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초반부터 대작의 기운이 물씬했다. 1~3화가 공개됐을 때부터 무릎을 쳤는데, 7화까지 나온 지금(7월 31일 기준)은 확신하고 있다. 11부작이니 아직 4화분이 남았고, ‘용두사미’로 끝난 작품들의 쓰라린 기억이 있음에도 설레발을 멈출 수 없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디즈니플러스 ‘파인: 촌뜨기들’ 이야기다.

고려 시대인 1300년대에 원나라에서 출항해 일본으로 향하던 무역선이 서해 부근에서 표류해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 침몰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따금 어부들의 그물에 그릇들이 걸려 나오곤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그 배 안에 실려 있던 송·원나라대 유물이라는 말씀. 바닷속에 눈먼 보물이 잠겨 있다는 소문이 퍼지니, 전국의 도굴꾼들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파인’의 주인공인 오관석(류승룡)과 그의 조카 오희동(양세종)도 그 기류에 올라탄 이들 중 하나다.

실제로도 수백 명의 도굴꾼이 달라붙었던 사건인 만큼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무수히 많다. 오관석과 오희동을 중심으로 관석에게 보물찾기 프로젝트를 의뢰한 골동품 전문가 ‘인사동 살쾡이’ 송기택(김종수), 송기택에게 자금줄을 댄 흥백산업 회장 천황식(장광)과 그의 젊은 아내 양정숙(임수정) 등 서울의 인물들이 한 켠에 있다. 그리고 관석과 희동과 함께 목포로 내려가는 일꾼 겸 감시자인 임전출(김성오)과 나대식(이상진)이 있고, 보물찾기를 위해 관석이 목포에서 접근한 도자기 전문가 하영수(우현)와 선주 황태산(홍기준)과 잠수사 고석배(임형준)가 있다.

그런데 이런 노다지판에 관석 일행만 있을 리 없다. 골동품 사기꾼으로 유명한 김 교수(김의성)가 배가 묻혀 있는 지점을 정확히 아는 잠수부 이복근(김진욱)과 목포 건달 장벌구(정윤호) 패거리를 거느리고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관석 일행과 김 교수 일행이 손을 잡기로 하지만, 판이 커지면서 다른 인물들도 줄줄이 엮인다. 서울에 가고 싶다는 욕망으로 희동에게 접근한 행운다방 레지 박선자(김민), 공권력의 필요성으로 벌구의 사촌이자 목포 경찰인 심홍기(이동휘)가 엮이고, 김 교수에게 골동품 사기를 당하고 그를 잡으러 온 부산 사내 덕산(권동호)과 덕산을 돕기 위해 등장한 김 코치(원현준) 일행 등등 불나방처럼 모여든 인물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복잡다단한 인간군상을 그리는 만큼 각각의 캐릭터와 그들이 맺는 관계성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관건인데, ‘파인’은 그 어려운 것을 유려하게 묘사해낸다. 여기엔 인물들을 찰떡처럼 소화한 배우들의 공도 크다. 류승룡, 김의성, 김종수, 우현, 장광 등 잔뼈 굵은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로코물에서 주로 반듯한 이미지였던 양세종과 욕망의 여왕으로 얼굴을 갈아 끼운 임수정의 변신이 눈이 부시다.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로 20년 넘게 활동한 정윤호의 활약은 어떻고. 배우로 활동한 지도 제법 되었지만 ‘파인’이 배우 정윤호의 진정한 ‘첫 번째 레슨’이라 해도 좋을 만큼 차진 전라도 사투리와 능란한 연기로 시청자의 눈을 붙든다. 하다못해 특별출연으로 나선 이들의 연기도 팔딱팔딱 뛰는 활어 못지않다. 1화에서 선장으로 특별출연한 박상면과 서경석의 ‘티키타카’를 보라고.

‘이끼’ ‘미생’ ‘내부자들’ 등 여러 작품이 영상화되어 성공을 거둔 윤태호 작가의 원작인 만큼, 폼만 잡는 명대사가 아닌, 생활밀착형의 쫀쫀한 대사들이 웃음을 일으키고 마음을 훔친다. “사기를 치려면 뭐이가 제일 중요하겠니? 진심이야, 진심.” 사기를 칠 때 진심을 강조하는 이런 웃음 포인트 대사들은 도처에 난무한다. “너는 똥 닦을 때 보고 닦냐? 거기쯤 있겄다 싶은 믿음으로 닦제”라고 할 때, 관석이 돈줄을 틀어쥔 사모님 정숙을 접대하고자 조카 희동을 선물로 붙이면서 진심 어린 어투로 “희동아. 최선을 다하자, 우리”라고 할 때 웃지 않을 재간이 있겠냐고. 서로 속고 속이고, 뺏고 빼앗는 와중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하는 근면성실한 도굴꾼들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포착한 대사들이 연기력과 어우러지며 퍽 맛깔나다. 여기에 전라도 사투리를 중심으로 경상도, 충청도, 이북까지 전국 팔도 사투리들이 총출동해 감칠맛을 더한다.

5화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도자기를 건져냈고, 7화에서 첫 희생자가 나온 만큼 본격적인 이야기는 남은 4화분에서 펼쳐질 예정. 천 회장이 관석에게 지시한 은밀한 업무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도굴꾼들이 원하는 대로 1000점이 넘는 보물을 무사히 캐 각자 손아귀에 큰돈을 쥘 수 있을지, 사모님의 꿍꿍이와 인사동 살쾡이의 꿍꿍이는 먹힐지, 무엇보다 이 욕망이 드글드글 들끓는 망망대해에서 누가 살아남을 것인지 관전 포인트가 한두 개가 아니다.

‘파인’은 영화 ‘타짜’ ‘도둑들’ ‘밀수’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경쾌한 리듬의 케이퍼 무비를 좋아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다. 영화 ‘범죄도시’ 1편과 드라마 ‘카지노’ 시리즈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의 연출 완급력과 날고 기는 배우들의 연기 향연을 즐기는 재미가 쫄깃하다. 아직까지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 결제를 권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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