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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 섹스리스 시대에 읽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섹스의 역사'

20억 년에 걸친 섹스의 대연대기 "인류는 쾌락을 진화시켜서 살아남았다"

2026.06.11(Thu) 16:14:05

[비즈한국] 오늘날 선진국의 성인 중 40%는 결혼을 하지도, 연애 파트너와 동거하지도 않는다. 밀레니얼세대의 20~25%는 평생 결혼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그 비율은 Z세대에게서 더 높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대한민국 기혼자의 36~40%는 성관계를 하지 않는 이른바 ‘섹스리스(Sexless)’ 부부다.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 디지털 대체재의 홍수 속에서 인류는 점차 침실을 비워가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지금의 인류를 존재하게 한 가장 강력한 원동력은 다름 아닌 섹스였다. 인류는 성(性)적 결합을 통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역동적으로 진화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고요한 ‘성적 침체기’를 맞이한 지금,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성의 연대기를 추적한 데이비드 베이커의 신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섹스의 역사’는 우리가 왜 사랑하고 욕망하도록 설계되었는지를 따라간다.

 

보노보는 많은 성적 행동을 인간과 공유한다. 사진=pixabay

 

#쾌락과 생존, 20억 년의 진화 연대기

 

이 책은 단순한 성 가십이나 문화사를 넘어, 우주의 탄생과 세포 분열 시절부터 이어진 20억 년의 거대한 ‘빅히스토리’를 다룬다. 저자는 생물들이 단순히 생존에 유리한 방향이 아니라 ‘쾌락을 느끼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는 놀라운 주장을 펼친다.

 

태초의 무성생식에서 성별이 분화되면서 생명체는 유전적 다양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얻었고, 진화의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영장류를 거쳐 인간에 이르기까지 섹스는 단순한 번식 행위를 넘어 동맹을 맺고, 갈등을 해소하며,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핵심 기제로 자리 잡았다. 인류의 신체와 정신은 성적 욕망과 쾌락을 중심축으로 두고 정교하게 빚어진 결과물인 셈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섹스의 역사
데이비드 베이커 지음, 김숲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침실을 떠난 인류의 미래는?

 

진화가 무색하게 섹스리스에 다다른 인류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저자는 현대의 섹스리스 경향이 인류 진화의 흐름에서 독특한 변곡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피임 기술의 발달로 번식과 쾌락이 완벽히 분리된 데 이어, 이제는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등 기술이 본능을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류는 오랜 시간 축적해온 진화의 프로그래밍을 거스르고 새로운 형태의 공존과 생식 방식을 탐색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현대의 섹스리스 현상이 인류의 퇴보가 아닌, 기술 문명과 인간 본능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또 다른 진화의 서막일지도 모른다는 묵직한 전망을 남긴다. ​

 

저자 데이비드 베이커는 세계 최초로 빅히스토리 박사 학위를 받은 작가다. ‘빅히스토리(Big History)’는 빅뱅부터 지구의 형성, 생명의 출현, 인류의 역사까지를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설명하는 학문으로, 베이커의 전작 ‘가장 짧은 우주의 역사’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김남희 기자

namhee@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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