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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1994년, 뜨거웠던 그날 그 '느낌'

가족 중심 연속극 벗어나 청춘에 주목한 트렌디 드라마

2018.11.15(Thu) 16:42:29

[비즈한국] 기록적인 폭염으로 뜨거웠던 1994년. 경제는 호황이었고, 문화적으로는 ‘쌍팔년도’로 표현되는 구시대를 벗어나 개인의 개성과 일탈을 받아들이던 때였다. ‘X세대’라 불리는 신세대의 출현 또한 이 당시의 일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1994년을 주목한 것은 당연했다. 

 

방송계 역시 뜨겁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마지막 승부’를 시작으로 ‘서울의 달’ ‘사랑의 인사’ ‘사랑을 그대 품안에’ ‘느낌’ ‘M’ ‘짝’ 등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기 드라마가 대폭 생산됐다. 눈여겨볼 점은 이전 시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연속극을 벗어나 청춘에 주목하는 트렌디 드라마가 주류를 이룬다는 것. 그 중 드라마 ‘느낌’은 1994년의 트렌드와 청춘의 싱그러움을 한껏 담아내어 10~20대의 시선을 강탈한 작품이다.

 

잘생기고 각자 매력적인 오빠들이 셋이나! 그리고 모두 한 여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공식은 훗날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까지 이어진다. 사진=드라마 캡처

 

사이좋고 개성 강한 삼형제가 있다. 부드럽고 자상한 ‘미대 오빠’ 한빈(손지창), 냉철하고 지적인 ‘수재 오빠’ 한현(김민종), 귀여우면서도 다혈질이라 가끔 사고도 치는 ‘체대 오빠’ 한준(이정재)이 그 주인공이다. 이 삼형제 앞에 여름방학 동안 서머스쿨을 다니러 프랑스에서 온 엄마 친구 딸 유리(우희진)가 나타난다. 소피 마르소 못지않게 청순하고 예쁜 유리의 등장은 20대 초중반의 혈기왕성한 삼형제의 가슴에 불을 지를 수밖에 없다.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작품에서 본 이야기. 

 

문제는 형제 중 한 명이 사실 유리의 친오빠라는 데 있다. 내가 사랑하는(관심이 있는) 여자가 사실은 친여동생이라니! “실은 우리 남매야” 또는 “남매인 줄 알았는데 사실 아니었어” 류의 출생의 비밀은 ‘느낌’ 이후로 수많은 트렌디 드라마에 등장하는 클리셰다. 이제는 너무 지겨워 막장 드라마 외에는 잘 안 쓰는 설정이긴 하지만 당시 ‘느낌’을 보는 소녀들은 두 손 부여잡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설마 현이가 오빠일까? 준이면 어떡하지? 차라리 빈이 오빠인 게 낫지 않나? 등등.

 

‘느낌’은 간단한 시놉시스가 16부 전체 스토리의 다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특별한 내용은 없다. 삼형제 모두 유리에게 크든 작든 설레는 감정을 갖고 있고, 유리는 좀처럼 마음을 드러내지 않다가 결국 호감을 나타내는 대상이, 자신이 유리의 친오빠라 생각하는 한현이다. 

 

그 와중 한빈과 10년 넘게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모호한 관계로 지내는 혜린(이본)과 그런 혜린을 조용히 곁에서 바라보는 친구 동욱(류시원), 한현을 몇 년째 짝사랑하는 주희(이지은)가 존재함으로 러브라인은 누구 하나 시원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복잡해진다. 당초 1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후속작 미비로 16부작으로 늘어난 것도 지지부진한 스토리에 한몫했으리라.

 

손지창과 김민종은 남성 듀오 ‘더 블루’​로도 활약해 인기였다. 신인 이정재는 이 작품으로 소녀팬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고, 우희진은 전국 남성들의 이상형으로 떠올랐다. ‘까만콩’​ 이본과 개성 강한 이지은은 청순한 우희진과 대비되는 매력으로 어필했다. 사진=드라마 캡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학생들과 청춘들이 ‘느낌’에 열광한 건 도무지 가능해 보이지 않는 화려한 캐스팅의 청춘스타들과 그에 어울리는 1990년대스러운 영상미 덕분일 것이다. 이란성 쌍둥이 형제 한빈과 한현을 맡은 손지창과 김민종은 당시 가수와 연기자를 겸업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스타들. 이미 1992년 남성 듀오 ‘더 블루’를 결성해 ‘너만을 느끼며’ ‘친구를 위해’ 등의 노래를 발표, 소녀팬들을 무더기로 끌어모았던 손지창, 김민종은 ‘느낌’에서도 주제가 ‘그대와 함께’를 불러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대여~ 나의 눈을 봐요~ 그대의 눈빛 속에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으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언! 언! 언제까지나~”로 포인트를 강조한 마무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참고로 박진영 1집에 수록된 ‘너의 뒤에서’ 또한 ‘느낌’에 자주 삽입되어 애절한 사랑을 강조하곤 했다.

