국내 패션 쇼핑몰 엔터식스가 비둘기를 퇴치하기 위해 설치한 조형물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왕십리점, 안양점 등 일부 지점 건물에 버드스파이크(조류착지 방지장치)를 설치했는데, 조류를 단순히 쫓아내는 수준이 아니라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죽일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현행 법상 버드스파이크 설치에 관한 규정은 없다.

 

#죽음의 조형물, 곳곳에 깃털이

 

5호선과 2호선, 수인분당선 등 4개 노선이 함께 있는 왕십리역은 광역교통망의 중심지 중 하나다. 왕십리광장에는 각종 쇼핑몰, 상가 등이 위치했다. 그런데 왕십리역과 쇼핑몰 엔터식스 건물 사이에 뾰족한 플라스틱 조형물이 설치된 것이 눈에 띈다.

 

 

엔터식스 왕십리역점 건물 외벽 곳곳에 설치된 버드스파이크. 사진=전다현 기자

엔터식스 왕십리역점 건물 외벽 곳곳에 설치된 버드스파이크. 사진=전다현 기자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하고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 이 조형물들은 누가, 왜 설치한 걸까. 이 조형물을 설치한 곳은 패션 쇼핑몰 엔터식스다. 엔터식스는 ‘엔터테인먼트 패션몰’이라는 슬로건으로 국내 최초 유럽 거리 풍경을 모티브로 1994년 설립됐다. 현재 왕십리역점, 강변점, 상봉점, 안양역점 등 7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뾰족한 조형물은 일명 ‘버드스파이크’로 조류가 착지하지 못하도록 제작됐다. 문제는 착지를 막는 정도를 넘어 조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거나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뾰족한 조형물 사이사이에는 이미 수많은 새들의 깃털이 박혀 있었다.

 

10일 왕십리광장에서 만난 시민 A 씨는 “평소에 지나다니며 미관상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너무 잔인하다”고 말했다. 시민 B 씨는 “비둘기만 다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새가 비둘기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만약 멸종위기종이 왔다가 다치면 어떻게 책임질 건가”라고 비판했다. 이날 실제로 비둘기 한 마리가 착지하려다 플라스틱 꼬챙이에 발이 찔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버드스파이크는 왕십리역뿐 아니라 안양역에도 있다. 안양역과 엔터식스를 잇는 통로에도 다수의 버드스파이크가 설치된 것. 

 

엔터식스 안양역점에 설치된 버드스파이크. 사진=전다현 기자

 

엔터식스는 비둘기 퇴치용으로 설치했다고 해명했이다. 엔터식스 관계자는 “비둘기가 많아 배설물로 인해 건물이 부식되고, 지나가는 시민들 머리에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개점 당시부터 설치한 건 아니었고, 비둘기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 1~2년 전쯤 설치했다”고 밝혔다.

 

안전 문제를 제기하자 이 관계자는 “새들이 안 다치게 막을 방법이 있다면 충분히 바꿀 의사가 있다. 시설팀에 관련 내용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조류 퇴치 방법 이것밖에? 이미 안전한 장치 다수 개발

 

버드스파이크가 잔인하다는 논란이 인 지는 오래됐다.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안전한’ 조형물을 자체 제작하기도 했다. 서울시설공단은 버드코일, 버드슬라이드, 버드와이어 등 비둘기가 다치지 않으면서도 접근을 막는 장치를 2021년 개발했다. 당시 서울시설공단은 “그동안 국내외 조류방지시설은 주로 그물망이나 뾰족한 바늘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비둘기가 끼어 죽는 등 문제가 있어 친환경적인 방안으로의 선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새로운 방식의 ‘비둘기 방지시설’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앞서 2014년에는 안전한 조류착지 방지장치가 특허로 나왔다. 특허 청구 내용에는 “(기존 장치는) 그 주위를 비행하는 조류나 핀을 확인하지 못하고 잘못 착지한 조류가 핀에 찔리거나 긁혀 부상을 당함으로써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문제점이 있었다”며 발명 이유를 설명했다.

 

내부순환로 북부고가교에 설치된 버드코일. 사진=서울시설공단


북부간선로 북부간선고가교에 설치된 버드슬라이드. 사진=서울시설공단

 

특허청에 등록된 새가 다치지 않는 조류착지 방지장치. 출처=대한민국 특허청(등록번호 10-1350391)


이처럼 조류 접근을 방지하면서도 안전한 조형물이 개발된 지 오래지만, 민간에선 여전히 ‘버드스파이크’가 많이 사용된다. 가격이 싸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버드스파이크를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개인이 아파트 등 건물 외벽에 설치한 사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비둘기, 까치, 참새 등이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 있다. 다만 마음대로 포획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조경 한국반려동물진흥원 교육센터장은 “야생의 습성을 잃은 비둘기는 번식력이 강하고 도심 내 천적이 없어 개체수 조절이 되지 않아 도심인구에 피해를 주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긴 했으나, 야생생물법 제19조에 의해 지자체장으로부터 포획허가를 받아 포획한다”고 설명했다. 유해조수라도 포획하려면 지자체로부터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무나 마음대로 비둘기를 죽이거나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버드스파이크 설치는 문제가 없을까. 안타깝게도 현재 관련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버드스파이크 설치 기준과 관련해) 세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 이런 부분들을 개선해야 한다는 논의가 그동안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재산상 피해가 큰 농작물 등과 관련해 피해예방시설 규정은 마련돼 있지만, 개인이 설치하는 버드스파이크에 대해선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상황”라고 설명했다.

 

엔터식스가 설치한 버드스파이크는 모두 지하철 역사 연결 통로 부근에 자리한다. 지하철 역사를 관리하는 코레일 측은 “엔터식스는 민자역사로 임대 공간이다. 버드스파이크는 엔터식스 자체적으로 사적 공간에 설치한 것으로 코레일과 협의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유해야생동물 대책 안 보여 

 

전문가들은 야생동물에 대한 정책이 근본적으로 부재하다고 비판한다. 이웅종 연암대 동물보호계열학과 교수는 “비둘기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는 동물이다. 버드스파이크가 쫓아주는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 사실 비둘기는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생활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환경 측면에서도 무조건 쫓아내는 게 능사는 아니다. 다만 지자체에서도 특정 지점을 정해 활동할 수 있게 관리하면 좋지만,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는 부서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피시설이 될 수 있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앞서 조경 센터장은 “인간생활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에 대한 조치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나 인간이 자연생태계에 간섭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먹이 활동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녹지공원이나 생태공원 같은 환경을 조성해 유해조류가 도심에 집중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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