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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자율주행시대의 '당근과 채찍'

대한항공 갑질, 삼성 무노조경영…단순조립시대 방식으로 혁신 낳을 수 있을까

2018.06.14(Thu) 15:14:42

[비즈한국] 필자는 지금 연구 목적으로 초원에 살고 있다. 초원에 살다 보면 누구나 말 욕심이 생긴다. 평원을 잘 달리고, 장애물을 만나면 민첩하게 피하고, 언덕을 잘 오르고, 짐은 많이 실을 수 있는 말. 그러려면 크고 날씬하고 성격까지 좋아야 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거의 법칙처럼 빠른 말은 짐을 많이 싣지 못한다. 민첩한 말은 대개 작아서 높은 언덕에 약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을 길들이는 데 공을 들인다. 나도 커다란 말 한 필을 사서 길들이는 중인데 덩치가 크다 보니 주인 말을 무시할 때가 종종 있다. 

 

흔히 신상필벌(信賞必罰)이 길들이기의 원칙이라고 한다. 말에게는 당근과 채찍이다. 목표를 수행하면 당근을 주고 길을 벗어나면 채찍을 휘두른다. 그러나 당근과 채찍을 ‘원칙대로’ 쓰는 말 주인은 대단히 드물다. 종마끼리 싸움이 붙으면 둘 중 하나는 꼭 상한다. 싸움의 원인은 대개 암컷이다. 암컷 냄새를 맡고 마구 달리는 큰 말은 통제하기 어렵다. 막상 떨어지면 몸도 아플 뿐 아니라 말이 통제를 벗어난 것 때문에 화가 치민다. 그래서 분한 마음에 채찍을 휘두른다. 채찍을 휘두르고 나면 눈을 꿈뻑꿈뻑 하는 것이 가여워 집으로 돌아오면 당근을 먹인다. 이것은 필자 본인의 경험이다. 

 

지난 4일 오전 ‘갑질’ 폭행 등 7개 혐의를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그러나 원래 채찍은 암컷으로 달려들려고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즉 말에서 떨어지기 전에 예방 차원에서 휘둘렀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잘한 것도 없는데 당근은 왜 주는가? 사고를 방지하지도 못하고 말은 당근을 받아먹는 이유도 모를 테니 결과적으로 벌과 상이 모두 시기에 안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며칠 후 대낮에 마신 마유주에 살짝 취해 말 위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잠깐이었지만 눈을 떠 보니 말이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통제를 벗어나곤 하지만 말도 자신의 역할을 대략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조는 동안 말은 ‘자율주행’을 실행했다. 당근과 채찍의 효과는 좀 더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오해는 말이 무지한 짐승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말은 대단히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그래서 말에서 떨어지기 전보다 떨어진 후에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나을 수도 있다. 때릴 때는 씩씩거리며 “나는 너를 때리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떨어뜨릴 수 있니?” 되묻는다. 그러면 실제로 말은 미안해한다. 때린 것이 미안해서, 혹은 이유 없이 당근을 주면 말은 친근감을 이해한다. 주인이 오기만 하면 혹시 당근이 있나 해서 먼저 손을 살핀다. 없으면 실망감을 표시하며 애교를 부린다. 말은 생각한다. ‘이유 없이 주는 저 사람이 내 주인이구나.’ 그리고 놀랍게도 말은 주인의 실망과 기쁨을 모두 감지한다. 

 

채찍을 마구 휘두르면 고삐가 끊어지거나 낙마하는 순간 말이 달아난다. 목표를 달성할 때만 당근을 주면 말은 ‘자율주행’을 잊어버린다. ‘논어’에 “나는 하루에 세 번 반성한다(吾日三省吾身)”는 유명한 증자의 말이 나오는데, 그 처음이 “남을 위해 일을 할 때 정성을 다하지 않았는가(爲人謀而不忠乎)?”이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 정성을 다하는 행동, 즉 능동적인 노력이다. 증자는 지금 당근과 채찍 때문에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위해 그렇게 한다.

 

지난 4월 26일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앞에서 민주노총이 ‘삼성 노조파괴 규탄 민주노총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박정훈 기자


단순조립의 시대에 통하던 당근과 채찍은 점점 힘을 잃을 것이다. 대한항공 창업주 후손들이 벌인 갑질로 연일 지면이 뜨거웠다. 직원들에게 어떤 당근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채찍질은 얼핏 봐도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이제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채찍을 뺏는 것은 물론이고 ‘주인’을 쫓아내려 하고 있지 않나? 그동안 삼성이 무노조 경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물론 채찍을 휘두르는 동시에 커다란 당근도 제시했기에 목표를 달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율주행’의 시대에 맞는 혁신이 당근과 채찍만으로 나올까?

 

인류학에서는 남을 위해 자발적으로 도모하는 이를 빅맨(Big Man)이라 부른다. 한자로 옮기면 바로 ‘대인(大人)’이다. 그들은 오직 사회적인 인정과 존경을 바란다. 누군가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 직원들을 두고 “오 삼성맨? 그 채찍질에 끌려다니는 인간들”이라고 하면 슬프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부러움과 경멸,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공교롭게도 증자가 말한 두 번째 반성은 “벗과 사귀면서 믿음을 다하지 않았는가(與朋友交而不信乎)?”이다. 노동자끼리 뭉치는 것이 꼭 경영의 장애물일까? 초원에서 수말을 한 해 심하게 부리면 이듬해 고삐를 풀고 자유로운 무리에 넣어준다. 말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하고 이듬해 봄 다시 안장을 받아들인다. “오 삼성맨? 자율과 혁신의 아이콘, 빅맨들이지.” 언젠가 이런 말을 듣고 싶다. ​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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