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라이프

[정수진의 계정공유] 마냥 응원을 던지고픈 청춘들의 사랑 '파반느'

박민규 소설 원작을 각색해 섬세하게 연출…사랑에 울고 아파본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

2026.02.20(Fri) 14:14:39

[비즈한국] 화려하지도,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란 소재는 상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보기 시작하면 외면할 수 없다. 지극히 작고 평범하지만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느낌이다.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 이야기다.

 

가정을 버린 아버지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던 경록. 꿈에 대한 갈망도 크지 않은 상태에서 백화점 주차장 아르바이트 요원으로 일하게 된다.

 

백화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경록(문상민)은 선배 아르바이트생인 요한(변요한)과 백화점 지하 창고에서 일하는 미정(고아성)을 만난다. 세 사람은 모두 결핍과 상처가 있다. 번듯한 외모를 지녀 배우로 성공하자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둔 경록, 어릴 적부터 못생긴 외모로 놀림과 멸시를 받으며 자라 홀로 지내는 게 편한 미정, 넉살과 익살을 겸비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가정사에 아픔을 지닌 요한. 남들에게 ‘공룡’이라 불리며 지하 창고의 어둠 속에 있던 미정을 보게 된 경록은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고, 그 연민이 호감으로, 다시 사랑으로 바뀌게 된다. 섣부른 듯 보이는 경록의 다가섬을 제지하던 요한은 어느덧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된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영원할 수 없듯, 이들의 관계도 달라진다. 

 

데이비드 보위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단숨에 경록에게 다가온 요한. 백화점에 입사시험 1위로 입사했으나 못생긴 외모로 어릴 적부터 자신감이 없어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미정. 극과 극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 또한 경록처럼 결핍이 있다.

 

‘파반느’는 2009년 출간된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했다. 원작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이종필 감독은 이를 각색하며 여러 가지 설정을 부여했다. 우선 이름이 없던 그와 그녀에게 경록과 미정이란 이름이 생겼고, 원작의 그가 꿈꾸던 소설가는 요한의 몫으로 바뀐다. 자잘한 각색보다 인상적인 건, 경록과 미정과 요한의 사랑과 우정처럼 드라마틱하진 않아도 섬세한 연출. 특히 빛과 어둠을 강조해 캐릭터와 캐릭터의 감정을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감정의 온도를 차분히 조율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탈주’와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로 그 능력을 보여준 이종필 감독은, ‘파반느’에서도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스며들게 하여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못생긴 어머니를 버린 잘생긴 아버지를 둔 경록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남들과 달리 미정의 못생긴 얼굴이 아닌 다른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고아성과 문상민, 변요한의 호연과 시너지 또한 이 영화의 강점. 깊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미정의 단단한 상처를 고아성은 차분히 표현했고, 배려 어린 다정함에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풋풋함과 서투름의 경록을 체화한 문상민은 요즘 대세 청춘배우답다 싶다. 빠르지 않지만 밀도 있는 감정들이 이어지면서 자칫 리듬이 처질 수 있는 상황에서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하는 변요한은 그야말로 발군. 원작의 그를 대신해 화자로 기능하면서 극에 탄력을 부여한다. 세 주연이 주로 등장하지만, 짧지만 눈길을 끄는 주변 인물들도 있다. 경록의 부모로 분해 강렬한 인상으로 영화의 시작을 여는 박해준과 이봉련의 모습은 그들의 서사를 짧은 스핀오프로 보고 싶을 정도다. ‘이 사랑 통역되나요?’와 ‘레이디 두아’에서 존재감을 남긴 이이담과 켄터키 호프 주인으로 등장해 홀로 남은 요한에게 말을 거는 신정근의 얼굴도 기억에 남는다.

 

연민으로 미정을 주시하는 경록에게 충고를 던지는 요한. 경록에게 마냥 인생 선배인 것처럼 조언을 주지만, 그 역시 사실 가냘프고 여린 청춘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는 이들로 떠올릴 숱한 감정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싶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방점은 ‘못생긴’이 아니라 ‘사랑’, 정확히는 청춘들의 사랑에 꽂혀 있다. 20대 초반, 각자의 결핍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청춘들은 사랑에도 서툴고 인생에도 서툴다. 경록에게 인생 선배처럼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는 요한 역시 다를 것 없다. 그 서투른 시행착오들은 우리 모두 겪어왔던 것들이다. 그렇게 잃거나 떠나보낸 인연들도 숱할 것이다. 최근 극장가에서 250만 이상 관객을 모았던 ‘만약에 우리’도 그런 감정을 건드리며 흥행한 만큼, ‘파반느’ 역시 모두에게 소구 가능한 보편적 감정으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서로를 바라보게 된 미정과 경록. 특히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미정을 빛으로 끌어내는 장면들이 섬세하게 표현된다.

 

‘파반느’는 2월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러닝타임은 113분. ‘모든 사랑은 오해다’라는 발칙한 선언으로 시작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당신을 위한’이란 영화의 슬로건처럼 다시 사랑과 삶에 대해 곱씹을 기회를 주니, 시간을 투자할 만하다.

 

켄터키 호프에서 우정과 사랑을 쌓던 세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뒤로 갈수록 그들의 결말을 알고 싶기도, 혹은 알고 싶지 않기도 하는 마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정수진의 계정공유] '흑백요리사' 가고 허전해? '운명전쟁49'로 도파민 충전해!
· [정수진의 계정공유] 설 연휴에 무슨 영화 볼래? 사극, 액션, 힐링 중 '골라골라'
· [정수진의 계정공유] 2026년에 엄마 손 잡고 맞선? '합숙맞선'에 끌리는 이유
· [정수진의 계정공유] '이 사랑 통역 되나요?' 홍자매의 언어부터 누가 통역 좀
· [정수진의 계정공유] '메이드 인 코리아', 야만의 시대에 격돌하는 욕망들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