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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욱의 나쁜골프] 멀리건은 '멀리권'이 아니다

실력이 부족한 골퍼를 위한 '예외적 기회'…룰이 아닌 배려 차원으로 인식해야

2025.07.01(Tue) 09:31:18

[비즈한국] 언제부턴가 골퍼들의 입에서 “멀리건 하나씩 쓰자”라는 말이 나왔다. 꽤 자주 나왔다. 심지어 소위 ‘스멀’이라는 샷을 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멀리건을 주고 다시 샷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팀에 따라 다르지만 멀리건을 전후반 1개씩 쓰는 팀도 있다. 이러다 보니 골퍼들이 스코어를 이야기할 때 뭔가 복잡해 보인다. 80대를 쳤지만 멀리건을 썼으니까 사실은 90대를 친 거지. 이런 얘기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그 녀석이 나보다 한 타 잘 쳤지만, 그 녀석은 멀리건 두 개나 썼으니 내가 잘 친 거지.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해야 할 스코어에 이런 항변 섞인 숨겨진 스토리가 있다니.

멀리건은 원래 실력이 부족한 골퍼를 배려하기 위한 예외적 기회였지만, 스크린골프 문화의 영향으로 남발되면서 스코어를 왜곡하고 골프 본연의 객관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비즈한국DB


골프는 시대에 따라 참 많이 바뀌었다. 사장님, 사모님의 전유물이었던 골프는 어느 정도 대중화되었다. 젊은 골퍼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여성 골퍼들의 수도 급속하게 늘어났다. 20, 3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골프장에서 20, 30대의 젊은 골퍼나 여성 골퍼들은 다른 골퍼들의 관심을 받을 만큼 귀했지만, 지금은 남녀를 불문하고 전 연령대가 즐기는 ‘모두의 골프’가 되었다. 골프 패션도 바뀌었고 골프를 즐기는 방식도 바뀌었다. 한마디로 골프는 많이 캐주얼해졌다.

이런 변화를 이끌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스크린 골프’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으로서 골프 시뮬레이터 기술은 가히 세계적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골프 입문자들은 스크린이 있는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스크린 골프 게임으로 인생 첫 라운드를 하며 실전 준비를 한다. 그런데 멀리건 남발의 원인 중 하나를 스크린 골프에서 찾을 수 있다. 스크린 골프 게임을 시작할 때 ‘멀리건’의 개수를 설정한다. 최대 3개까지 멀리건을 설정할 수 있다. ‘멀리건’이 게임 안에 포함되어 있다. 스크린 골프로 골프를 처음 접하는 골퍼들은 멀리건 역시 게임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 있다. 18홀 3개의 멀리건을 타수로 계산해 보자. 오비라고 가정하면 6타의 차이다. 6타의 차이는 100돌이를 거의 보기 플레이어로, 80대 골퍼를 싱글 핸디캐퍼로 만들 수 있는 타수다. 이렇게 보면 멀리건은 아주 매력적인 멘탈 회복 처방이자 스코어 마사지의 최대 기여자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땠는가. 일본식 발음의 영향인 듯 보이는 ‘몰간(멀리건)’은 그냥 농담의 소재였다. 아주 특별한 경우, 예를 들면 동반자의 샷이 안돼도 너무 안됐을 때, 특히 소위 비즈니스 골프에서 갑님이 그랬을 때 18홀에 한 번 정도 멀리건을 주곤 했다. 그래서인지 멀리건을 주는 사람도 조심스러웠고 받는 사람은 고맙지만 겸연쩍어했다. 멀리건이 남발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멀리건의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멀리서 긴 운전을 하고 온 동반자의 첫 티샷 미스에 대해서 한 번 더 치게 해줬다는 설도 있고, 다른 골퍼들에 비해 실력이 딸리는 골퍼를 위해 첫 홀의 미스샷에 대해 벌타 없이 한 번 더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멀리건은 실력이 딸리는 핸디캡이 높은 골퍼에게 부여하는 것이지, 모든 골퍼에게 공평하게 ‘멀리건’이 분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끔 충분히 고수임에도 “나, 멀리건 하나 쓸게”라는 골퍼가 있다. 그 멀리건으로 70대를 친다면, 그건 고수의 자세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노멀리건’ 골프를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멀리건을 주고받아야 한다면, 일단 그 횟수를 줄이자. 구력이 얼마 안 된 핸디캡이 높은 골퍼들에게 멀리건을 주자. 스스로 “전 보기 플레이어예요”라고 말하는 골퍼라면 멀리건은 옆에 있는 백돌이님에게 양보하자. 멀리건은 동반자에 대한 배려이지, 시스템도 아니고 절대 룰도 아니다. 아무리 로컬 룰보다 앞서는 게 팀 룰이라고 해도 멀리건을 마치 룰 중 하나인 양, “멀리건은 몇 개씩 할까?” 같은 대화는 지양돼야 할 것이다. 또한 멀리건은 티잉 구역, 티샷에만 적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티샷이 아닌 아이언샷이나 어프로치 샷에서 “나 멀리건…”이라고 외치거나 “자… 멀리건입니다”라고 말하지는 말자.

내가 멀리건을 쓰고 또 쓰는 동안, 남들은 뒤에서 “그 사람 스코어는 몇 타, 아니 10타는 더해야 돼… 멀리건을 몇 개나 썼는데”라고 할 것이다. 또 멀리건을 많이 주는 것이 동반자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의 동반자가 좋은 골퍼로 바르게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멀리건은 멀리권이 아니다. 배려가 골퍼를 버려 놓는다.​

 

​​필자 강찬욱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

강찬욱 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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