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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내 남편과 결혼해줘', 고구마 따윈 개나 줘버린 사이다 전개 회귀물

여주·남주 더블 '2회차 인생' 설정으로 통쾌함 배가…'이생망'이라서 더 씁쓸한 열광

2024.01.31(Wed) 14:02:43

[비즈한국] “나, 이 결혼 엎을 거예요. 그럼 아줌마 맞잖아? 정신차려요, 아줌마. 당신 아들, 그렇게 안 잘났어.” 도파민이 팡팡 치솟는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9화, 상견례에서 막말을 일삼던 예비 시모 자옥(정경순)에게 강지원(박민영)이 내지르던 말은 네이트판 결시친(결혼/시집/친정) 게시판에서나 볼 법한 ‘사이다 대응’이었다.

 

10화에서 도파민 수치는 더 치솟았다. 강지원은 회사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박민환(이이경)에게 연속 세 번의 귀싸대기를 날린 후 “어디서 바람난 새끼가 큰 소리야!” 호령하는가 하면, 자신의 이름으로 사고를 저지른 뒤 도망치려는 정수민(송하윤)에게 “정수민, 거기 서!”라고 사자후를 내지르며 그의 악행을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냈다.

 

중학생 때부터 ‘베프’였던 친구가 남편과 바람이 났다. 게다가 위암 말기로 시한부인 자신에게 어서 죽어달라며 조롱하는 상황까지! 남편과 친구에 의해 죽은 주인공은 어쩐 일인지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인 10년 전으로 회귀한다. 사진=tvN 제공

 

‘내 남편과 결혼해줘’(내남결)가 장안의 화제다. 5.2%로 시작한 시청률은 1월 30일 방영한 10화에서 10.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는 마찬가지.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방송이 시작된 1월 첫째주 프라임비디오 월드와이드 TV쇼 부문 주간 순위 6위를 시작으로 2~4주차까지 3주 연속 글로벌 주간 순위 2위를 달성했다. K-드라마가 강세를 보이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아시아권은 물론이요,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 스위스 등 미주·유럽 국가에서도 인기라는 점이 고무적이다.

 

전형적인 재벌 3세 키다리 아저씨 역할의 남자 주인공으로 설정된 유재혁 부장. 그러나 이 인물 역시 10년 전으로 회귀한 인물이란 것이 밝혀지며 ‘내남결’은 흔한 회귀물에 재미를 준다. 사진=tvN 제공

 

‘내남결’은 요즘 웹툰·웹소설의 주류 트렌드인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장르에 속한다. 죽음을 맞는 등 모종의 이유로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으로 회귀하거나 누군가로 빙의하거나 또는 다른 삶으로 환생하는 등 ‘2회차 인생’을 살게 된다는 공식이다. 주인공들은 현재의 기억과 경험을 고스란히 지닌 채로 돌아가기에 당연히 ‘먼치킨’이 될 수밖에 없다.

 

‘내남결’의 주인공 강지원도 그렇다. 2023년, 위암 말기의 시한부 환자였던 강지원은 자신의 ‘베프’ 정수민이 남편 박민환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으로 모자라 자신의 죽음으로 타낼 보험금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잔인한 현실을 목격한다. 심지어 그들에 의해 살해당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그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4월 12일의 자신으로 돌아가 깨어난다. 박민환과 결혼하기 전이고, 위암이 아닌 가벼운 위염이 있던 때로 돌아온 것이다.

 

‘내남결’ 인기를 견인하는 두 인물을 꼽자면 단연 박민환과 정수민이다. 예능으로 친근한 이미지였던 이이경과 발랄하고 귀여운 역할을 주로 맡던 송하윤이 각각 분해 역대급 빌런이 되어 시청자들의 화를 돋운다. 사진=tvN 제공

 

돌아온 강지원은 이내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단,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하면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칙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지원이 자신의 불행을 피하고 박민환과 정수민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하나, 자신의 운명 대신, 정수민을 박민환과 결혼시키는 것이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라는 요상한 제목이 나올 수 있던 배경이다. 여기까지는 흔한 회귀물의 정석이다.

 

‘내남결’은 강지원의 회귀와 더불어 남자 주인공 역할인 유재혁(나인우) 또한 ‘2회차 인생’을 사는 회귀인으로 설정하여 재미를 배가한다. 원래 인생에서 강지원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짝사랑 순정남’이었던 유재혁은 강지원이 남편과 친구에게 배신당한 것을 알고, 2013년에 돌아와 강지원을 지키고 자신의 마음도 지키고자 적극적인 조력자로 나선다. 6화 엔딩에서 강지원과 유재혁이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듣다 무심코 (미래의) 그들의 대표곡 ‘봄날’과 ‘Dynamite’를 언급하다 서로의 회귀 사실을 깨닫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백미.