 

신인이었던 이정재는 ‘느낌’으로 10~20대에게 확고한 눈도장을 찍었다. 조정 동호회를 하던 체격 좋은 체대생 한준 캐릭터는 막내의 귀여움과 다혈질로 순간순간 폭주하는 청춘의 어설픔, 끝내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로 인한 상처를 표현해야 하는 제법 어려운 역할이었는데, 이정재는 특유의 눈웃음과 태생적인 섹시미로 이를 잘 드러냈다. 원래 한준 역할에 거론되었던 인물은 당대 스타 김원준이었으나 다음해 방영된 ‘창공’에서의 연기력을 생각하면 이정재의 한준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우희진. 긴 머리에 새하얀 피부, 하늘거리는 긴 원피스와 소녀풍의 밀짚모자로 ‘청순청순 열매’를 먹은 듯한 우희진의 유리는 모든 남자들의 이상형이었고, 모든 여자들의 질투의 대상이었다. 지금 시선으로 보자면 유리는 ‘해맑게 어장관리’하는 캐릭터였다. 

 

자신을 뜨겁게 좋아하던 준의 마음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면서도 잘해주고, 언제나 친절한 빈이 혜린과 결혼 얘기가 나오자 “빈 오빠랑 결혼하는 혜린 언니가 부럽다”는 말을 던져 빈의 마음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건 물론 툭하면 넘어져서 업히고, 술에 취해 부축 받고, 가방을 섬에 놓고 와 챙기게 만드는 민폐 캐릭터가 유리였다고. 

 

그런데도 유리를 욕할 수 없었던 건 보고 있으면 욕이 안 나오게 만드는 끝장 미모 때문이었다. 슬쩍 웃으며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기는 순간 모두가 뒤로 넘어가는데 욕이 나오겠는가. 지금 아침 드라마 ‘나도 엄마야’​에서 악역으로 열연 중인 우희진을 보는 30~40대는 ‘느낌’ 때의 인형 같던 우희진을 떠올리며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게 된다. 

 

유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랑하던 한준. 유리는 둘째 한현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알고 보니 준은 유리의 친오빠로 판명 나 비극으로 끝난다. 사진=드라마 캡처

 

지금 보면 촌스럽고 과장돼 순간순간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잘라내고 싶어지는 영상미도 당시에는 트렌디하게 받아들여졌다. 연출을 맡은 윤석호 PD는 이후 ‘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 ‘봄의 왈츠’를 연출하며 ‘영상의 마술사’로 불린 인물. 청춘의 싱그러움과 사랑의 아련함을 특유의 영상미로 극대화한 연출은 ‘느낌’을 보는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만 가면 저런 캠퍼스 라이프, 저런 연애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무책임한 상상에 불을 지피게 했다.

 

그나저나 ‘지금 느낌을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배우가 좋을까?’란 주제로 가볍게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불이 붙었다. 손지창, 김민종, 이정재 역할을 놓고 김수현, 송중기, 박보검, 박서준, 남주혁, 강하늘, 김영광, 강다니엘 등 내로라하는 청춘스타들을 죄다 거론했지만 우리 눈에 차는 이들은 없었던 것. 어쩔 수 없다. 그때 어렸던 우리 눈에 이정재는, 우희진은 완벽했으니까. 

 

필자 정수진은? 영화를 좋아해 영화잡지 ‘무비위크’에서 일했고, 여행이 즐거워 여행잡지 ‘KTX매거진’을 다녔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지금은 프리랜서를 핑계로 종일 드라마를 보느라 어깨에 담이 오는 백수 라이프를 즐기는 중.

정수진 드라마 애호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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