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한민국의 산업 기틀을 닦아온 ‘경제의 쌀’, 철강 산업의 용광로가 급속도로 식어가고 있다. 내수 침체와 중국발 저가 공세, 갈수록 높아지는 글로벌 보호무역의 벽이라는 ‘삼중고’에 막혀, 15년 동안 견고하게 유지해온 마지노선인 내수 5000만 톤마저 무너졌다.
생존의 기로에 선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주요 기업들은 비핵심 자산을 털어내는 구조조정과 함께 고부가가치·저탄소로의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걸었다. 정부와 국회 또한 ‘K-스틸법’과 고도화 전략을 통해 우리 철강 산업의 재건을 위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안팎으로 위기
한국 철강업계는 현재 △내수 감소 △글로벌 공급과잉 △수출 장벽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 KOSIS 한국철강정보서비스에 따르면 국내 소비 및 수출에 사용되는 물량인 ‘철강 수요’는 2015년 약 8700만 톤에서 2024년에는 약 7600만 톤으로 줄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탄소중립 클러스터 공동 연구진은 ‘기로에 선 K-철강: 탄소중립 시대의 구조 개편과 글로벌 생존 전략’ 브리핑 자료에서 “삼중고는 탄소 문제 이전부터 진행된 구조적 현상”이라며 “산업의 부가가치가 낮아지고 있기에 단순히 탄소 배출 감축을 넘어 산업의 근본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짚었다.
철강은 수출보다 국내 소비가 약 두 배에 달할 정도로 내수 시장이 중요하다. 그러나 건설업 침체 등의 영향으로 국내 철강 수요가 감소하며 위기가 닥쳤다. 2010년부터 유지하던 내수 5000만 톤 선은 결국 2024년에 무너졌다.
글로벌 공급 불균형도 치명적이다. 세계 최대 철강 소비국인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내수 수요가 정체되자, 중국 철강사들이 남는 물량을 저가로 글로벌 시장에 밀어내고 있다. 이에 국내 수요 기업들이 저렴한 중국산 철강재를 선호하면서 수입재 침투율이 2021년 26%에서 2024년 31%로 증가했다. 여기에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신흥국이 설비를 증설하며 공급과잉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역시 큰 타격이다. 미국은 지난해 6월부터 철강에 50%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고, 유럽연합(EU)은 철강 세이프가드(TRQ, 수입 제한 조치)를 시행하며 한국의 수출 여건이 악화됐다. 범용재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 철강 산업은 가격 경쟁력 한계에 봉착했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라는 장벽 앞에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고로(용광로) 비중(72%)이 높은 한국은 저탄소 전환에 대한 압박도 거세다.
#정부와 국회도 구조조정과 지원에 앞장
정부는 현 상황을 철강 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기로 인식하고, 지난해 11월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공급과잉이 심각한 범용재는 질서 있게 줄이고, 미래 먹거리인 고부가가치·저탄소 제품으로 산업의 중심축을 옮기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설비 규모 조정 3대 원칙’을 세웠다. 경쟁력이 약화된 형강이나 강관 등은 기업이 자발적 조정 계획을 내면 고용 유지를 전제로 적극 지원하되, 수입재 침투가 높은 열연이나 냉연은 우선 수입 대응에 집중한 뒤 단계적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반면 전기강판이나 특수강처럼 유망한 분야에는 연구개발(R&D) 로드맵을 수립하고 약 2000억 원의 재원을 투입해 선제 투자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정책 실행을 위한 법적 기반도 마련됐다. 지난해 11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일명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이다. 이 법은 국내 철강사들이 사업 재편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동 행위를 할 때 공정거래법상의 특례를 적용하는 ‘구조조정 지원법’ 성격을 띤다. 또한 저탄소 철강 인증 체계 마련, 저탄소 철강 특구 지정 및 세제 지원, 기업결합 심사 기간 단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철강업계, 고부가가치·저탄소로 전환
철강사들은 단순 생산량 확대가 아닌 고부가가치·저탄소로의 전환이라는 미래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HyREX)’ 기술 개발과 더불어 자동차 경량화 강판, 친환경 선박용 소재(고망간강), 첨단 산업용 특수강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주목하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장인화 회장 취임 이후 126개의 비핵심·저수익 자산을 정리하는 대대적인 리밸런싱을 진행 중이다. 중국 장가항불수강(PZSS) 매각과 일본제철 지분 정리 등 적자 해외 법인을 정리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이를 2차전지 소재와 수소환원제철 등 미래 동력에 투입할 예정이다. 올해 5월에는 광양 전기로 가동을 통해 탄소 배출을 70% 감축할 계획이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K-스틸법을 기반으로 포항 HyREX 데모 플랜트와 광양 전기로 건설을 진행하여 저탄소 강재 시장에 대응하는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제철도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단조 전문 계열사인 현대IFC를 3393억 원에 매각했으며, 인천공장 내 스테인리스스틸 설비와 자회사 현대스틸파이프의 매각도 검토 중이다. 미래 투자로는 전기로와 고로를 함께 활용해 탄소를 저감하는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를 당진제철소에서 올해 1분기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또한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에 자동차 강판 특화 전기로 제철소를 공동 건설한다. 투자액 총 58억 달러 규모로 현대차그룹이 지분 80%, 포스코가 20%를 투자한다. 2029년 상업 운용이 목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고도화 방안이 위기 극복을 위한 첫걸음이 되었다”며 “정부와 기업, 협회가 역량을 집중해 이 난관을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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