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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형 만한 아우 없다지만…" '언슬전'은 이리도 재미가 없을까

'판타지+로맨스+휴머니즘' 섞었지만 모든게 겉핥기…납득도 공감도 '글쎄'

2025.04.30(Wed) 10:44:18

[비즈한국] 역시 형만 한 아우란 없는 건가.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언슬전)’을 보며 든 생각이다. 알다시피 ‘언슬전’은 역대급 인기를 모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의 스핀오프 작이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크리에이터란 직함으로 물러났고, 출연진도 고윤정, 신시아, 강유석, 한예지 등 대거 젊은 배우로 바뀌었다. 엄연히 ‘슬의생’ 시리즈와 다른 이야기지만 ‘언슬전’은 ‘슬의생’ 시리즈의 동생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이름값의 무게는 꽤나 무겁다.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의 후속이나 스핀오프가 처음 받았던 감동을 넘어서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심지어 아우가 형보다 객관적으로 뛰어나더라도, 부모는 첫 자식에게 느낀 첫정이 유독 애틋한 법이니까.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로 방영이 무기한 연장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언슬전’. 산부인과 전공의 1년차가 한 명뿐이란 현실과의 괴리는 여전하지만, 드라마 시청률은 상승곡선 중이다. 사진=tvN 제공

 

지난 4월 12일 방영을 시작한 ‘언슬전’은 언젠가는 슬기로울 의사생활을 꿈꾸는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전공의(레지던트) 1년차들이 주인공이다. ‘의사생활’ 시리즈에서 환자들의 믿음과 존경을 받던 ‘율제 99즈’와는 달리 하루 종일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전공의들이 어떻게 성장해가는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언슬전’의 시청률은 나쁘지 않다. 첫 회 3.7%로 시작해 6화에서 5.5%까지 올랐고, OTT를 통한 글로벌 성적도 좋은 편이다. 그러나 시청자 반응은 다소 애매하다. 호불호가 더 강해진 느낌이다.

 

제작진도, 출연진도 엄연히 다르지만 ‘언슬전’의 뿌리는 ‘슬의생’을 기반으로 한다. ‘언슬전’의 사회초년생 4인방이 ‘슬의생’의 ‘99즈’ 같은 슬기로운 의사가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성장담이 주요 골자. 사진=tvN 제공

 

사실 ‘언슬전’은 본 시리즈 성공에 대한 부담은 둘째치고, 지난해 정부의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사태로 편성이 무기한 연기됐다가 어렵게 방송을 시작한 케이스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전공의 1년차 모집 결과, 전국 수련병원 정원 3594명에서 총 지원율은 314명으로 8.7%에 불과했고, 합격자는 181명으로 5%밖에 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산부인과 전공의 1년차의 정원은 188명이지만 지원 및 합격자는 단 1명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종로 율제병원에 산부인과 전공의 1년차가 무려 4명이나 모여 옥신각신하며 성장한다는 내용이 현실과 너무 괴리감이 느껴질 법하다. 

 

문제는 그런 괴리보다는 이 드라마만의 특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본 시리즈였던 ‘의사생활’ 시리즈는 판타지를 강하게 버무리긴 했으나 의대 동기들의 우정과 인간미에 중점을 두고 병원에서 일어나는 삶의 이야기를 강조하며 공감을 샀다. ‘언슬전’은 ‘의사생활’ 시리즈의 장점을 물려받으면서 주인공들을 사회초년생인 전공의 1년차로 바꿔 시행착오를 겪는 청춘의 성장통에 중점을 두려고 하는데, 그 모든 것이 겉핥기처럼 혀만 갖다 댄 느낌이다. 

 

졸부 아버지의 늦둥이로 곱게 컸다가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레지던트 재수생 생활을 시작하는 오이영. 의사의 성장담과 함께 사돈총각 구도원과 러브 라인까지 책임져야 한다. 사진=tvN 제공

 

