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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극장의 시간들', 우리가 극장으로 향하는 애틋한 이유

씨네큐브 25주년 기념 앤솔로지…천만영화 너머, 극장의 존재를 아로새긴 '러브레터'

2026.03.17(Tue) 16:14:35

[비즈한국] 2년 만에 천만영화가 나왔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1340만 명을 넘어서면서(3월 16일 기준), 모처럼 붐비는 관객들로 극장가는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런데 진짜 극장이 살아났느냐? 그건 아닌 것 같다. 2025년 극장 전체 관객 수가 가까스로 1억 명을 넘겼지만, 2억 2668만 명을 기록했던 2019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 수준이니까. 천만영화 하나 나온다고 극장 외면하고 OTT를 찾던 사람들이 갑자기 달라지진 않는다는 소리다.

 

예술영화를 보러 다니며 젊은 시절 한때를 보낸 세 친구 모모, 제제, 고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사이 또한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때의 마음은 어딘가 남아 있을 것이다. 사진=티캐스트 제공

 

그럼 우리는 왜 더 이상 극장을 찾지 않을까? 한때 극장과 우리는 매우 친숙했는데 말이다. 친구들과 친목으로, 가족들과 가벼운 여가로, 연인과 필수 데이트 코스로 극장을 찾았는데. 물론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OTT의 다양함과 편리함, 인정한다. 게다가 요즘 영화 티켓값이 좀 비싸야지. 그렇지만 티켓값보다 훨씬 비싼 오마카세와 호텔 숙박은 여전히 데이트 코스로 인기이니, 문제는 극장 그리고 극장에서 관람할 영화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떨어진 것을 이유로 봐야 할 듯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극장을 일상의 여가로 생각하지 않는 이 시기에, ‘극장의 시간들’이란 영화가 개봉한다.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만든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 영화다. 관객, 감독, 배우, 영사기사 등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을 주인공 삼아, 예술영화관 씨네큐브를 배경삼아 이야기를 펼쳐낸다.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맞아 제작한 작품으로, 씨네큐브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예술영화관인 만큼 영화와 극장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여러 추억이 있을 법하다.

 

나이가 들어 영화감독이 된 고도. 침팬지 이야기에 꽂혔던 젊은 날의 자신과 친구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이 많다. 사진=티캐스트 제공

 

세 편의 작품은 함께 웃고 울고 꿈꾸며 언제나 변치 않는 친구가 되어준 극장과 영화에 보내는 시네마 러브레터 그 자체다. 광화문을 배경으로 우연히 만나 신기한 침팬지 이야기에 빠져드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 어린이 배우들과 감독이 영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룬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 오랜만에 광화문의 극장에서 재회한 중년 여성들과 극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하루를 담은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이 주인공.

 

우선 감독들의 이름만 봐도 기대가 솟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탈주’에 이어 최근 ‘파반느’로 섬세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종필 감독이라니. 어린이들의 세계를 그린 ‘우리들’ ‘우리집’에서 청소년의 세계로 확장한 ‘세계의 주인’으로 작년 한국 독립영화 1위를 기록한 윤가은 감독에,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한국이 싫어서’ 등으로 공감과 위로를 건네주었던 장건재 감독까지 한 자리에 만날 수 있으니 호사스러운 경험이다. 

 

카메라가 있지만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생각해 달라고 주문하는 영화감독. 그러나 어린이 배우들은 의아할 뿐이다. 카메라가 있는데 어떻게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생각해 달라는 거지? 사진=티캐스트 제공

 

배우들의 면면도 사랑스럽다. ‘침팬지’에 등장하는 젊은 고도(원슈타인), 제제(홍사빈), 모모(이수경)와 나이 든 고도(김대명), ‘자연스럽게’에서 어린이 배우들에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요구하는 감독(고아성), ‘영화의 시간’에서 광화문 일대를 배회하던 영화(양말복)와 그의 여고 동창 우연(장혜진), 늙은 영사 기사(권해효)와 지각한 관객(문상훈)까지, 모두 우리 일상에서 마주칠 법한 자연스러움과 친숙함으로 빛나는 배우들이다. 원슈타인과 김대명의 싱크로율이 제법 높아 놀라웠고, ‘빠더너스’로 유명한 문상훈의 깨알 같은 감초 연기도 인상적이다. 

 

영화와 극장을 다룬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세 작품의 톤 앤 매너는 꽤나 다르다. 극장에 얽힌 추억에 집중하거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좀 더 진득하게 들여다보거나, 혹은 극장이란 장소에 연관된 인물들에 조명하는 등 각자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 다른 까닭이다. 어떤 작품이 각자의 마음에 와닿을지도 꽤나 다를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가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때의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콕 박혔거든. “영화에 대한 예의를 좀 갖춰”라는 대사나 감독 고도가 읽는 영화평들은 영화 좀 본다 자부했던 시네필들을 웃게 만들게 분명하다.

 

이종필 감독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파반느’를, 장건재 감독과는 ‘한국이 싫어서’로 작업한 인연이 있는 고아성. 이번엔 ‘자연스럽게’로 윤가은 감독과 함께했다. 사진=티캐스트 제공

  

세 편의 작품 외에 ‘극장의 시간들’을 열고 닫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도 눈여겨보게 된다. 씨네큐브 개관부터 현재까지 26년간 근속한 홍성희 영사실장의 하루를 담으면서 그가 젊은 영사기사에게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장면을 비추는데, 영화를 사랑하는 다음 세대에 대한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종필 감독이 연출해 묘한 울림을 준다. 

 

최근 글로벌 스타 티모시 샬라메가 한 인터뷰에서 영화 산업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다 “발레나 오페라처럼 사람들이 더 이상 관심없는 장르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발언을 하며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다른 예술 장르에 대한 편견은 둘째치고,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경험이 발레와 오페라와 같은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몰지각한 발언으로 꼽힌다. 게다가 영화 산업 또한 OTT 등에 의해 사그라지거나 변주될 수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광화문 일대 여고를 함께 다닌 이들이 중년이 되어 우연히 극장에서 재회한다. 영화관을 청소하는 우연은 퇴근시간까지 기다려달라며 친구 영화의 손에 영화 티켓을 쥐어준다. 사진=티캐스트 제공

 

반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발언은 티모시 샬라메와 무척 대비되는 품격과 함께 영화와 극장을 사랑하는 이들을 우아하게 격려하는 느낌이라 인상적이다. “진정한 영화 경험은 낯설고 어두운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게 할 때 찾아온다. 우리는 모두 낯선 사이지만 좋은 영화를 봤을 때 우리는 수많은 감정을 공유하며 하나가 돼 햇살 속으로 혹은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간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리고 덧붙여 그 같은 경험은 콘서트와 발레, 오페라 등을 볼 때도 일어난다고 언급한 것.

 

씨네큐브는 정시에 영화를 상영하는데, 10분이 지나면 입장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 위해 반차까지 썼다며 입장시켜달라고 떼를 쓰는 관객이 등장하는데. 사진=티캐스트 제공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말한 영화에 대한 경험은 ‘극장의 시간들’이 선사하는 감정과 맞닿아 있다. 낯설고 어두운 공간에 모인 타인들이, 영화를 통해 하나가 되는 감정을 이 영화를 통해 즐겨 보시길. ‘극장의 시간들’은 3월 18일 개봉한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상영을 이어가며 극장의 시간을 지키는 영사 기사. 사진=티캐스트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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