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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유럽 놈들 다 휴가 갔다, 나만 빼고…"

유럽의 길고 긴 여름휴가, 혁신의 걸림돌? 재충전 위한 필수?

2025.08.28(Thu) 10:45:38

[비즈한국] 한국과 유럽 사이에서 일하다보니 가장 곤혹스러운 시기가 여름휴가가 집중된 7~8월이다. 여름, 유럽은 대체로 전원이 꺼진다. 적어도 열흘에서 2주 정도 휴가는 보통이고, 길게는 4주가량 긴 휴식이 이어진다. 9월에 열릴 여러 박람회를 준비하거나 하반기 유럽 기업과의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한국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이 기간에 유럽 파트너로부터 날아오는 ‘휴가 중 자동응답’ 이메일을 받고 불안감이 커진다. 

 

스타트업계에서도 투자자들은 해변으로 떠나고, 사무실은 텅 비며, 뉴스와 신제품 발표도 잠잠해진다.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유럽 문화의 단면이다. 미국식의 ‘숨 가쁜 여름’과는 확연히 대조적이다.

 

유럽 스타트업들이 최장 4주에 이르는 여름휴가를 즐기는 동안 한국 스타트업은 가을을 위한 준비에 힘을 쏟는 것은 어떨까. 사진=생성형 AI

 

#유럽도 AI업계는 쉬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여름은 달랐다. 인공지능(AI) 붐이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의 여름 풍경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GPT-5 같은 모델이 나오면 며칠 내로 서비스에 적용하지 않으면 고객을 잃는다는 두려움에 AI 스타트업들은 여름휴가도 반납했다.

 

스웨덴의 AI 앱 개발사 러버블(Lovable)과 유럽 주요 테크 창업자들이 만든 ‘프로젝트 유럽(Project Europe)’은 지난 8월 12일부터 13일까지 스웨덴에서 무려 20시간짜리 해커톤을 열었다. 프로젝트 유럽은 25세 이하 기업가들에게 투자하기 위해 결성한 1000만 유로(162억 원) 규모의 액셀러레이터다.

 

참가팀 중 굿 오멘(Good Omen)은 유럽의 비즈니스 뉴스 서비스 회사인 임팩트 루프(Impact Loop)가 제안한 ‘AI 기자 아바타 뉴스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20시간 만에 뉴스룸 아바타와 AI 영상 플랫폼 두 가지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이들은 최종 우승팀으로 선정되었고, 임팩트 루프는 이들의 권리를 인수해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해커톤에서 우승한 굿 오멘 팀. 사진=impactloop.com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 스케일스웨이(Scalesway)의 AI 제품 책임자 프레드 바돌레(Fred Bardolle)는 시프티트(sifted)와의 인터뷰에서 “올여름에는 팀이 쉴 여유가 없다. 오픈AI의 GPT-5 같은 새로운 모델이 정기적으로 출시되면 며칠 내로 플랫폼에 모델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라며 분주한 상황을 전했다.  

 

미국 VC들이 이런 분위기에 불을 붙이고 있다. 유럽에서의 딜메이킹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프티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최소 두 건 이상의 AI 투자를 집행한 미국 VC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3% 증가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 ‘996 논쟁’

 

AI 열풍이 몰고 온 속도전은 유럽의 전반적 문화에 변화를 줄 것인가. 최근 유럽의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996 논쟁’이 불거졌다. 런던과 미국의 크로스 보더 VC인 인덱스 벤처스(Index Ventures)의 파트너 마르탱 미뇨(Martin Mignot)는 “996이 새로운 표준(Forget 9 to 5, 996 is the new startup standard)”이라며 유럽에 미국의 허슬 문화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996’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것을 뜻한다.

 

마르탱 미뇨의 링크드인 글. 사진=링크드인


특히 AI 붐, 글로벌화된 경쟁, 극심한 인재 부족, 그리고 젊은 AI 네이티브 세대가 소비자가 되는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AI 시대에는 “제품에 투자하지 않는 매 순간이 비용이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뇨는 동시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회사가 빅뱅 단계를 넘어설 때, 어떻게 이 강도를 지속 가능한 체계로 바꿀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투자한 영국의 유니콘 핀테크 기업 레볼루트(Revolut)의 사례를 들어 “레볼루트는 초기에는 996로 성장했으나 지금은 제도화된 성과 관리 체계를 갖추었다”면서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는 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AI 도입 플랫폼 랑독(Langdock)의 CEO 레너드 슈미트는 여름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랑독은 20명 남짓한 팀으로 여름에도 제품을 꾸준히 내놓으며 연간 반복 매출(ARR) 700만 달러(97억 원)를 돌파했다. 그는 시프티드와의 인터뷰에서 그 비결로 ‘차분한 긴급성(calm urgency)’을 들었다. 빠르게 움직이되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지 않는 것, 늦게 일한 다음 날은 여유 있게 시작하는 것이 노하우라고.

 

슈미트는 “우리 팀원 모두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고객을 상대하려면 결국 중요한 건 의사결정의 질이다. 그리고 의사결정의 질은 수면과 건강에서 나온다”며 지속 가능한 기민함을 강조한다. 

 

 

여름의 한복판에서 700만 달러의 연간 반복 매출(ARR)을 달성한 베를린 스타트업 랑독. 사진=링크드인

 

#유럽의 긴 ​여름휴가, 한국 스타트업엔 기회

 

유럽의 여름은 길다. 한국 스타트업에게는 답답한 공백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공백을 숨 고르는 시간으로 활용하자. 

 

휴가철 유럽의 VC와 기업 담당자들이 자리를 비운 동안 한국 스타트업은 내실을 다져야 한다. IR 자료를 다시 점검하고, 제품 데모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며, 법무·재무적 리스크를 사전에 정리하는 ‘딥 다이브’의 시간으로 써야 한다. 유럽 각국의 규제·인증 체계, 다가오는 산업별 컨퍼런스와 전시회 일정을 살피고, 가을 이후 출장 동선을 구체화하는 최적의 시기다.

 

그렇게 9월, 유럽 파트너들이 일터로 복귀했을 때 즉시 대화 가능한 상태가 되도록 ‘공짜로 얻은 준비의 시간’을 만끽하자.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속도 싸움이지만, 속도만 가지고는 끝까지 달릴 수 없다는 것도 기억하자. 때로는 장기적 혁신의 전제 조건으로 잘 쉬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유럽인들을 보며 떠올린다면, 더욱 글로벌스탠더드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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