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모두의 손에 총이 쥐어진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리거’가 던진 도발적인 질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극강의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사는 대한민국에서, 총을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을까. 작품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최근 일어난 인천 사제 총기 참극도 이 질문에 대한 참혹한 답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10년 가까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며 고시원에 살고 있는 이 남자, 유정태(우지현)는 어느 순간 폭발하고 만다. 외부인 출입금지인 고시원에 여자친구를 데려와 성관계를 하는 사람, 버젓이 문을 열어놓고 방에서 흡연을 일삼는 사람, 공용 냉장고에서 이름 붙여둔 자신의 반찬을 훔쳐 먹는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방조하는 고시원 총무···. 모든 것이 남자의 트리거(방아쇠)를 당겼다. 남자를 상담하던 정신과 의사도 말했지 않나. “사람은 모두 마음 속에 트리거가 하나씩 있어요.” 문제는 그 남자에게 총이 있었다는 것.

‘트리거’는 악의를 가지고 총을 나눠준 누군가에 의해 총을 손에 쥐게 된 사람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군인 출신 경찰관 이도(김남길), 이도와 함께하게 되는 의문의 남자 문백(김영광)의 모습을 담는다. 총을 받는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장수 고시생 유정태를 시작으로 전자발찌를 찬 성폭행범, 조폭들의 뒷처리를 하는 심부름꾼 건달, 계약직 아들의 억울한 죽음 이후 매일 1인 시위에 나서는 어머니, 학교에서 매일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 등등. 캐릭터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저마다 착실하게 분노와 스트레스가 적립돼 언제든 트리거가 당겨질 수 있는 상태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일반인이 총기를 소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총기청정국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잘 알다시피 자살률 1위, 우울증 유병률 1위일 만큼 병든 나라이기도 하다. 너무 많이 쓰여 이제는 식상한 단어인 ‘헬조선’에서, ‘트리거’ 속 인물들처럼 “니들 끝까지 나 무시하네” “아이씨, 다 죽여버리고 싶다” “얼마나 우리가 우스웠으면!” 이렇게 뇌까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러니까 ‘트리거’의 핵심은 총이 아니다. ‘총기 범죄 미화’ 어쩌고 하는 말은 달을 보라 하니 손가락만 쳐다보고 이상한 해석을 한 셈이다. 총의 방아쇠를 당기게 한, 안전장치가 제거된 혼란스러운 세상의 저변을 들여다봐야 한다.

언론에 공개된 ‘트리거’ 1~4화에서는 군인으로 복무했을 때 총기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이도가 의문의 총기 사건을 추적하고, 3화부터는 문백이 본격 합류해 콤비 플레이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도가 저지해야 하는 인물들의 사연들이 가볍지 않기에 흔한 액션물 보듯 즐거워하긴 힘들지만, 군대에서 스나이퍼였던 것으로 보이는 이도의 활약이 나름 존 윅 못지않다.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 중에서도 ‘액션 장인’으로 불릴 만큼 액션에 일가견이 있는 김남길에 잘 어울리는 배역이다. ‘썸바디’ ‘악인전기’ 등으로 이미 독특한 광기의 기운을 보여줬던 문백 역의 김영광은 후반부 보여줄 것이 많아 보인다. 길해연, 김원해, 박훈 등 여러 배우들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와중 초반 돋보이는 건 유정태 역의 우지현. 대한민국의 평범한 분노조절장애자(?)의 모습을 촘촘하게 표현해낸다.

중요한 건 이후의 이야기이다. 1~4화에서 총을 접한 사람들이 총기를 겨눈 대상은 다양했다. 과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모두가 총을 받는다고 총을 쏘게 될까? 총으로 죽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총을 쏘는 이도의 마음은 괜찮을까? 정체가 불분명한 문백의 사연은 무엇이고, 총기를 나눠주는 사람의 존재는 또 누구인가. 1~4화가 이야기 전개 방식에 큰 무리가 없으면서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한 터라 이후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기대를 품게 된다.
‘트리거’는 데뷔작 ‘미드나이트’로 캐나다 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권오승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총 10부작. 계속해서 사람들의 트리거를 당기는 이 엄혹한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지 여부는 7월 25일 공개 이후 판단하시길.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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