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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영양제] ③ 식약처 '쌍둥이 마크'에 '건기식' 흉내 내는 건강식품

위생 마크(HACCP)로 건기식 코스프레 횡행…안일한 행정이 소비자 눈속임 부추겨

2026.04.13(Mon) 11:18:02

[비즈한국] 명절이나 가정의 달이 다가오면 안방극장 홈쇼핑 채널은 기력 회복을 약속하는 건강기능식품들의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다. 하지만 대형 제약사의 간판과 화려한 마케팅을 앞세워 수십만 원에 팔리는 프리미엄 건강식품 상당수가 실상은 값싼 원료로 만든 일반 가공식품에 불과하다. 비즈한국은 의학적 효능 논란이 불거진 ‘먹는 알부민’ 사태를 시작으로 제약업계의 건기식 꼼수와 기형적인 가격 거품을 낳은 유통 구조의 실체를 살펴봤다.

 

수십만 원짜리 건강식품의 정체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영세 하청업체가 찍어낸 일반 식품에 제약사 이름을 붙이고, 헷갈리는 인증 마크로 포장한 것이 전부다. 소비자 10명 중 8명이 속는 이 시장에서, 유일하게 웃는 건 제약사다.

소비자단체 소비자교육중앙회가 지난해 8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과 건강식품을 명확히 구별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5%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이 제약사들의 화려한 마케팅과 포장, 혼란스러운 인증 마크 탓에 일반 가공식품을 고효능 건기식으로 착각하고 있는 셈이다. 응답자의 84.9%가 “일반 식품에는 ‘건강기능식품 아님’이라는 경고 문구를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한다”고 답할 만큼 소비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다.​

 

식약처의 건강기능식품 인증 마크(왼쪽에서 첫 번째)와 HACCP 인증 마크(가운데), GMP 인증 마크는 글자만 다를 뿐 색깔과 디자인이 같아 소비자들이 구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식약처 인증 마크, 색깔 디자인 똑같아

 

건기식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초래한 원인​ 중에는 주무 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일한 행정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바로 유사한 인증 마크 때문이다. 성분을 꼼꼼히 살피는 소비자가 아니라면 건기식과 건강식품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포장지에 붙은 인증 마크다.

 

하지만 식약처는 2014년 8월 부처 마크의 신뢰성과 통일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건기식 마크와 일반 가공식품의 위생 기준인 HACCP(안전관리인증기준), 우수건강기능식품제조기준(GMP) 도안을 똑같이 만들었다. 글자만 다를 뿐 파란색과 초록색 원형 띠에 하단 스마일 곡선과 식약처 로고는 판박이다.

 

제품에는 인증 마크가 작게 붙다 보니 더 알아차리기 어렵다. 제약사와 유통사들이 건기식이 아닌 건강식품에 HACCP이나 GMP 인증마크를 달아도 소비자들이 건기식으로 착각하기 쉬운 이유다. 건기식 마크는 효능 입증을, HACCP는 식품 위생을, GMP는 제조시설 인증을 의미하는데 이 차이를 정확하게 아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국내 건기식 시장은 ​연간 약 4조 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는데 생산은 OEM, ODM 업체가 도맡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다이소 매장의 건기식 매대. 사진=최영찬 기자

 

#제조는 하청이, 돈은 제약사가​…문제 생기면 ‘나 몰라라’

 

소비자들이 건기식이나 건강식품 구매에 수십만 원을 지불하는 밑바탕에는 의약품을 만드는 제약사가 최첨단 설비에서 의약품만큼 꼼꼼히 품질을 관리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제품 패키지 뒷면을 확인하면 실상은 다르다. 

 

이들 식품의 대부분은 영세한 중소 제조사에 생산을 통째로 맡기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이나 ODM(제조업자 개발 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제약사 간판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이름만 빌려주는 것에 불과한 셈이다.

 

실제 식약처가 지난해 말 발간한 ‘2025 식품의약품통계연보’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건기식 총 판매액은 3조 6330억 원, 제조 품목은 4만 1896종에 이른다. 이 중 10대 건기식 제조업체 순위에는 콜마비앤에이치, 노바렉스, 코스맥스엔비티 등 대형 OEM·ODM 업체들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실질적인 생산은 외주 업체들이 도맡는 구조다. 

 

책임 소재를 물을 때 제약사의 민낯은 두드러진다. 최근 ‘먹는 알부민’이 논란이 됐을 때 제약사들에 먹는 알부민의 효능과 관련한 구체적인 데이터나 입장을 묻자 대부분 답변에 난색을 표했다. ‘자회사 제품이어서 잘 모르겠다’, ‘이름만 빌려줬을 뿐 개발에 관여하지 않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건기식협회)의 무책임한 태도도 논란을 피할 수 없다. 건기식협회는 설과 추석 등 명절이 되면 ‘건강기능식품과 일반 건강식품을 구별해 구매하라’, ‘식약처 마크를 꼼꼼히 확인하라’는 등의 캠페인을 적극 펼친다. 하지만 먹는 알부민 사태가 터진 후 공식 입장을 묻자 말을 아꼈다. 회원사인 제약사나 유통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만큼 특정 기업을 지목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이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식약처가 제약사의 꼼수 마케팅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사진=연합뉴스

 

#​시민단체, 식약처 소극 대응 비판

 

지난해 2월 유통업체 다이소가 30일 분량 기준 3000~5000원의 가격으로 비타민, 칼슘, 오메가3, 밀크씨슬 등의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을 출시했다. 기존 영양제 대비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된 만큼 소비자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은 반면, 약국가에서는 가격 경쟁력 저하로 인한 품질 저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소비자들은 ‘그래도 제약사가 만들었으니 일반 과자나 식품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이소 건기식을 구매한다. 치료나 건강 개선의 목적보다는 가성비에 기댄 플라시보 소비에 가깝다. 초기 대웅제약, 종근당건강, 일양약품에서만 출시한 다이소 건기식은 이제 유한양행, 동국제약, 영진약품 등까지 확대됐다.

 

반면 홈쇼핑이나 약국 매대 앞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식약처로부터 어떠한 기능성도 인증받지 못한 수십만 원짜리 고가의 일반 가공식품(건강식품)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건기식과 일반 식품을 가르는 명확한 기준과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단체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약사들의 꼼수 마케팅으로 시장 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에도 식약처가 솜방망이 처벌과 원론적인 모니터링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소비자와 함께’는 먹는 알부민 효능 논란이 확산되던 지난달 20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사태를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하고 식약처의 소극적 대응을 질타했다. 소비자와 함께 측은 “일반 식품을 특정 질병 치료와 연관 지어 홍보하는 불법 행위가 만연함에도 식약처의 관리·감독은 지나치게 안일하다”면서 “식품위생법 및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업체들을 적발해 최고 수위의 행정처분 및 형사고발 등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히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소비자를 우롱하는 인증 마크의 즉각적인 개편은 물론 기만적 광고로 거둔 부당 이익을 환수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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