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살다 살다 이런 프로그램이 나올 줄이야. 남의 운명을 보는 사람들이 모여 서바이벌을 펼치는 ‘운명전쟁49’ 이야기다. 디즈니플러스의 ‘운명전쟁49’는 무속, 사주, 타로, 관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운명을 읽는 이들을 ‘운명술사’로 명명하고, 그 운명술사 49명을 모아 여러 미션을 거치며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게 한다. 우선 ‘인간이 운명을 읽을 수 있는가’란 주제를 서바이벌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놀랍고, 쟁쟁한 무속인과 역술가 등을 49명이나 한 자리에 모았다는 것도 놀랍다. 이제 대한민국 예능은 다루지 못할 주제도, 소환하지 못할 대상도, 가지 못할 곳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운명전쟁49’는 누구라도 흥미를 가질 만한 프로그램이다. 무신론자거나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치 앞 모르는 미래에 대해 불안한 적은 있을 테니까. 국내 운세시장 규모가 수조원에 달한다는 추정이 있을 만큼, 우리 미약한 인간들은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한다.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사주나 명리학을 보러 가기도 하고, 관상이나 타로를 보기도 하며, 신점을 보러 무속인을 찾기도 한다. 해가 바뀐 지 얼마되지 않은 지금, 용한 무속인이나 역술가를 수소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거다.
‘운명전쟁49’는 우리가 한 번쯤 보거나 고려했던 각 분야 전문가들이 고루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무당이나 박수로 불리는 무속인부터 사주 전문가, 명리학 전문가, 관상가, 타로 마스터, 심지어 발의 생김새를 보고 운을 파악하는 족상가와 이름만 보고 사람을 파악한다는 이마저 등장한다. 이력들도 심상치 않다. 미성년 어린아이일 때부터 무속인으로 활동한 이가 있는가 하면, 양궁선수·무용수·화가 출신도 있고, 서울대 또는 카이스트 같은 명문대 출신도 있다. 심지어 낮에는 대기업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사주 전문가로 활동하는 사람도 나오고, 개그우먼 이국주도 타로 마스터로 출연해 놀라움을 안긴다.
활동 분야의 다양함보다 놀라운 건 이들의 실력이다. 2월 11일 공개된 1~4회 분량에서 49명 중 20명을 가리는 1라운드 미션은 ‘촉의 전쟁’. 사진과 생년월일, 사망일을 단서로 망자의 사인 맞추기, 9명의 발바닥 사진을 주고 노숙자를 맞추기, 로또로 ‘돈벼락’ 맞은 사람과 진짜 ‘날벼락’ 맞은 사람 맞추기, 임산부의 태아 성별 맞추기, 서울대생 맞추기, 수술 부위 맞추기 등 기상천외한 미션들이 이어졌다. 미션도 놀라웠지만, 그것을 맞춰가는 운명술사들의 모습은 더 놀라웠다. ‘어떻게 저런 것까지 맞추지?’ 하는 경악의 연속이었다. 귀기 어린 무속인은 그렇다 쳐도, 사주나 타로, 족상 등의 방법으로도 미션의 정답을 맞춰가는 모습도 놀라웠다.
물론 이 지점에서 우려되는 점은 있다. 망자의 사인 맞추기 미션처럼 다른 사람의 사인까지 흥미를 위해 파헤치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은 것이냐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유족의 동의를 받았다 한들, 불편한 마음이 든다. 헤어진 연인의 재결합 의지를 맞추라는 미션에 등장한 커플 또한 그들의 표정만큼 보는 이들도 어색해지는 느낌이었다. 헤어진 커플 외에도 미션을 위해 등장한 출연자들의 프라이버시가 낱낱이 펼쳐지는 걸 보면서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건 나만일까? 물론 출연료를 받고 자의로 나선 걸 테지만. 아, 도파민은 터진다. 거부할 수 없는 도파민의 향연인 건 분명하다.
다음 라운드로 향하는 생존자를 가리는 방식도 살짝 애매하다. 태아의 성별을 맞추는 것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미션도 있지만, 해석에 따라 얼마나 정확하게 맞추느냐 판단해야 하는 미션도 있다. 선착순으로 답을 말하는 과정에서 앞서 말한 이들의 답변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따른다. 결국 여러 사람의 답을 듣고 생존자를 정하는 몫은 ‘운명사자’로 명명된 MC들이다. 운명사자 MC들은 전현무, 박나래, 박하선, 신동, 강지영. 여기서 문제는 갖은 논란으로 현재 활동 중단을 선언한 박나래다. 물론 프로그램은 논란 이전에 촬영된 것이겠지만, 한창 뉴스에 오르내리는 박나래가 편집 없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불편한 감정이 들 수 있다.
그럼에도 ‘운명전쟁49’의 화제성은 4회 공개 분량만으로 폭발 중이다. 특히 49명 중 2라운드 ‘기의 전쟁’으로 진출한 이가 절반도 되지 않은 20명인 데다, 미션이 1:1로 맞붙어 서로의 운명을 읽어내라는 것에서 향후 각각의 캐릭터와 서사가 더욱 짙게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4회에서 처음 맞붙은 무당 설화와 천명도사의 대결은 경악과 소름과 도파민의 하모니였으니까.
이쯤 되면 이 판을 설계한 제작진들이야말로 작두를 탄 게 아닌가 싶다. 특히 ‘흑백요리사’ 시즌 1과 2를 집필한 모은설 작가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걸 보면, 대운이 든 것 같기도. ‘운명전쟁49’는 10부작으로, 디즈니플러스에서 시청 가능하다. 직접 점 보러 가기 두렵다면, 이 프로그램으로 대리만족해도 좋겠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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