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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의 성공, '모범택시3'

안 봐도 알 것 같지만 안 볼 이유 없는 통쾌한 재미…소재 고갈 걱정없는 대한민국의 웃픈 현실

2025.12.15(Mon) 15:57:41

[비즈한국] ‘모범택시3’의 쾌속 질주가 눈에 띈다. 시청률 숫자가 무의미한 시대에 ‘모범택시3’는 유의미한 숫자를 기록 중이다. 8화 시청률은 최고 시청률 15.6%, 전국 12.3%로, 동시간대 1위는 물론 한 주간 방송된 모든 미니시리즈 중 1위를 차지했다. 중요 지표인 2049 시청률은 12월 전 채널 전 프로그램 1위다. 대체 왜 대한민국은 ‘모범택시’ 시리즈에 열광하는 걸까.

 

육사 특수부대 출신 장교이자 현재 무지개 운수의 택시기사인 김도기. 압도적 피지컬을 기반으로 빠른 판단력과 담대함으로 상대를 완벽하게 무너뜨린다. 사진=SBS 제공

 

사실 나는 ‘모범택시’를 최근 달리기 시작했다. 그간 보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안 봐도 알 것 같은 드라마라서. 뒤늦게 보기 시작한 이유도 단순하다. 시즌3까지 나오고, 심지어 시청률도 좋은데 안 보는 건 대중문화 칼럼 쓰며 돈 버는 입장에서 직무유기가 아닌가 싶어서. 그렇게 시작해서 며칠 만에 시즌3 본방송까지 따라잡고 든 생각. 안 봐도 알 것 같은 드라마는 맞지만, 단순 명쾌하게 재밌는데 안 볼 이유가 없구나. ‘먹어봤자 아는 맛’이라는 프로 다이어터들도 이 맛은 거부하지 못할 것 같다. 

 

무지개 운수 경리과 직원이자 자칭 IT 전문가이자 타칭 해커 안고은. ‘고은 씨가 뚫을 수 없는 곳은 없다’고 믿어주는 김도기의 말처럼, 무지개 운수의 사적 복수 대행 서비스의 핵심 브레인을 맡고 있다. 사진=SBS 제공

 

‘모범택시’는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통쾌한 복수를 해주는 사적 복수 대행극 시리즈. 김도기는 물론 무지개 운수 대표이자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파랑새 재단의 대표 장성철(김의성), 무지개 운수 경리과 직원이자 IT 전문가 안고은(표예진), 무지개 운수 정비실 엔지니어인 최 주임(장혁진)과 박 주임(배유람) 등 사적 복수 대행 서비스의 멤버들은 모두 가족을 범죄 피해로 잃은 아픔이 있다. 아픔뿐 아니라 분노도 있다.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구멍 난 사회 법망을 통해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빠져나가는 이들이 많다는 걸 이들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무지개 운수의 정비 엔지니어인 박 주임(왼쪽)과 최 주임. 허당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못 만드는 게 없는 핵심 멤버들로, 특유의 ‘티키타카’로 웃음을 담당한다. 사진=SBS 제공

 

어떻게 보면 ‘모범택시’ 시리즈는 지속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은 작품이다. 분통 터지는 억울한 범죄 피해는 고갈될 수 없는 소재 아닌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던 지강헌의 외침이 1980년대나 지금이나 유효한 것처럼. 실제로 ‘모범택시’ 시리즈에 나왔던 에피소드 대다수는 뉴스에 실렸던 실제 사건들을 모티프로 각색해 현실감을 생생히 살렸다. 시즌1의 화제였던 ‘유데이터 사건’은 ‘위디스크 양진호 사건’을 모티프로 했고, 시즌2의 ‘블랙썬 사건’은 누가 봐도 ‘버닝썬 클럽 게이트’를 각색한 것이었다. 다른 에피소드들도 모두 언제가 들어봤던 뉴스 속 사건들을 각색한 것이며, ‘모범택시3’에서도 이 기조는 이어져 ‘중고차 허위 매물 및 침수차 사기 사건’과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 등이 방영됐다. 

