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쿠팡이 중소상공인 지원책으로 내세운 로켓그로스가 사실상 로켓배송으로 셀러를 끌어들이기 위한 사다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커진다. 쿠팡이 로켓그로스를 통해 성장한 셀러에게 일방적 입고 중단 통보를 내린 뒤 로켓배송으로 전환하는 행태가 늘고 있다.

#소상공인 위한 그로스? “매출 내면 로켓배송으로 이관”
전자기기를 판매하는 A 브랜드는 최근 쿠팡 판매를 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그간 로켓그로스를 통해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렸는데, 지난달 상품 입고 중단을 통보받았다. A 브랜드에 따르면 쿠팡은 A 브랜드에 로켓그로스 대신 로켓배송으로 서비스를 전환할 것을 제안했고, 이를 거절하자 곧바로 로켓그로스에 상품 입고를 차단했다.
A 브랜드 관계자는 “6월 쿠팡으로부터 ‘로켓그로스 서비스를 제한할 수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협력사 수가 증가하고 있어 모든 협력사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며 “이후 로켓배송 담당자가 연락해, 로켓그로스가 아닌 로켓배송으로 서비스 이관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거절하자 지난달 로켓그로스 입고가 전면 중단돼버렸다”고 말했다.
로켓그로스는 쿠팡이 2023년 출시한 풀필먼트 서비스다. 중소상공인이 상품을 입고하면 쿠팡이 보관, 포장, 재고관리, 배송, 반품까지 전 과정을 맡는다. 쿠팡 앱에서는 ‘판매자로켓’ 표시로 구분된다. 반면 로켓배송은 쿠팡이 상품을 직매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셀러들은 대체로 로켓배송보다는 로켓그로스를 선호한다. 로켓배송은 쿠팡이 상품을 직매입하기 때문에 재고나 가격 등의 결정권이 쿠팡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수료 부담이 크다. 한 셀러는 “로켓그로스 수수료는 8%대로 물류비 등을 포함하면 15% 정도다. 하지만 로켓배송으로 전환하면 수수료가 30% 수준에서 시작한다”며 “처음에는 30%지만 이후 쿠팡으로부터 일방적인 공급가 인하를 요구받기 때문에 수수료가 지속적으로 높아진다. 쿠팡은 수수료 인상을 위해 로켓그로스로 매출을 키운 업체에 로켓배송 전환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셀러도 “현재 매출의 30%가량이 쿠팡에서 나와 쿠팡을 떠날 수 없다. 쿠팡이 원하는 대로 로켓배송으로 전환해야 할 것 같아 화가 난다”며 “로켓그로스는 사실상 쿠팡에 판매, 소싱 데이터를 제공하는 용도에 불과하다.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매출이 잘 나오면 결국 로켓배송으로 전환시키는 구조가 너무 악랄하다”고 비판했다.

비즈한국이 확보한 한 브랜드사와 쿠팡 관계자의 미팅 녹취록에는 쿠팡의 내부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쿠팡은 수익성 확대를 위해 로켓그로스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올린 셀러를 로켓배송으로 전환하는 방침을 운영 중인 것으로 보인다.
녹취록에서 쿠팡 관계자는 “회사는 판매자를 1P(로켓배송), 2P(로켓그로스), 3P(오픈마켓 셀러)로 구분한다. 어떻게든 셀러를 일단 3P로 가입시킨 뒤 매출이 나오면 2P를 권유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매출 규정이 있다. 로켓그로스 판매자가 일정 기준 이상 매출을 내면 로켓배송으로 이관시키도록 하는 것이 회사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수익 창출,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로켓그로스를 만들었다. 초기에는 뚜렷한 기준 없이 셀러를 받다 보니 가전 업체가 다수 입점했지만, 가전은 물류센터 공간을 크게 차지해 부담이 크다. 물류 회전율이 높아야 회사에 이익이 나는 만큼, 앞으로 가전 부문 비중을 크게 줄이고 입고 제한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즈한국은 쿠팡 측에 녹취록 속 로켓그로스 운영 방식에 대한 입장을 요청했으나, 별도의 답변은 받지 못했다. 다만 쿠팡은 “로켓그로스 서비스의 편의성으로 인해 이용하고자 하는 판매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물류 센터 및 인력의 제한 등으로 로켓그로스 이용을 위한 상품 등록이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며 “판매자가 이를 사전에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사전 고지, 유예기간 등 필요한 절차를 취하고 있다. 더불어 판매자는 로켓그로스 이외에도 마켓플레이스 등 다른 서비스를 통해 계속해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셀러들 “찍히면 ‘블랙리스트’ 올라 계정 정지될 수도”
최근에는 로켓그로스 입고 중단을 통보받은 셀러에게 외부 에이전시가 곧바로 연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 에이전시는 “로켓그로스 입고 재개를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접근해 높은 수수료를 요구한다.
한 셀러는 “쿠팡으로부터 로켓그로스 입고 중단 통보를 받은 직후 곧바로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떻게 입고가 중단된 것을 알았냐고 물으니 ‘쿠팡 출신이라 내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 실시간으로 우리 회사의 쿠팡 계정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며 “쿠팡에서 로켓그로스 셀러를 로켓배송으로 강제 이관하는 사례가 전체 카테고리에 걸쳐 나타나면서, 쿠팡 내부 정보를 공유받는 업체들이 이런 형태로 영업 제안을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셀러들은 판매 계정이나 매출 현황 같은 민감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에 예민한 반응이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앞서의 셀러는 “쿠팡 방침에 반기를 들거나 지적하는 사업자는 언제든 계정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셀러들이 쿠팡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부당한 운영 방식도 문제 삼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쿠팡 출신 인력들에 따르면 내부에 셀러를 관리하는 ‘블랙리스트’가 따로 존재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브랜드 혹은 계정 정지 조치를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쿠팡에서 판매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셀러들은 쿠팡의 부당한 조치에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비즈한국은 내부 정보 유출 정황과 셀러 블랙리스트 운영 의혹에 대해서도 확인을 요청했지만, 쿠팡 측은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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