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5일 경찰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SPC 시흥공장의 식품 제조 과정 전반에 대한 합동점검에 나섰다. 지난 5월 50대 여성 근로자의 끼임 사고가 발생했던 기계 근처 식품용 윤활유에서 인체 유해 물질이 검출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시흥경찰서와 식약처 직원 6명이 두 시간 넘게 공장을 점검했는데, 당시 경찰과 식약처는 제빵 과정 위생관리를 포함해 식품위생법 위반 사항 전반을 확인했다.
10일 뒤인 25일, 이재명 대통령은 시흥공장을 직접 찾아 서른네 차례나 SPC 측에 직접 질문을 던졌다. “왜 여덟 시간씩 3교대하지 않고 열두 시간씩 2교대를 하느냐. 기어서 사망한 게 맞냐” 같은 질문은 물론 답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면 모른다고 해라”라는 압박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 방문 후 SPC 대대적 대책 내놔
이 대통령은 주 보고자로 나선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를 상대로 지난 5월 발생한 사망사고 경위와 재발 방지책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특히 3조 2교대 근무 형태를 지적했다. “밤에는 (근로자들이) 졸립겠다”며 유사한 사고가 계속되는 점에 대해 “두 번, 세 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4일을 밤 7시부터 새벽 7시까지 풀로 열두 시간 일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자리에 참석한 허영인 SPC그룹 회장에게 “임금 총액이 너무 낮아서 여덟 시간씩 일을 시키면 일할 사람이 없어서 여덟 시간 3교대를 못하는 것 아니냐”고도 질타했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 방문 이후 곧바로 대책을 내놓았다. 이틀 후인 27일, SPC그룹은 “여덟 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기 위해 인력 확충, 생산 품목과 생산량 조정, 라인 재편 등 전반적으로 생산 구조를 완전히 바꿀 계획”이라며 “각 사별 실행 방안을 마련해 10월 1일부터 전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안전설비 및 자동화에 624억 원, 신공장 건립에 2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필수적인 품목 외에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주간 근무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지지부진했던 수사, 달라질까
대통령이 산업재해가 발생한 개별 기업을 직접 방문해 사안을 챙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사정당국들이 SPC그룹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통상 대통령이 나서 특정 기업의 문제를 거론하면 경찰과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당국들이 그 기업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 점검에 나서기 때문.
특히 SPC그룹은 공장에서만 지난 3년 동안 유사한 끼임 사고가 계속됐다. 지난 5월 중순에는 시흥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뜨거운 빵을 식히기 위해 기계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넣고 윤활유를 뿌리다가 상반신이 기계에 끼여 숨졌고, 지난 2022년 10월에는 SPC그룹 계열사인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작업 도중 소스 배합기에 앞치마가 빨려 들어가면서 숨졌다. 2023년 8월에도 SPC 샤니 성남 제빵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2022~2025년 사이 SPC 계열 공장에서 산재 사망자만 6명에 달했고, 5년 동안 SPC 주요 계열사에서 발생한 산재 신청 건수 역시 약 1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는 SPC그룹 허영인 회장 등을 이미 형사 고발했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5월, 허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사고 때도 강동석 전 SPL 대표만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을 뿐, 허 회장을 비롯해 그룹 차원에서 법적 책임을 진 이는 없었다. 지난 2023년 8월 발생한 사고 관련해서는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1년 11개월째 조사하는 중이다.
#대통령실 반응은?
SPC의 쇄신책이 나온 다음날인 28일, 대통령실에서는 “SPC그룹이 변화로 답했다”는 긍정적인 평이 나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이) 일주일에 나흘을 밤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열두 시간씩 일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며 거듭 질문하면서 생명을 귀히 여기고 안전을 위한 비용을 충분히 감수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당부와 바람을 전한 지 이틀 만에 SPC그룹이 변화로 답한 셈”이라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대통령의) 행보가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메시지 전파이지, 선을 정하고 이걸 넘으면 무조건 벌칙이라는 식의 확정적 의미는 아니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과거 땅콩회항에서 시작된 대한항공 사태처럼 SPC그룹에 대해 사정당국이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검찰 고발 및 기소까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대대적인 수사보다는 문제가 된 부분만 각 사정당국이 원칙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대통령실에서 직접 지목한 기업들을 상대로 어디까지 조치하는지를 모든 대형 로펌이 예의 주시하고 있을 것”이라며 “리스크 관리를 위해 어디까지 전략을 짜야 할지도 기업들에게 자문해야 하는데, 특히 진보 정부가 집권하면서 산업재해 문제에 기업들 우려가 큰 상황이기 때문에 SPC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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