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이돌 굿즈를 구매한 뒤 상품의 손상이나 누락을 이유로 판매사에 문의한 고객들이 ‘개봉 영상’을 요청받았다는 사례가 잇따른다. 과거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이돌 굿즈 및 음반 등을 판매하면서 상품 개봉 영상을 요구하는 것은 소비자의 청약철회를 제한한다며 4대 연예기획사 굿즈 판매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팬덤 굿즈 시장에서는 여전히 이 같은 요구가 반복되고 있었다.
#개봉 영상 첨부…까다로운 환불 조건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 앨범을 구매한 A씨는 상품을 개봉하자마자 포토카드가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씨가 판매사에 앨범 환불을 요청하자 판매사는 “개봉 영상이 있어야 확인할 수 있다”고 답했다. A씨는 ‘개봉 영상’을 촬영하지 못했고, 결국 환불받을 수 없었다. 이에 한 누리꾼은 “우리가 브이로그 유튜버도 아닌데 매번 개봉 영상을 찍어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단순히 영상의 유무뿐 아니라 촬영 방식이나 화질을 문제 삼아 환불을 거부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B씨는 굿즈의 파손을 발견하고 개봉 영상을 제출했음에도 교환을 거부당했다. 판매사 측은 “영상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송장 번호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소비자가 영상을 찍었음에도 판매자가 설정한 지침이 사실상 환불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행은 팬덤 문화와도 맞물려 있다. 아이돌 굿즈 시장에서는 팬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최애’의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같은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는 이른바 ‘앨범깡’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이 과정에서 구성품을 확인하기 위해 개봉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는 ‘언박싱 영상’도 흔히 촬영된다.
그러나 일부 굿즈 판매사들이 이러한 문화를 교환·환불 절차에 반영하면서, 개봉 영상은 설레는 마음으로 남기는 기록이 아니라 교환·환불을 위한 증거로 기능하게 됐다. 개봉 영상을 촬영하지 않은 소비자들은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굿즈를 판매하는 한 온라인몰 게시판에는 개봉 영상 촬영 공지가 게시돼 있다. 판매사 측은 “교환·반품 시 이를 악용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라며 “영상 자료가 없을 시 교환·반품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개봉 영상을 남기지 않아 누락된 상품을 환불받지 못했던 C씨는 이후 굿즈를 개봉할 때마다 영상을 촬영해두고 있다. 그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항상 개봉 영상을 찍어두는 편”이라며 “팬들 사이에서도 개봉 영상을 남겨두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소비자는 상품에 하자가 있거나 주문 내용과 다르게 이행된 경우 제품을 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 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약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사업자가 기만적 방법으로 소비자의 청약철회 등 계약 해지를 방해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악용 방지” vs “청약철회 방해”…공정위 판단은?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4대 소속사(하이브·YG·SM·JYP) 굿즈 판매업체에 이 같은 약관을 두고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공정위는 당시 “상품 개봉 과정을 촬영한 영상이 없으면 환불을 거부하는 해당 약관은 소비자의 청약철회를 방해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소비자정책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업자 또한 실제 결함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물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곧바로 법 위반으로 판단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개봉 영상을 요구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입증 책임을 과도하게 전가하는 행위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입증 방식이나 책임 소재를 법상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미 개봉이 끝나 영상 촬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이를 요구하는 등 청약철회를 부당하게 방해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개봉 영상 요구가 과도한 수준이거나 소비자의 청약철회를 사실상 어렵게 만드는 경우라면 법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 이후에도 유사한 환불 방식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팬덤 굿즈 시장은 지난해 3분기 누적 2648억 원으로 전년 대비 62% 성장했다. 소비의 주축 역시 13세에서 24세의 젊은 팬들이다. 충성도 높은 팬덤을 기반으로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만큼 청소년 소비자를 보호할 기준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당시의 공정위 판단에 대해 하이브 측에 의견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김재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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