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세이렌’을 보기 시작한 이유는 하나다. 배우 박민영의 작품 선구안. 거의 매년 드라마를 찍으며 소처럼 일하는 박민영은, 작품 흥행 타율도 꽤나 좋은 편이다. tvN 월화 드라마 ‘세이렌’도 매 회차 동시간대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주인공은 아름답고 능력 있는 미술품 경매사 한설아(박민영). 이 여자는, 어쩐 일인지 언제나 죽음과 가까이 있다. 어릴 적 부모가 화재로 죽고 혼자 살아 남았고, 그와 얽힌 남자들은 모두 죽었다. 전 약혼자인 레스토랑 사업가, 전전 애인이었던 의사, 그리고 그 이전 애인인 국제구호단체 직원까지. 더 의심스러운 건, 한설아의 남자들 모두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면서 한설아를 수령인으로 지정했었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사망 직전 보험을 해지했기에 한설아에게 돌아간 이익은 없지만, 정황은 무척 의심스럽다.
경찰 출신 보험조사관 차우석(위하준)이 먼저 한설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설아의 동료 경매사 김윤지(이엘리야)가 우석에게 한설아가 보험살인사건 용의자라고 제보 전화를 한 직후 의심스러운 죽음을 맞았기 때문. 하나뿐인 여동생을 보험사기로 잃은 아픔을 지닌 차우석은 맹렬하게 한설아를 쫓기 시작한다. 그런데,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뭔가 이상하다. 한설아는 정말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홀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이렌 같은 존재일까? 어쩌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한설아의 남자들을 죽이는 건 아닐까? 차우석은 그렇게 한설아에게 빠져들게 된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차가운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한설아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들이대면서도, 동시에 그 역시 피해자일 수 있다는 장면을 곁들이고, 의심스러운 인물들을 연이어 배치시키며 미스터리를 증폭시켰다. 그리고 반환점을 돈 7화에서 한설아의 결백을 조금 더 드러내는 동시에 한설아와 차우석의 로맨스를 한 걸음 진전시켰다. 문제는 ‘로맨스릴러(로맨스+스릴러)’를 추구하는 이 드라마가 둘 다 조금씩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우선 주인공인 한설아에게 감정적으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시작된 불행 때문인지 한설아는 모든 사람들과 거리감을 유지하고, 때로는 과하게 상대를 몰아붙인다. 감정적으로 갑옷을 입고 벽을 쌓은 인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청자가 한설아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감정적으로 빌드업을 쌓아야 했는데, 그런 과정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한설아와 차우석의 로맨스도 생뚱맞게 느껴진다. 차우석이 한설아를 몰아붙이자, 한설아가 충동적으로 자살하려고 하고 그를 말리던 차우석이 “한설아, 당신이 궁금해”라고 외쳤던 4화 엔딩이 대표적.
7화에서 한설아를 괴롭히는 존재와 서사가 드러나며, 세이렌처럼 무섭게 매혹적으로 묘사하던 한설아가 사실은 지지리도 남자 보는 눈 없는 불운한 여자란 서사로 전환되며 그나마 갖고 있던 이 드라마의 스릴러의 매력 요소가 반감되는 느낌이다. 드라마 속 경찰의 말마따나,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의 우연은 의심스럽다. 세 번씩이나 잘못된 남자와 얽힌다니, 2026년에 미인박명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치명적인 분위기를 내고자 자꾸 자극적인 설정을 덧입히는데, 때때로 너무 개연성을 해치니 아무리 드라마는 드라마지 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납득이 안 가는 것도 문제다. 한국 드라마 속 경찰들의 무능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세이렌’에서도 정말 한숨 나게 무능하다. 남자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겠지만, 보험조사관 차우석이 형사 뺨치게 잠입 수사를 펼치는 설정은 장르물과 너무 괴리되어 몰입도를 해친다(회사는 안 짤리는 걸까?). 다소 일차원적인 대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아직까지 하차하지 않은 건, 그나마 화려한 비주얼로 눈요기를 책임졌기 때문. ‘세이렌’은 일본 드라마 ‘얼음의 세계’를 리메이크했지만, 원작과 달리 여주인공의 직업을 미술품 경매사로 설정하면서 화려한 외모와 옷차림, 수억부터 수백 억을 호가하는 미술품 등이 시청자의 눈을 휘감는다. 치명적 ‘로맨스릴러’를 추구하는 만큼 영상과 미술, 음악 등이 감각적으로 어우러져 극의 분위기를 끌고 나간다.
후반부엔 오랜 시간 공을 들여온 한설아의 복수극도 펼쳐질 것으로 보여 끝까지 도파민을 충족시킬 것으로 보인다. 야수의 발톱을 드러낸 IT기업 CEO 백준범(김정현) 말고도, 한설아의 불행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로얄옥션 회장 김선애(김금순)과의 서사가 펼쳐질 예정이거든. 여기에 차우석의 여동생을 죽음으로 몰아간 주현수(박지안)가 돌아오는 것으로 보이고, 오랜 시간 한설아 곁에 친구로 남아 있는 도은혁(한준우)과 황숙지(송이우)도 아직 의심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조금은 더 두고 볼 여지가 있다. 부디 남은 분량에서 분위기에 걸맞은 서사와 감정이 휘몰아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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