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영화 제작비를 생각하면 우선 배우의 개런티를 떠올린다. 안 그래도 요즘 고액의 배우 출연료가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VFX 같은 특수시각효과 비용도 생각할 수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 대부분에 특수시각효과가 들어가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공연계에서는 어떤 비용이 핵심적일까. 특수시각효과(VFX)는 영화나 드라마에 덜할 것이니 배우의 개런티나 무대세트 비용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 무대는 스타 배우를 기용하는 것이 영화나 TV 드라마보다 덜할 것이며, 세트도 그렇게 비싸 보이지는 않는다. 중소 창작 뮤지컬이나 연극은 더욱 그러하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SNS로 축하를 전하며 앞으로 공연계에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4년 비영리 문화사업재단인 우란문화재단에서 처음 기획, 개발했고 2015년 우란문화재단 내부 공연 뒤에 대학로의 300석 규모 소극장에서 정식 초연했다. 민간 비영리 재단의 소신 있는 지원 덕분에 토니상까지 받았으니 매우 모범적인 사례다. 이 연장선에서 공공 영역에서 창작극에 실질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더 좋은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빅5 문화강국을 지향하며 2030년까지 300조 시장·수출 50조 원을 언급한 이재명 대통령은 문화예술 R&D(연구개발), 세제 혜택이나 금융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이러한 지원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공연계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비용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공연계에서 핵심적인 비용은 임대료와 대관료다. 대표적인 공연가인 대학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으면서 임대료가 치솟았다. 2015~2016년 대학로의 100석 미만 소극장 운영 고정비는 한 달 약 800만 원 수준이었다. 임대료와 공과금 등이 450만 원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2021년이 되자 고정비용이 1000만 원으로 올랐고 임대료도 이에 상응해 상승했다. 하루 임대료가 약 25만~30만 원으로 수익을 40만 원 내야 현상유지가 가능했다.
2025년 현재 대학로 극장의 하루 임대료는 100석 규모가 50만 원, 200석 규모는 100만 원에 달한다. 객석을 전부 채워야 수익이 난다. 그래서 배우들끼리 서로 객석 품앗이를 하는 일도 있다. 극장주 관점에서 목이 좋은 곳은 월 임대료가 1000만 원을 넘긴다.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면 대관료가 동반 상승한다. 대관료가 비싸면 좋은 작품을 오래 선보일 수 없다. 예전에는 몇 달 공연하던 것이 지금은 최대 몇 주, 최소 며칠에 한정할 수밖에 없다.
대학로는 사실 대표적인 지원 실패 사례다. 지원책이 오히려 독이 됐다. 2024년 대학로가 위치한 동숭동, 혜화동, 명륜2가와 4가동, 연건동 등 6개 동 지역의 44만 6569㎡(13만 5087평)가 대학로 문화지구로 지정됐다. 이때 건물주들은 용적률 상향, 세제 혜택을 받았다. 신축 건물을 올릴 경우 취득세와 등록세를 50% 감면, 재산세를 5년간 50% 감면해주고, 건물 용적률을 100% 상향해줬다. 소극장을 보호 육성하고 문화예술 공연을 진흥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극단이나 소극장 운영자는 정책의 수혜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되어 소극장들이 대학로에서 밀려났다. 문화지구 지정 이전 31.6%이던 소극장 비율은 지정 이후 20%로 약 11%포인트 줄었다. 문화지구 지정 이후 대학로 땅값은 해마다 10% 이상 올랐고, 소극장 임대료는 10년 만에 126%가 올랐다. 오랫동안 대학로에 있던 대학로 극장은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2019년 3월 폐관한 뒤 아예 단양으로 이주했다.
그렇다고 극장이나 극단에 개별적으로 현금성 지원을 하는 것도 한계에 봉착하기 쉽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공연예술특성화극장운영 사업’, ‘공연장 대관료 사업’을 통해 운영비와 대관료를 지원한다. 그런데 한시적인 작품과 소수에만 지원이 돌아가니 경쟁이 치열할뿐더러 제작비가 없거나 소규모 단체인 경우는 신청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양한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주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공연에는 소규모라도 지원하는 등 현실에 맞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공연계에서는 ‘민간공연장 상주단체 지원제’를 제안한다. 이는 정부나 지자체가 극장을 지원하면 극장에 상주하는 단체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무상으로 공연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정부가 한 소극장에 7000만 원을 지원하면 3개 극단이 6개월간 무상으로 공연을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제작비와 인력비가 없는 극단을 포함시킨다. 상주극단은 심사를 통해서 선발할 수 있다. 건물주를 지원하기보다는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는 극단과 소극장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 극단에 지원이 가게 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홍보 마케팅도 소규모 창작 단체에는 긴요하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홍보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것은 불문율이다. 최근에는 공연이 대학로를 벗어나 성북구, 은평구, 관악구, 문래동, 홍대, 서대문구 등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어디에서 어떤 공연을 하고 공연장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관객들이 잘 모른다. 소규모 극장이나 극단에서 이 같은 홍보 마케팅을 효율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창작 뮤지컬이나 연극의 경우에는 더 어렵다. 공연계에서 통합적인 홍보 마케팅 센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정부와 지자체가 극단의 대관료나 홍보 마케팅을 지원하는 것은 그들이 작품 제작에 매진해 좋은 작품이 다양하게 탄생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젊은 인력들이 창작을 지속할 수 있게 그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지원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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