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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 공전미래, 우리는 아침마다 '서로의 삶'을 마신다

커피를 매개로 연결된 다양한 삶의 궤도를 조명하다

2025.11.20(Thu) 16:25:05

[비즈한국] 아침마다 우리가 들이켜는 커피 한 모금에는 여러 사람의 삶이 겹쳐 있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그 사실을 알지만, 굳이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개인의 취향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타인의 삶과 노력이 응축된 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에 더 가깝다.

 

그 길고 복잡한 여정은 늘 우리의 시야 밖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먼 산지에서 커피 체리를 따는 손, 생두가 가득 담긴 자루를 짊어진 어깨, 도시의 로스터기 앞에서 온도를 조절하는 눈빛, 마지막으로 컵을 건네는 바리스타의 미세한 손동작까지. 커피는 이 모든 시간과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품은 채 우리 앞에 놓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거의 알아채지 못한 채, 그저 ‘좋아하는 맛’으로 기억한다.

 

국내 스페셜티 커피 시장을 개척한 커피리브레가 펴낸 인터뷰집 ‘공전미래’​는 바로 그 흔적들을 차분히 비춘다. 농부나 로스터, 바리스타 같은 ‘커피 산업의 중심’에 있는 이들뿐 아니라, 커피리브레와 오랜 시간 관계를 이어온 퀵서비스 기사, 커피 부산물을 받아 순환을 실천하는 농장,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작은 가게들처럼, 커피의 주변에서 자신만의 궤도를 돌고 있는 사람들까지 함께 담았다.​

 

커피리브레 인터뷰집 ‘공전미래’. 166쪽. 1만 7000원.

 

커피리브레는 오랫동안 커피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왔다. 윤리적으로 거래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제조하는 게 이들의 철칙이다. 커피를 생산하는 농부들의 얼굴을 담고, 커피 농가의 자립을 위해 생산자를 교육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국제 지속가능성 평가 제도인 비콥(B Corp) 인증을 받았을 정도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궤도에서 공전하고 있다. 공전하는 행성들이 서로의 중력에 영향을 주며 질서를 이루듯, 커피와 삶의 다양한 궤도들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간다. 공전미래는 그 궤도들이 때로 겹치고, 흔들리고, 다시 나아가는 다성적 우주의 이야기다. 이 책이 커피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이들에게 작은 영감이 되 바란다. -본문 5쪽.​​

 

커피나무에는 체리 모양의 빨간 열매가 맺힌다. 이 열매를 따고, 과육과 점액질을 제거하면 씨앗이 남는다. 이 씨앗을 ‘생두’라 부른다. 생두를 로스팅하면 원두가 되는데, 이 과정에서 얇은 막의 ‘채프’가 떨어져 나온다. 해외에서는 비료로도 활용되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활용되지 못한 채 폐기된다. 커피리브레는 채프를 경기도 파주의 토종닭 농장으로 보냈다. 농장 바닥에 깔린 채프 위로 닭의 발자국과 배설물이 쌓이면, 그 흙은 다시 과수원의 퇴비로 쓰인다. 커피의 껍질이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커피 농장에는 여성 노동자가 많지만, 정작 커피 산업에서 여성이 리더가 되거나 의사 결정권을 갖기는 어렵다. 땅을 소유하거나 대출받는데도 제약이 있다. 에티오피아 여성 커피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안샤 야신은 커피 산업의 여성들을 교육하고 리더로 성장시킨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지속성을 위해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농법도 공부하고 교육한다. 

 

페루와 영국을 오가며 사는 멜리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난 뒤 마시는 첫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에는 사무실에서 두 번째 커피를 마신다. 페루 커피 농장과 회사를 운영하는 멜리의 소망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가족과 나누는 소박한 식사에서 기쁨을 느끼고, 겸손하고 깊이 있는 사람으로 아이들이 자라길 바란다. 이 기쁨을 지속 가능하게 나누기 위해 페루 곳곳에 카페를 만드는 등 지역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책은 커피를 중심에 두지만,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로 수렴한다. 농장의 기후와 도시의 일상, 지역사회의 구조와 한 가정의 희망은 서로 아무런 관계없이 저마다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커피라는 중력을 주고 받으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책장을 하나씩 넘기며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적인 행위가 사실은 거대한 연결 위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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