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공지능(AI) TTS(문자음성 자동변환·Text-to-Speech) 기술이 전자책 시장에서 주요 기능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 최대 전자책 플랫폼 KT 밀리의서재와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가 벌이는 소송전이 업계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법원이 TTS 기능을 복제·전송 행위로 해석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전자책 플랫폼의 TTS 서비스 구조와 접근성 정책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단독] “책 읽어주기도 저작권 침해” KT 밀리의서재, TTS 무단 제공 위법 판결)
#‘TTS도 저작권 적용’ 책 읽어주기 기능의 운명은?
올해 6월 선고된 밀리의서재와 윌라 간 오디오북 배타적발행권 침해금지 소송 항소심 결과는 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서울고등법원은 밀리의서재가 분쟁 대상 도서들에 대해 TTS 기능을 제공한 것을 저작권 침해로 인정했다. 대상 도서 6권은 윌라가 출판사 두 곳으로부터 오디오북에 관한 배타적·독점적 발행권을 양수한 책들이다.
TTS는 책의 텍스트를 자동으로 읽어주는 서비스다. 전자책 뷰어 내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방식으로 이 기능을 실행할 수 있다. 유료화나 별도 서비스 출시를 고려한 기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사용자 경험(UX)·접근성 개선용 부가 기능으로 설계된 탓이다.
시각장애인과 고령층 등은 이미 TTS를 필수적인 독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WCAG)이나 유럽 접근성법 등 국제 표준에서도 TTS는 글을 읽기 어려운 사용자를 위해 제공돼야 하는 기술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웹소설·전자책 플랫폼의 TTS 미제공 사례가 장애인차별금지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재판부는 해당 도서들의 EPUB(전자책 표준 형식) 파일이 밀리의 서재 앱에서 TTS로 음성 변환돼 이용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문제 삼았다. 별도의 오디오북 파일이 저장·유통되지 않더라도 저작권법상 복제·전송에 해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이 복제·전송의 직접 주체를 이용자가 아니라 플랫폼인 밀리의서재로 봤다.
△TTS 실행 시 DRM이 적용된 EPUB에서 텍스트가 추출돼 wav 형식의 음성 데이터가 일시적으로 생성·저장되는 구조 △이용자 역할이 사실상 ‘도서 선택 후 TTS 버튼 클릭’에 그치는 점 △관련 프로그램과 서버·앱 환경을 밀리의서재가 전적으로 관리·지배한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AI TTS 커지자 긴장감 확대, 대법원 판단 ‘주목’
이번 소송은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1심을 뒤집고 나온 2심 판결은 두 회사 간 분쟁을 넘어 국내 전자책·오디오북 시장의 구조를 흔들 수 있는 변곡점이라는 평가다. TTS의 지위가 단순 편의 기능에서 별도 허락과 계약·정산이 필요한 저작권 이용 행위로 급격하게 전환됐기 때문이다. 저작권 보호 측면에서는 전자책·오디오 콘텐츠 전반에 새 기준을 제시했다는 시각이 나오는 한편, 접근성 측면에서는 반발이 크다.
전자책 서비스를 영위하는 플랫폼들은 이번 사안을 두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시장·이용자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이라는 주장이다.
법원 판단이 업계 계약 관행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번 사건에서 쟁점이 된 배타적발행권 계약은 전통적으로 ‘사람이 녹음한 오디오북’을 상정해 적용돼 왔다. 그동안 출판사와 플랫폼 간 맺은 전자책 계약에서도 TTS는 별도 조항 없이 전자책 제공을 위한 부가 기능 정도로 취급돼 왔다.
A 플랫폼 관계자는 “업계 계약서를 들춰보면 TTS에 대한 별도의 저작권 계약이 돼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라며 “작가들의 저작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출판사들조차 ‘이렇게 기발한 소송이 있나’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대법원에서는 다른 판단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관망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만약 다른 출판사와 저작권자들이 본격적으로 소송전에 나선다면 어떤 서점·전자책 플랫폼도 자유롭지 않다는 말까지 나온다. B 플랫폼 관계자도 “향후 업계가 계약 구조를 손봐야 한다면 계약 공백에 따른 파장이 예상된다”며 “거래 비용이 크게 늘어나 접근성 기능을 아예 포기할 유인이 커진다. 권리 보호가 오히려 독서 취약층의 선택지를 줄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AI TTS 확산이 초래한 업계 간 긴장감도 이번 소송에서 간과할 수 없는 배경으로 거론된다. 최근 전자책 시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음성과 억양을 구현하는 AI TTS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반면 전문 성우 낭독을 기반으로 하는 윌라 같은 오디오북 플랫폼 입장에서는 AI TTS의 고도화가 기존 오디오북 시장과 잠재적 경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 위협이 된다.
TTS 기술 관련 업체 관계자는 “서점·전자책 플랫폼들은 이를 이용자 경험을 높이는 핵심 기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기술적으로는 전자책 텍스트 변환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오디오북처럼 별도 제작 과정이 필요하지 않게 돼 전선이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입장에서 문제는 역시 비용이다. 업계에 따르면 서점이 전자책 한 권을 팔 때 수익이 100원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자책 사업은 개발·투자 단계로 아직까지 ‘마이너스’ 사업이라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 TTS 저작권료까지 얹으면 서점사가 이 비용을 감수하기보다 기능 제공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TTS 사용에 따른 저작권 비용 발생 시 TTS 서비스는 별도 과금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장애인과 고령층에게만 무료로 관련 기능을 제공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장애 여부 등을 서점에 증명하게 하는 건 차별·개인정보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현실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전자책 시장에서 ‘유료 TTS’는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유럽은 전자책 접근성 기준을 강화하는 추세고, 예외 사례로 꼽히는 최대 전자책 플랫폼 아마존 킨들의 경우에도 단순 비교는 어렵다. 킨들은 작가 권리 보호를 위해 TTS 기능을 제한적으로 제공하는데 아마존이 오디오북 플랫폼 ‘오더블’을 함께 운영하는 사업자라 이해상충 구조에 차이가 있다.
출판계에서도 아직까지는 계약 조정 움직임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A 플랫폼 관계자는 “TTS가 활성화되며 접근성을 토대로 전자책 수요층이 넓어지려는 시점에 기술을 역행하는 흐름이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산업 구조와 독서 문화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요약, 번역, 보이스 클로닝 등 다른 AI 보조 기능에 대한 잣대로 확장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2심 재판부는 계약서상 배타적발행권을 광범위하게 정했다고 해도 저작권법이 정한 2차적저작물 작성 권한 범위를 넘어 발췌·요약 등까지 일방적으로 확대 해석할 수는 없다고 제한을 뒀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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