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미술의 기름진 토양을 일구기 위한 작가 지원 프로그램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시즌12를 시작한다. 본 기획은 이제 미술계로부터 작가를 발굴 육성하는 의미 있는 행사로 인정받았다. 작가들 사이에서는 참여하고 싶은 프로젝트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미술 응원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추구해온 기본 키워드는 ‘한국미술의 다양한 흐름의 수용과 발전적 변화의 모색’이었다. 이러한 원칙의 결실로 한국현대미술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점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이는 세상을 탐구해온 서양미술에서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일루저니즘(illusionism)이다. 환영주의로 번역되는 이 흐름은 특히 서양 회화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었다.
일루저니즘은 현실의 대상이나 공간을 일정한 화면 안에 그럴듯하게 재현해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연주의적 재현을 위해 사물의 모습이나 공간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일루저니즘은 일종의 착시에 의한 눈속임으로 우리에게 환영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착시’는 잘못 보거나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다르게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유쾌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거나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눈속임은 원근법이다. 평면을 입체로 보게끔 만드는 착시 현상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이런 착시 효과를 자신의 미학으로 발전시켜 서양미술사에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 화가가 주세페 아르침볼도(1527-1593)다. 후기 르네상스에 활동한 그의 작품은 오늘날 작가에게도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만큼 시간을 뛰어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아르침볼도의 작품은 과일이나 채소 혹은 옷이나 책 등을 결합해 인물을 만들어낸다. 가까이서 보면 각각의 사물이 그냥 엉겨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 보면 인상이 고약한 인물이나 우스꽝스런 모습의 얼굴이 나타난다. 착시 효과의 결정판을 보여주는 회화다.
아르침볼도의 기발한 이미지 창출 방식은 20세기 초현실주의 회화의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광고에 영향을 미칠 만큼 아직까지도 막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그의 작품이 단순한 눈속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화면에 소품으로 등장되는 사물은 고유의 성격을 그대로 갖고 있지만, 이들이 결합하면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바뀐다는 것이다.
김경원은 이런 흐름을 새롭게 해석해 독창적인 회화를 보여준다. 그는 동물(닭, 소, 호랑이 등)을 반복적으로 연결해 새로운 이미지로 바꾸어버린다. 그래서 겹쳐진 동물이 산이나 파도와 같은 형상으로 보이는가 하면, 동물의 특정 부위(닭의 벼슬 등)나 문양(소의 얼룩이나 호랑이의 무늬 등)으로 또 다른 형상을 만들어낸다.
착시 효과를 활용해 새로운 이미지로 전환하는 발상은 작가 노트에서 잘 나타나있다. “겹쳐진 닭벼슬의 붉은색들은 마치 흐르는 듯한 산능선을 따라 뿌리내린 가을 단풍과 닮았고, 갈색 꼬리는 흡사 단단한 화강암인 듯 보이며, 몸체의 흰털은 낮게 내려앉은 안개구름과 같이 느껴진다.”
닭에서 가을산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김경원의 상상력이 착시 효과의 영역을 넓혀 새로운 회화를 창출하고 있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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