매사 모든 것에 심드렁한 주인공 오이영(고윤정)부터 의사의 화려한 환상과 추레한 현실의 간극을 강조하는 표남경(신시아), 전직 아이돌 멤버였다 의사가 된 분위기 메이커 엄재일(강유석)과 로봇 같은 모범생 김사비(한예지) 등 1년차들의 캐릭터는 그럴 듯하게 잡았지만, 그것이 극중에 잘 녹아들진 않는다. 그냥 ‘이런 배경을 입은 1년차들이 모였으니 옥신각신, 아웅다웅할 수밖에 없다’라고 소리치는 느낌? 판타지 동화처럼 지극히 착한 인물들이 죄다 모인 것이 본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의사생활’ 시리즈의 그 착한 인물들은 입체적이긴 했다. 어딘가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일 것 같단 느낌 정돈 줬단 소리인데, ‘언슬전’의 오이영이나 엄재일 같은 주인공들은 물론이요, 마귀할멈이란 별명에도 압도적 존경을 받는 서정민 교수(이봉련) 같은 인물도 왜 그가 그런 인물인지 설명이 전혀 없다. 드라마가 중반까지 왔는데도 말이다. 

 

대세 청춘 배우 고윤정의 동기들로는 영화 ‘마녀 2’에서 1408:1의 경쟁률을 뚫었던 신시아와 ‘폭싹 속았수다’의 은명이로 얼굴을 알린 강유석, 그리고 높은 경쟁률을 뚫은 한예지가 이름을 올렸다. 사진=tvN 제공

 

오히려 가장 입체적 인물은 유일한 빌런으로 설정된 명은원(김혜인)으로 보인다. 본 시리즈의 추민하(안은진)에 밀려 종로 율제로 와서 어떻게든 교수가 되겠다는 의지로 업그레이드된 밉상 여우짓을 하는 그가 제일 입체적으로 보이면 문제 아닌가. 캐릭터들의 입체성과 관계성이 약화된 빈틈을 채우려 하는 건 로맨스. 오이영의 사돈총각이자 레지던트 4년차 선배인 구도원(정준원)을 오이영과 엮으면서 본격 러브라인을 보여주려나 본데, 사실 매사 심드렁한 오이영이 왜 갑자기 사돈총각 구도원에게 빠지는지 1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오이영과 러브 라인으로 엮이는 구도원 역의 정준원도 아직 대중에겐 낯선 얼굴이라 신선함을 불러 일으킨다. 사진=tvN 제공

 

시도 때도 없는 막무가내 휴머니즘은 더 대책이 없다. 생명의 탄생을 최초로 목도하는 산부인과를 배경으로 삼았을 때부터 휴머니즘 강조는 예상됐지만, 그리고 아무리 환자들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지만, 빌드없 없이 무차별 폭격처럼 휴머니즘을 난사하는 방식엔 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 아, 물론 아이 앞에 장사 없다고,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열 살짜리 소녀에게 오이영이 위로를 건네는 장면에선 좀 울컥하긴 했으나.  

 

생각해보면 나는 ‘슬의생’ 시리즈도 끝까지 본방 사수했지만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나는 왜 욕하면서도 ‘슬의생’을 보는가’라고 썼었고, 실제로 정말 어지간히도 욕을 하면서 드라마를 봤다. 그때도 썼지만 ‘슬의생’을 끊지 못했던 건 드라마 속 판타지가 납득이 되진 않지만, 그 판타지가 내 것이었으면 하는 부러움을 사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언슬전’의 판타지엔 그런 게 없다. 고윤정의 비현실적인 압도적 비주얼을 부러워하는 건 한계가 있지 않나. 판타지가 부럽지 않다면 공감으로 가야 하는데, 사회초년생의 삶을 지나왔음에도 ‘언슬전’ 주인공들의 그것에 공감이 되지 않는다니. 그나마 시간이 쌓이며 1인분이라도 하고자 하는 엄재일의 고군분투는 보이긴 하는데 가장 큰 롤을 맡은 오이영은 로맨스에 매진 중이시니···. 

 

추민하 역의 안은진을 시작으로 ‘언슬전’에는 ‘슬의생’ 멤버들이 곳곳에 출격 중. 까칠한 김준완 교수 역의 정경호도 서정민 교수의 동기로 깜짝 출연하며 반가움을 샀다. 사진=tvN 제공

 

정경호, 유연석 등 ‘99즈’를 비롯해 안은진, 하윤경, 배현성 등 ‘슬의생’ 멤버들의 특별출연으로 향수를 자극하곤 있지만, ‘슬의생’에 대한 의리로 ‘언슬전’을 보기엔 너무 지루하다. ‘슬의생’을 끝까지 봤던 것처럼 ‘언슬전’도 끝까지 볼 수 있을까? 형만 한 아우는 언제쯤 나올 수 있으려나.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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