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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봤어?] 메마른 현실에 유쾌한 웃음을! '페르난도 보테로: 형태의 미학'

크고 둥근 형태 안에 삶의 상처와 기쁨을 함께 담아내다

2026.06.08(Mon) 16:29:04

[비즈한국] “예술은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삶에 대한 끊임없는 찬미이자,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오아시스여야 한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전시를 보러 갔다. 콜롬비아 출신 거장이자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미술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작가다. ‘보테리즘’이라 불리는 작가의 양식이 확립된 시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작업된 112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대규모 회고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눈에 띄는 건그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대체로 밝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보테로 작품은 어렵지 않다. 예술이라고 심오하게 각을 잡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4월 30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공개된 ‘페르난도 보테로: 형태의 미학’. 11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선보이는 보테로 전시이자 2023년 작가 작고 이후 국내에서 열리는 첫 공식대규모 전시다. 사진=정수진 제공

 

보테로의 가장 큰 특징은 양감(볼륨). 그의 작품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예술에서 양감은 관능이라는 특정한 개념과 맞닿아 있다’라는 지론을 가진 보테로는 작품의 대상에게 터질 듯한 볼륨을 부여해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창시했는데, 캔버스에 꽉 찬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풍요로움과 따스함, 그리고 동시에 묘한 해방감도 느껴진다. 전시를 보러 온 어린아이가 보테로의 작품을 보고선 “엄마다!”를 외쳐서 난감(?)했다는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보면 더욱 그렇다. 아이도 작품에서 엄마의 볼륨을 넘어 엄마의 넉넉함을 발견한 게 아닐까?

 

벨라스케스를 따라 그린 시녀들 Fernando Botero, Menina After Velázquez, Oil on canvas, 198 x 160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60여년 예술 여정을 112점의 작품으로 압축한 이번 전시는 6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벨라스케스와 고야 등 고전 거장들의 회화를 깊이 탐구하다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재해석한 첫 번째 섹션 ‘변주’부터 사람들의 구미가 당길 만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나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푸른 드레스의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 같은 유명 작품이 보테로의 상상력과 터치가 더해져 웃음꽃을 피우게 한다. 

 

“예술이 진정으로 보편적이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적이어야 한다”고 했던 보테로의 말처럼 그의 근원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라틴 아메리카’ 섹션도 흥미롭고, 카톨릭 문화가 지배적인 남미에서 성모와 성인, 주교와 같은 종교적 이미지를 특유의 볼륨과 색채로 재해석한 ‘종교’ 섹션은 유쾌하면서도 과감하다.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정물’ 섹션, 소년 시절 투우 학교에 다녔던 경험이 중요한 영감이 되었던 ‘투우’ 섹션, 유머와 인간성이 깊이 드러나는 ‘서커스’ 섹션 등 보테로의 삶의 궤적과 그가 품었던 생각을 좇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구성이 옹골찬 편.

 

댄서들 Fernando Botero Dancers, 2002 Pastel on paper, 142 x 118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보테로에게 ‘뚱뚱한 사람들만 그리는 화가’라고 할 때마다 그는 “뚱뚱한 게 아니라 사람과 사물의관능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거다. 그런 풍만함과 넉넉함이 좋다. 현실은 상당히 메말랐으니까”라고답했다고 한다. 사실 보테로의 작품만 보면 세상 유쾌하고 즐거울 것 같지만 그의 삶엔 상당히 메마른 굴곡이 많았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화가가 되어서도 혹독한 비평가들의 비난을받아야 했다. 교통사고로 네 살짜리 어린 아들을 잃고, 보테로 또한 그 사고로 손가락을 크게 다쳤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보테로의 어린 아들을 그린 작품을 보면또 기분이 남다르게 느껴질 것.

 

음악가들 Fernando Botero, Musicians, 2008 Oil on canvas, 178 x 100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의 죽음’처럼 콜롬비아 최대 마약왕의 죽음을 그린 작품처럼 마약 카르텔의 이미지로 얼룩진 콜롬비아 메데인 출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작품도 있다. 보테로는 자신이 평생 모은 걸작들과 자신의 작품을 고향에 설립한 미술관에 기증하고,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해야한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메마른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술로나마 작은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었던 화가의 간절한 소망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 불리던 메데인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도 일조했다.

 

먼저 전체적으로 작품을 감상한 후, 평일(화~금) 13시와 15시에 진행되는 무료 정규 도슨트를 함께하면 더욱 풍성하게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사진=정수진 제공

 

보테로 전시는 어렵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감상하면 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곁들여지는 정보가 많을수록 더욱 흥미진진한 감상이 가능하다. 오디오 가이드도 좋고, 평일 하루 두 차례 진행되는 도슨트의 해설도 적극 추천한다. 인기 전시인 만큼 도슨트 시간에는 전시장이 인파로 넘치지만 들어볼 가치가 충분할 것. 어린 자녀와 주말에 찾을 계획이라면, 전시 감상과 함께 연계 미술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맞춤형 예술 교육 프록램 ‘생각하는박물관-키즈아틀리에’를 예약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보테로의 예술 철학을 짐작할 수 있는 그의 말들. 그의 말처럼 작품에 담긴 유머와 따뜻함, 그리고 볼륨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감각을 즐겨보라. 사진=정수진 제공

 

전시 감상 후 아트숍 방문은 필수. 유머러스함과 기분 좋은 색감이 지배적인지라 아트숍의 굿즈들도 상당히 풍요롭다. 다채로운 엽서와 노트, 키링과 마그네틱 등 여러 굿즈가 지갑이 열리길 기다린다. 특히 안경 유저라면 비비드한 색감이 돋보이는 안경케이스 세트가 탐이 날 듯.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지! 비비드하면서도 편안한 색감과 풍성한 볼륨이란 특징 덕분일까,소장욕 자극하는 굿즈들이 제법 풍성하다. 사진=정수진 제공

 

‘페르난도 보테로: 형태의 미학’은 8월 30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된다. 메마른 일상에서 오아시스 같은 활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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