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컨설팅업체가 전략 수립 등 본연의 자문 역할을 넘어 제약사 최대주주로 올라 경영 전면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영권 분쟁 및 승계 과정과 맞물리며 입지가 강화됐지만, 규모가 작은 컨설팅업체의 제약사 경영 능력에 의문부호가 붙으면서 경영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열린 동성제약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최대주주인 브랜드리팩터링 측 인사 4명(함영휘·유영일·이상철 사내이사, 원태연 사외이사)이 동성제약 이사회에 합류했다.
브랜드리팩터링은 나원균 대표와 원용인 경영전략 전무, 남궁광 사외이사 등 기존 경영진 3명을 제치고 다수를 차지하며 경영권까지 확보했다. 브랜드리팩터링은 2022년 8월 설립된 브랜드 컨설팅업체로, 지난 4월 이양구 전 동성제약 회장으로부터 지분 10.8%를 120억 원에 사들이며 단숨에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 전 회장의 편에 서서 나 대표와 경영권 분쟁 한가운데로 뛰어든 것이다.

한국유니온제약은 지난 6월 최대주주가 경영자문 컨설팅업체 멜빈에프앤비로 변경됐다. 백병하 전 회장과 부인 안희숙 씨가 담보로 제공한 주식 157만 6556주에 설정된 질권을 멜빈에프앤비가 행사한 결과다. 한미사이언스의 주요 주주로 올라선 킬링턴 유한회사 역시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을 자문한 라데팡스파트너스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킬링턴 유한회사는 지난 7월 기준 한미사이언스 지분 9.81%를 보유하며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6.43%)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제약사들은 변화하는 국내외 제약 시장에 맞춰 전략 재설정, 조직 개편 등을 위해 컨설팅업체와 손잡는 경우가 많다. 해외 진출을 위한 GMP(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획득, 인허가, 수출입, 기술 수출 및 도입 전략 수립 등도 포함된다. JW홀딩스는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와 사업 경쟁력 강화 및 구조 개편 방안을 위한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비상장 바이오기업들도 M&A(기업 인수합병)나 상장을 준비하면서 증권사, 회계법인, 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컨설팅업체들이 단순 자문을 넘어 지분 취득과 직접 경영 참여로까지 역할을 확대하는 추세다. 브랜드리팩터링은 오는 25일 예정된 동성제약 이사회에서 나원균 대표의 대표직 해임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이사 해임은 가능하지만, 대표 해임은 이사회 다수 결의만으로도 가능하다.
한국유니온제약은 지난해 10월부터 백병하 전 회장과 양태현 전 대표 간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고,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까지 발생하며 코스닥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멜빈에프앤비는 이 과정에서 올 2월 백 전 회장과 부인에게 5억 원을 빌려주고, 이를 담보로 주식을 확보했다. 라데팡스파트너스 역시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만 업계에서는 외형이 작고 제약 경험이 부족한 컨설팅업체가 제약사 최대주주로 오르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동성제약은 지난해 매출 884억 원, 자산 1479억 원을 기록했지만 브랜드리팩터링은 지난해 매출 84억 원, 영업손실 5억 3300만 원을 기록했다. 총자산은 39억 원, 자본총계는 7000만 원에 불과하다. 멜빈에프앤비 역시 지난해 말 기준 자산 3600만 원, 자본총계 2400만 원으로 영세한 규모다.
이에 따라 이들 업체 뒤에 다른 자금원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제약사의 경영 지속성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더 나아가 경영권 분쟁이나 승계 등 혼란 상황에 놓인 제약사를 겨냥해 컨설팅업체가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상속세나 경영권 분쟁에 경험이 없는 오너 일가에 리스크 관리 전문성을 내세워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며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당장의 위기 해결이 우선이라 이들에 의존하고, 그 과정에서 거액의 자문료를 지급하거나 지분을 넘겨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핫클릭]
·
[단독] "전자정부 넘어 AI 정부로" 행안부 AI 행정 정책연구용역 발주
·
전쟁범죄 연루 이스라엘 방산기업, 서울 ADEX 2025 초청 논란
·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미국 관세는 상수, 현지 공장은 필수"
·
[단독] '곰표'로 흥했던 세븐브로이, 자회사 '세븐브로이양평' 파산
·
영풍-고려아연 다툼에 '집중투표제' 변수, 양측 소액주주 잡기 안간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