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미약품이 창사 이후 처음으로 외부 출신 전문경영인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같은 날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도 모녀 측 핵심 우군인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가 합류하면서 한미약품그룹의 지배구조와 자본 전략에 변화 조짐이 뚜렷해졌다. 전문경영인 강화와 이사회 재편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향후 한미약품그룹의 경영 안정화와 자본 전략 전반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31일 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서 한미사이언스(53기)와 한미약품(16기) 정기주주총회가 열렸다. 이날 이날 주주총회에서는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PE(사모펀드)부문 대표가 새 대표로 선임됐다. 기존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갈등을 빚다 임기 만료로 물러난 뒤 황 대표가 신임 대표로 내정됐었다.
황 대표는 LG화학 바이오텍연구소 선임연구원, 엠디뮨 CFO, 종근당홀딩스 대표이사 등을 지냈고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브레인자산운용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터라 제약·바이오 산업에도 이해가 깊은 인물로 평가된다.
국내 의결권 자문회사인 한국ESG평가원은 황 대표에 대해 “자본시장 출신의 투자 전문가이지만 제약업계를 잘 이해하는 경력을 갖추고 있다”며 “황 후보를 중심으로 전문경영인 체제와 이사회 중심 경영이 정착되고, 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이 종식되기를 기대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한미약품 제제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입사해 팔탄공장 공장장, 제조본부장 등을 거친 박 전 대표와 비교하면 의약품 R&D(연구개발)와 제조 분야 역량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여기에 박 전 대표와 신동국 회장 간 갈등 원인 중 하나로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에 저가 원료의약품 사용을 둘러싼 대립이 있었던 만큼, 황 대표가 이를 어떻게 조율할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신동국 회장은 원가 절감을 위해 저가 원료 도입을 검토하려 했지만, 오랜 기간 제조 공정을 총괄해온 박 전 대표는 품질 저하를 우려해 강하게 반대하며 충돌했다. R&D(연구개발)보다는 투자 이력이 강한 황 대표가 대주주의 원가 절감 방침과 품질 경쟁력 사이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황 대표는 주총과 이사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제약은 규제 산업이기 때문에 DMF(원료의약품 등록제도)를 충족해야 생산할 수 있다는 게 대원칙”이라며 “이를 충족하는 상황에서 경제성의 유불리를 따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주주와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법과 상식에 기초해 어느 주주에도 편향되지 않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해 기대에는 부응하고 우려는 불식하겠다”고 답했다. 황 대표는 기자간담회장으로 향하는 길에 걸린 고 임성기 회장의 동판 조형물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해 임 회장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한편 이날을 끝으로 33년간의 ‘한미맨’ 생활을 마무리한 박재현 전 대표는 이후 거취를 묻는 질문에 “정해진 것은 없다”며 “밖에서 한미를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말해 회사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응원을 드러냈다.
한미약품 주총에 앞서 열린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총에서는 2022년 11월부터 모녀 측(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과 긴밀히 공조해온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가 기타비상무이사로 새롭게 진입했다. 라데팡스는 2022년 11월 한미사이언스와 용역 자문 계약을 맺은 데 이어, 2023년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지분 매각 자문 등을 전담하며 모녀 측의 핵심 우군으로 자리매김했다.
김 대표가 기타비상무이사로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김성훈 기획전략본부 전무이사가 사내이사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김 전 전무 역시 모녀 측 인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이사회 진입으로 모녀 측이 지주사 이사회에서 수적 우위를 추가로 확보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인사권 등 사내 정치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내부 임원 대신 직접적 우군인 김 대표가 이사회에 합류했다는 점에서 모녀 측의 존재감은 한층 커졌다는 것이 시장의 시선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한미사이언스 4자 연합으로 동맹을 맺었음에도 모녀 측이 신동국 회장을 상대로 600억 원대 위약벌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내부 균열 조짐이 나타났다고 본다. 여기에 지배구조 개편 전문가인 김 대표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 입성하면서 향후 상속세 문제 해결과 엑시트(투자금 회수) 방식을 두고 신동국 회장 측과 다시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동국 회장은 정기주총과 이사회가 끝난 뒤 회사를 나서며 황 대표 선임에 따른 기대를 묻는 질문에 “앞으로 밝힐 일이 있을 것”이라고만 짧게 답했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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