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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보릿고개 넘은 '육남매'와 '은실이', 우리도 불황 못넘으랴

1960년대 배경 애잔한 인생사 공통점…시청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진한 위로 건네

2018.10.25(Thu) 15:00:10

[비즈한국]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TV 리모컨을 잡는다. ‘HQ플러스’에서 ‘육남매’를 보다가 끝날 때쯤 ‘엣지TV’로 채널을 돌려 ‘은실이’를 보는 게 최근의 스케줄이다.

 

아침에 일이 있으면 저녁에 꼭 재방을 챙겨본다. 육남매와 은실이를 본다는 이유만으로 주위에서 노인네 취급받지만, 그래도 어쩌랴, 무지무지하게 재미있는걸! 육남매에 출연하는 아역 배우들의 귀여움은(특히 말순이!) 아파트를 뽑고 지구를 뿌술 정도이고, 은실이의 큰 눈에 눈물이 차오를 때면 내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신기한 건 육남매와 은실이가 공통점이 많다는 것. 두 작품 모두 1998년 방영을 시작해 70부작(은실이), 100부작(육남매)으로 종영하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고, 1960년대 초반 어려웠던 시절이 배경이라 보이는 풍경도 흡사하다.

 

야간통행금지, 쥐잡기 운동, 중학교 입학시험, 파독 광부와 간호사, 신성일과 엄앵란 등으로 대표되는 영화스타들…. 두 작품 곳곳에 보이는 1960년대의 풍경을 보면서 사람들은 IMF 외환위기로 팍팍했던 1998년의 현실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그래, 저 때는 정말 힘들었지. 쌀밥에 고깃국이면 행복하던 때도 있었지’ 하고 말이다.

 

남편이 죽고 어머니와 여섯 남매가 씩씩하게 살아가는 내용의 육남매. 의젓하고 성실한 장남장녀부터 사고뭉치 차남, 귀여움을 담당한 삼남과 차녀, 말 못하는 갓난쟁이 막내까지, 모두가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사진=드라마 캡처

 

육남매는 남편을 잃은 어머니 용순(장미희)이 아들 셋, 딸 셋을 데리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이야기다. “똑 사세요~ 똑 사세요~”를 외치며 떡을 팔며 아이들을 건사하는 어머니와 의젓하고 성실한 장남 창희(오태경),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다니는 희생적인 맏딸 숙희(이미미), 자주 말썽을 일으키지만 생활력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차남 준희(노형욱),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오는 넉넉한 인상의 삼남 두희(이찬호), 두희와 함께 귀여움을 양분하던 차녀 말순(송은혜)과 유복녀인 막내딸 남희(김웅희)까지, 영등포구 문래동 서민동네에서 살아가는 육남매 가족과 그를 둘러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구수하게 펼쳐진다.

 

사실 들여다보면 육남매에는 구구절절 애달프기 짝이 없는 사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생활고로 막내딸을 부잣집 양녀로 보내지만 그리움을 견디지 못한 형제들이 다시 아기를 훔쳐오는 일화라든가, 물에 빠졌다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리는 두희, 폐병 걸린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출했지만 끝내 기차 안에서 남자가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 숙희 등 이 집안에만 액운이 자꾸 몰아치는가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일들이 줄줄이다. 

 

특히 말순이는 홀로 외할머니 집에 맡겨지거나 중이염에 걸려 귀가 먹을 뻔하고, 장티푸스에 걸려 외딴 동굴에 격리돼 생사를 오가는 등 어린 나이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며 시청자들의 안쓰러움을 한몸에 받았더랬다. 그럼에도 힘겨운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은 오늘보다 잘 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육남매는 꿋꿋했다. 그를 보는 육남매의 애청자들도 육남매와 함께 울고, 작고 소박한 행복에 웃음을 지었고.

 

육남매에서 어머니를 연기한 장미희. 떡장사를 하면서 외친 ‘똑 사세요’​가 장미희 특유의 목소리가 덧입혀지며 지금도 성대모사로 자주 쓰일 만큼 유행어가 됐다. 사진=드라마 캡처


그렇다면 은실이는? ‘화산’이라는 가상의 시골 소도시에서 자라는 소녀 은실(전혜진)의 성장담과 그를 둘러싼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화산 제일의 부자인 장낙도(이경영)를 아버지로 둔 은실은 태생 자체가 애달프다. 장낙도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길례(김원희)가 장낙도에게 농락당하고 낳은 아이가 은실이기 때문.