 

무지개 운수 대표이자 범죄피해자 지원 센터 파랑새 재단의 대표 장성철. 실감 나는 악역 연기로 명성을 쌓은 김의성이 연기하는 바람에(?), 시즌3까지 왔음에도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혹시나’ 하는 의심을 받는 웃픈 상황도 있다. 사진=SBS 제공

 

대중이 ‘모범택시’ 시리즈에 환호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현실에서 힘 있고 돈 있는 범죄자들은 어떻게든 죄를 피해 달아나거나 지은 죄에 비해 미미한 처벌을 받는다.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 여러 가지 혐의에 대해 선고받은 형량이 모두 12년으로, 2030년 출소 예정이다. 성착취물을 유통해 수백억 불법수익을 챙겼지만 범죄수익에 대한 몰수 및 추징은 없었으니 출소 이후 다시 잘 먹고 잘 살겠지. 버닝썬 게이트? 주동자들은 터무니없이 적은 형량을 받으며 과연 몸통은 누구인가 공분을 일으켰다. 

 

‘모범택시’ 시리즈가 배트맨 등 여타 사적 제재물과 확연히 다른 요소는 김도기 기사가 작전에 들어가면서 보여주는 다양한 ‘부캐’들 덕분이다. 능청스럽고 뻔뻔하게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코미디를 선사하기에 심각할 필요없이 웃을 수 있다. 사진=SBS 제공

 

그에 반해 ‘모범택시’ 시리즈에서 무지개 운수팀이 의뢰받은 사건의 범죄자들은 김도기 기사에게 처절한 응징을 받는다. 응징의 계산법은 ‘눈눈이이’다. ‘도로 위의 시한폭탄’인 침수차를 판 일당들은 자신들이 팔던 ‘폐급’ 침수차에 태워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폭행과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묻어 십수 년간 가족의 애를 끓게 만든 가해자는 그와 맞먹는 고통을 가한 뒤 흙구덩이 속에 파묻는다. 명백히 범죄로 진행되는 사적 복수이지만 시청자들 누구도 응징 당하는 가해자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드라마니까, 드라마 안에서라도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보고 싶다는 강한 갈망이 김도기와 무지개 운수 사람들의 사적 복수를 응원하는 셈이랄까. 

 

‘모범택시3’에서 두 번째 빌런 윤시윤과 세 번째 빌런 음문석. 둘 다 광기의 빌런을 제대로 소화하며 호평 받았는데, 특히 윤시윤은 체중 감량으로 기존의 순둥순둥한 이미지를 완전히 제거하여 섬뜩함을 안겼다. 사진=SBS 제공

 

대략 2편에 걸쳐서 한 에피소드가 해결되다 보니(몇몇 사건은 4편에 걸쳐), 속도감은 필수다. 걸리적거리는 개연성은 과감하게 무시하고, 속전속결로 복수를 마무리 지으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강조한다. 다소 무겁다 싶은 부분은 사건을 해결하며 여러 ‘부캐’로 활동하는 김도기와 무지개 운수 직원들의 활약을 내세워 코미디로 상쇄한다. 그러니까 현실의 응분 어린 사건들을 적극적으로 가져오되, 코미디와 화끈한 액션을 버무려 사적 복수라는 심각성은 덜어내는 식이다.

 

연기 인생 첫 악역으로 등장을 예고한 장나라. 9~10화 에피소드에서 악덕 기획사 대표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과연 장나라가 선보일 빌런은 어떤 모습일까. 사진=SBS 제공

 

게다가 ‘모범택시3’에는 눈에 띄는 빌런들로 묵직한 중량급의 스타들을 내세워 화제를 낳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에서 덴지 역으로 나와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일본 배우 카사마츠 쇼가 첫 빌런으로 나온 것이 시작. 중고차 허위 매물 및 침수차 사기 사건의 빌런으로 나온 차병진 역의 윤시윤은 그간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섬뜩한 악행과 그에 어울리는 비주얼로 임팩트를 남겼다. 5~8화의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의 숨겨진 몸통이었던 천광진 역의 음문석도 광기 어린 빌런으로 극에 긴장감을 더했는데, 9화 예고편에서는 무려 장나라가 악덕 기획사 대표로 출연해 연기 인생 첫 악역으로 등판한다고. 시즌1에서 유데이터 회장으로 나왔던 백현진이 일약 화제를 모았었던지라 이제 중량급 스타들도 에피소드를 빛내는 빌런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다. 다음엔 어떤 빌런들이 나올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 

 

‘모범택시’ 시리즈가 시즌4가 나올 가능성? 지금으로는 99%가 아닐까 싶다. 말했듯 이 시리즈의 소재는 고갈될 확률이 매우 낮으니까. 다만 그렇게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며 김도기 기사의 택시가 달리길 희망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저런 사적 복수 대행극이 저 멀리 시대극으로 남았으면 좋겠지만 힘들겠지.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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