 

‘내남결’에서 강지원과 유재혁은 서로의 회귀 사실을 방탄소년단의 대표곡을 언급하며 깨닫게 된다. 원작 웹소설에는 없는 설정이지만, 방탄소년단이 2013년 데뷔한 데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아는 글로벌 스타여서 적절한 각색으로 보인다. 사진=tvN 제공

 

한 명의 회귀만으로도 1회차 인생의 답답함이 십분 사라지는데, 두 사람이 힘을 합치니 못할 것이 없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수십 회에 달하는 막장 드라마에서 오랜 시간 감내해야 했던 ‘고구마’를 먹을 필요가 없다. ‘내남결’에선 고구마와 함께 사이다를 쥐어 준다. 1회차에 있었던 악행을 본격적으로 시작 전인 2013년의 빌런들(박민환, 정수민)에게 과한 응징을 하는 건 아닐까, 잠시 고민하던 강지원의 염려도 사뿐히 붙든다.

 

원래대로라면 소극적인 자세로 박민환과 정수민의 가스라이팅에 맞춰주고 당해줬던 강지원이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당당히 나서자 빌런들도 그에 맞춰 업그레이드된다. 8화 가을워크샵에서 숙소쟁탈게임을 빙자해 대놓고 육탄전으로 도발하거나, 대놓고 물에 뛰어들어선 자신을 구하려는 강지원을 오히려 물귀신처럼 잡아 끌거나 하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빌런이 제대로 악행을 저지르니, 그에 맞서는 주인공의 복수는 당연한 정의구현처럼 보인다. 시청자들도 자신의 기획안을 가로챘던 상사, 밉살스러운 말로 자신의 자존감을 죽이던 친구, 자신의 모든 것에 퉁박을 놓는 남편과 시부모 등 일상의 고단함을 배가시키는 빌런(?)을 떠올리며 강지원의 모습에 열광한다.

 

회귀하여 2회차 인생을 사는 강지원에게 더 이상 답답함이란 없다. 예전 같았으면 친구에게 무조건 양보하고 당해줬겠지만 이제는 걸어오는 육탄전에도 서슴없이 덤벼든다.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게비스콘 짤’ 표정. 사진=tvN 제공

 

다만 열광 뒤에 필연적으로 드는 씁쓸함은 있다. 결국,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현생에서 정의구현은 요원한 일일까 하는 씁쓸함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빙자해 일어나는 학교 내 왕따(수민의 거짓 소문으로 지원은 왕따가 되어 공공연하게 우유를 맞는 등 폭력을 당한다)가 없고, 며느리에게 언어폭력과 정신적 학대를 가하는 시어머니가 없고, 대놓고 성희롱하고 후배의 공을 가로채는 상사나 원하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지며 남을 짓밟고 승승장구하는 친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이번 생은 망했어’ 하는 자괴감과 맞물리며 과거로 회귀한 강지원에게 열광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스라이팅, 왕따, 데이트폭력, 언어폭력 및 정신적 학대,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여전히 존재하는 가부장 문화, 갑질, 자본으로 결정되는 힘의 위력 등 ‘내남결’이 보여주는 현실사회에 대한 씁쓸함도 크다. 강지원의 복수 성공과 행복 성취에 따라 몇몇 빌런들이 인과응보에 처해지는 것과 별개로, 저런 현실이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뭐니뭐니 해도 ‘내남결’의 하이라이트는 과거의 흑역사를 뒤집고 역사를 새로 쓸 때다. 정수민의 계략으로 망신을 당할 예정이었던 고교 동창회와 주눅 든 채로 불행의 운명을 향해 걸어 들어갈 예정이었던 상견례에서 보여주는 2회차 인생 강지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이다 세례. 사진=tvN 제공

 

아무튼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하는 로또 같은 바람을 타고 ‘내남결’의 인기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생에 큰 불만은 없지만 나도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2002년 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돌아가도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처럼 열공해서 서울대 법대를 들어갈 것 같진 않으니까 우선 2002 한일 월드컵을 다시 한번 화끈하게 즐기고, 소소하게 스포츠 토토로 시드머니 벌어서 소소하게 삼성전자와 그해 상장한 넷플릭스 주식 좀 사두면서, 1회차보단 좀 더 적극적으로 인생 즐기며 살고 싶다. 아직 살아갈 날이 창창하게 남은 초보 중년 입장에서 이런 말 하긴 웃기지만, 인생 별거 없다. 그러니 남에게 못할 짓 하지 말고 과하게 욕심 부리며 살지 말자. ‘내남결’ 박민환과 정수민도 2회차 인생 살게 되면 그럴 텐데 말이지.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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