 

서울에서 나이 많은 남자 첩살이를 하던 길례가 남편이 죽고 나서 은실과 아버지 다른 동생 은철이를 데리고 화산에 내려오면서부터 이 모녀의 삶이 얼마나 스산할지 짐작이 된다. 어떻게든 은실이 모녀를 화산 땅에서 쫓아내고 싶은 낙도와 아내 청옥(원미경)의 바람과 달리 길례는 극장 간판을 그리는 화가와 사랑에 빠져 은실이를 낙도의 집에 똑 떨구고 서울로 떠나버린다.

 

은실이와 엄마 길례, 동생 은철이. 사랑 찾아 서울로 떠난 길례 때문에 은실이는 친부 낙도의 집에서 자라고, 은철은 엄마의 연인이 싫어 겉돌게 된다. 사진=드라마 캡처

 

친부의 집이라지만 새어머니와 이복 오빠, 이복 언니와 함께 사는 일이 얼마나 좌불안석일까. 울며 겨자 먹기로 은실이를 받아들인 청옥의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식모 방에 머물며 이복 언니, 청옥의 어머니인 명화(반효정), 심지어 식모의 구박까지 받으며 눈칫밥을 먹는 은실이의 하루하루가 너무 애처롭다.

 

특히 이복 언니 영채를 연기한 강혜정은 이 작품으로 데뷔를 했는데, 어찌나 당돌하고 옹골차게 은실이를 괴롭히는지 연기 경력깨나 되는 줄 알았을 정도.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은 보통 사람들의 다층적인 면모와 심리를 세밀하게 잘 짚어낸 대본과 그를 맞춤옷 입은 양 찰지게 구현한 배우들의 연기에 있다.

 

은실이 타이틀 롤을 맡은 전혜진. 이천희와 결혼해 이제는 아이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은실이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착하고 똑똑하지만 불쌍한 처지의 은실이를 잘 연기했다. 사진=드라마 캡처

 

특히 애정하는 캐릭터는 만악의 근원이면서도 적반하장으로 일관하는 뻔뻔남 장낙도. 더 큰 성공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정도로 독하고 매몰찬 낙도는 인간이 단선적이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 

 

평소 구박하던 날건달 동생 낙천(권해효)이 사고로 다치자 오열하며 괴로워하다 다 나으니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퉁박’을 주는 모습, 불륜을 저지른 주제에 아내 청옥에게 돈으로 위세 등등하게 굴면서도 일수놀이로 자신의 체면을 깎는 장모에게는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 등이 절로 인간은 역시 재미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은실이로 오랜 무명을 딛고 스타로 거듭난 성동일(왼쪽). 찰진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빨간 속옷과 빨간 양말을 즐겨 입은 ‘양정팔’​은 은실이에서 웃음을 담당한 캐릭터였다. 모든 일의 근원인 장낙도를 연기한 이경영 역시 능글맞음과 철면피를 오가는 연기가 일품이다. 사진=드라마 캡처

 

자고 일어나면 회사가 부도나 길거리에 실직자가 넘치던 IMF 시대를 달랬던 1960년대 시대극 두 편이 나란히 재방영하는 걸 보니, 새삼 요즘이 경제 위기란 실감이 난다. 그때의 육남매는 어떻게 자라 어떤 삶을 살았을까, 착하고 똑똑한 은실이는 지금쯤 매력적인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하는 상상을 하며 오늘도 TV를 켠다. 고단한 하루를 위로받고 싶다면 옛날얘기 듣는 심정으로 육남매와 은실이를 보시라. 몇 시간이 순삭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필자 정수진은? 영화를 좋아해 영화잡지 ‘무비위크’에서 일했고, 여행이 즐거워 여행잡지 ‘KTX매거진’을 다녔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지금은 프리랜서를 핑계로 종일 드라마를 보느라 어깨에 담이 오는 백수 라이프를 즐기는 중.​

정수진 드라마 애호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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