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산 1호’ 프로젝트 승인을 계기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정부와 업계는 이번 구조조정으로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고, 고부가가치·친환경 산업으로 체질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탄소중립을 위한 실질적인 산업 전환 대책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구조조정이 단순한 생산량 감축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전환’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짚어본다.
석유화학 산업은 국가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왔으나, 동시에 국내 제조업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산업 부문이 약 38%를 차지하며, 이 중 석유화학 배출량은 정유 부문과 합쳐 국가 전체 배출량의 약 10%에 달한다. 특히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생산하는 나프타 분해 공정(Naphtha Cracking Center, NCC)은 석유화학 전체 공정 배출량에서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탄소중립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타깃으로 부상하고 있다.
NCC 공정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얻은 나프타를 800°C 이상의 초고온으로 가열해 화학 결합을 끊는 열분해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고온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연소시켜야 하며, 이는 곧 대규모의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진다. NCC 공정은 현재 전체 석유화학 산업 탄소 배출량에서 약 70%를 차지한다.
NCC 공정의 연료를 전환하지 않고서는 석유화학 산업의 2050 탄소중립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현재 대부분의 NCC 설비는 메탄과 LNG를 주연료로 사용해 가열로를 가동한다. 이를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이나 무탄소 연료로 대체하는 기술적 전환이 중요해졌다. 공정 전환에 실패할 경우에는 여수, 대산, 울산 등 주요 석유화학 거점 단지들이 탄소 규제에 가로막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 ‘좌초 자산’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그린수소보다 전기화 방식이 더 효율적
NCC 설비의 탈탄소를 위한 핵심 기술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가열로의 연료를 기존 화석연료에서 그린 수소로 대체하는 ‘수소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가열로 자체를 전기 가열 방식으로 전환하는 ‘전기화’ 방식이다.
전기화 방식은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가열로의 열선이나 플라즈마 등을 통해 직접 열에너지로 변환해 나프타를 분해한다. 반면 수소화 방식은 재생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고(수전해), 그 수소를 다시 태워 열을 얻는 다단계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전환 손실로 인해 전기화 방식이 수소화 방식보다 에너지 효율이 약 2.3배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성 분석 결과는 전기화 방식에 더 힘을 실어준다. 국내 생산 그린 수소를 활용해 NCC 공정을 수소화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누적 비용은 2050년까지 약 1488억 달러(약 21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반면, 전기화 방식을 선택할 경우 그 비용은 약 756억 달러(약 112조 원)로 절반 수준에 그친다.
비용 차이가 큰 이유는 그린 수소의 생산 및 운송 비용이 높아서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그린 수소는 전력보다 비싼 에너지원이며, 이를 대량으로 저장하고 이송하는 인프라 구축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직접 전기화는 현재 가용한 탈탄소 기술 중 가장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해외 선도 기업들은 이미 NCC 전기화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상업용 대규모 실증 설비를 가동하며 앞서나가고 있다. 독일의 바스프(BASF)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빅(SABIC), 엔지니어링 파트너 린데(Linde)와 협력해 세계 최초의 대규모 전기 가열식 나프타 분해 실증 설비를 구축했다.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 위치한 이 설비는 2024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갔으며,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850°C 이상의 초고온 공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술적 검증을 끝냈다. 이 실증 단지는 시간당 6MW급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소비해 약 4톤의 탄화수소를 처리한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발 빠른 움직임은 한국 석유화학 산업에 큰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LG화학 등이 2030년 상용화 실증을 목표로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소규모 파일럿 단계에 머물러 글로벌과 기술 격차가 나는 상황이다.
#NCC 전기화 실현의 걸림돌 ‘메탄과 비용’
혁신적인 탄소 감축 효과에도 NCC 전기화를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구조적, 경제적 난관이 많다. 단순히 설비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석유화학 공정 전반의 에너지 및 원료를 재설계하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기술적 걸림돌 중 하나는 공정 부산물인 메탄의 처리다. 기존 NCC 공정은 나프타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별도의 외부 판매 없이 공정 내 가열로의 연료로 직접 재사용하는 완벽한 자가 소비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연료비를 절감하고 부산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핵심 기제였다.
하지만 공정을 전기화하게 되면 이 메탄은 더 이상 연료로 사용되지 않고 대량의 잉여 부산물로 남게 된다. 이를 단순히 연소시켜 처리하거나 대기로 배출한다면 경제적으로 큰 손해일 뿐 아니라 탄소 감축의 의미도 퇴색한다. 그래서 석화 기업은 메탄을 고부가가치 화학 원료로 전환하거나 수소로 변환하는 추가적인 공정을 구축하려 한다. LG화학이 추진하는 ‘부생 메탄의 수소 전환’ 프로젝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메탄을 고온 수증기와 반응시켜 수소로 바꾼 뒤 이를 다시 활용하는 블루 수소 체계를 목표로 한다.
또 하나의 변수는 ‘에너지 비용’이다. 석유화학 산업은 전기요금을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적 비용으로 인식한다.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탄소중립 전환 의지를 꺾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2022년에서 올해까지 산업용 전기요금은 80.0원/kWh 이상 올랐으며, 대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전기요금 비중이 약 74.7%나 급증하는 등 원가 부담이 심화되고 있다. 석유화학 공정은 가동을 멈출 수 없는 24시간 연속 공정이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은 제조 원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화석연료인 LNG나 메탄보다 전기가 더 비싸질 우려가 있다면, 기업들이 굳이 막대한 투자비를 들여 전기화로 전환할 경제적 유인이 사라지게 된다.
장용희 LG화학 저탄소추진팀장은 “메탄의 전환이 중요하다”며 “메탄을 수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전기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 NCC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공급과 전기 요금이 안정돼야 한다. NCC 전기화 공정은 에틸렌 1톤 생산 시 약 5.0MWh의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므로, 대규모 재생에너지 공급과 이를 감당할 전력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원과 물리적으로 근접한 공급망을 확보해 직접 전력을 조달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전기료의 경우 전남, 울산, 대산 등 주요 석유화학단지가 포함된 ‘분산에너지특화지역’ 제도를 적극 활용해 전력 조달 부대비용을 낮출 수 있다. 특구 내에서 분산에너지사업자와 직접 전력거래 계약을 맺어 근거리 수급에 따른 망 이용 요금 감면과 기후환경요금 면제 혜택을 적용받으면 비용 인하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NCC 전기화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고, 기존 NCC가 부산물 메탄을 활용하는 효율이 높은 설비이기에 전환에 따른 비용이 크다. 정부의 기후대응기금을 통한 NCC 전기화 실증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진수 플랜잇 대표는 “석유화학 산업의 시작은 자기자본 비율이 낮은, 국가가 돈을 몰아준 정책 금융이었다”며 “이 관점에서 석유화학의 탈탄소 전환은 기업이 사회에 책임을 지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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