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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음악일기] 자연스러운 배경음악,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

원곡에 충실한 재해석…혁신 없다 폄하되지만, 대중이 원하는 것에 집중

2018.09.24(Mon) 14:37:08

[비즈한국] 재즈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요즘에는 재즈 하면 집중해서 듣는 음악이라기보다는 ‘배경음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엘리베이터 음악…. 이런 음악이 재즈 하면 생각나는 느낌입니다.

 

한때 재즈는 가장 진보적인 음악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토속음악과 유럽의 클래식 음악이 뒤엉켜 나온 음악이었죠. 완전히 재해석한 화려한 리듬, 형태를 파괴한 즉흥연주 등 당대의 기준으로는 가장 파격적인 음악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재즈의 파격은 당연한 음악이 됐습니다. 전통음악에 가까운 안정적인 음악으로 변해갔죠. 오늘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배경음악, 전통음악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재즈 음악을 대표하는 그룹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가요 앨범 ‘서촌’.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음악은 딱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배경음악’ 재즈에 가깝습니다. 누구나 알 듯한 익숙한 멜로디의 음악을 가져옵니다. 이를 적당히 안정적인 재즈 리듬과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예상 가능한 즉흥연주를 통해 부담스럽지 않게 재해석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이름과 달리 일본에서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전설적인 재즈 프로듀서 기마타 마코토는 1980년대에 아트 블레이키, 케니 드루, 쳇 베이커, 프레디 허버드, 베니 골슨 등과 함께 앨범을 작업하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면서 신인 뮤지션의 정보를 모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신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아이돌을 찾듯 팀 콘셉트를 만들고 이에 맞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찾은 프로젝트 이름이 바로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였습니다. 세련되고, 쉬운 음악을 하고, 잘생긴 유럽 재즈 뮤지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름과 기획을 완성한 후 1년, 네덜란드에서 재능 있는 트리오를 찾았습니다. 피아니스트 카럴 불레이, 베이시스트 프란스 후번, 드러머 로이 다퀴스로 이루어진 팀이었지요. 외모와 재능, 팀워크가 마음에 들었던 기마타 마코토는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를 프로듀싱 합니다.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 1집 제목은 ‘노르웨이의 숲’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청춘 연애 소설이었죠. 1989년에 발표한 이 앨범은 거대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 ‘노르웨이의 숲’.

 

이후 4년간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는 평탄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세련되고 편안한 음악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린 반면 음악 시장의 중심인 미국과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유럽에서는 별 성과가 없었지요. 

 

피아니스트 카럴 불레이는 1993년 팀을 탈퇴했습니다. 과거 지향적인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음악보다는 시대를 이끄는 퓨전 사운드를 하고 싶다는 이유였습니다. “재즈보다는 이지 리스닝 음악이 아닐까” 하는 평론가들의 반응에 지쳤던 기마타 마코토 또한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를 우선 중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년이 지났습니다. 프란스 후번과 로이 다퀴스가 기마타 마코토에게 연락했습니다. 새로운 피아니스트를 찾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새 피아니스트 마르크 판 론은 기마타 마코토의 표현에 의하면 서정적이고 냉정하게 정돈된 음악이었습니다. 기교파이던 카럴 불레이보다 깔끔하게 정리된 음악을 할 수 있겠다는 감이 생겼습니다.

 

새 멤버를 만난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는 비틀스 음악을 재해석한 ‘메모리스 오브 리버풀’, 클래식 음악을 재즈로 편곡한 ‘이모털 빌러브드’ 등의 앨범으로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모두가 아는 클래식 명곡을 클래식보다 무겁지 않고, 편안한 재즈 편곡으로 재해석해 들려준다는 기마타 마코토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이후 20년 넘게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는 롱런 중입니다. 서구 시장에서 반응은 없지만 아시아에서는 팬을 늘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지금은 한국과 중국에도 팬덤을 구축 중입니다.

 

2018년, 한국에 팬덤이 꾸준히 생긴 유로피안 재즈 트리오가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한국 가요를 재즈로 편곡한 프로젝트 ‘서촌’이었습니다. 이 앨범에는 ‘그대안의 블루’ ‘서른즈음에’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등 익숙한 음악이 들어 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는 한국에서 활발하게 공연 활동을 펼치는 한편 가요 앨범을 하나 더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 ‘미련’.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음악은 우리가 재즈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혁신의 뜨거운 에너지는 없습니다. 이미 익숙해서 지루하게 느껴지는 명곡이나 지나치게 무거운 클래식 등을 가지고 약간의 자유를 더함으로써 숨 쉴 구멍을 만들어줍니다. 덕분에 원곡보다 자연스럽게 흘려가며 들을 수 있는 배경음악이 됩니다.

 

혹자는 이런 음악을 폄하할지 모릅니다. 전성기의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등 재즈 뮤지션이 시대를 바꿔가며 만든 실험적 에너지는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들의 음악이 지나치게 원곡에 가까운 상업적인 ‘이지 리스닝’ 기획이라 부르는 거겠지요.

 

하지만 일상에는 걸작만 필요하지 않습니다. 음악이 잠시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주고 다른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에너지를 주는 배경 음악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음악이 더 많이 필요할 수도 있지요. 바뀐 시대를 바꾸기 위해 변화하는 재즈 음악을 보여주는 재즈 트리오,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였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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