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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뤼팽' 흥미는 돋궜다, 다음 파트를 내놓아라

셜록 인생 라이벌 뤼팽의 21세기적 해석…느슨한 개연성 아쉽지만 결말 기대감

2021.01.26(Tue) 14:59:56

[비즈한국] 셜로키언들은 어이없겠지만 나는 셜록 홈즈보다 아르센 뤼팽이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라 생각한다. 국민학생 시절(응, 초등학생 아니야), 학교 도서관 구석에서 나를 판타지의 세계로 이끌었던 건 ‘괴도 신사’라 불리던 뤼팽이었거든. 예고편을 날리고 지목한 물건을 훔치는 대담한 행적, 목소리와 걸음걸이와 얼굴까지 완벽하게 바꾸는 화려한 변장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피어나는 로맨스, 그리고 위트 넘치면서도 한없이 인간적인 성격까지, 쉬이 친구를 만들지 못했던 비사교적인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뤼팽은 완벽한 인물이었다. ‘모여라 꿈동산’의 ‘바베크 탐정과 검은별’을 보면서 “안개 속에 바람인가 검은별~ 검은별~ 나타났다 잡히고 잡혔다가 사라지네” 좀 부르던 ‘국딩’인지라 뤼팽의 매력이 더 크게 느껴진 탓도 있다(참고로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가 존스턴 매컬리의 ‘바베크 탐정과 검은별’보다 선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뤼팽’. 사진=넷플릭스 제공

 

셜록 홈즈의 절묘한 추리는 언제 봐도 입이 떡 벌어지고, 2010년대 들어 영국 BBC의 ‘셜록’ 시리즈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을 때 나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21세기 홈즈에 열광했지만, 마음 깊은 속 본질은 언제나 뤼패니앵이었다. 그러니 넷플릭스 공개 예정 리스트에서 ‘뤼팽(LUPIN)’을 봤을 때 얼마나 기뻤겠나. 미드도 영드도 아닌 프드 ‘뤼팽’이 지난 1월 8일 공개된 이래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1월 3째주 기준)를 달리고 있는 걸 보면 숨어 있던 뤼패니앵들이 이토록 많았나 감격스러울 정도.

 

넷플리스 오리지널 드라마 ‘뤼팽’은 정확히 말하면 아르센 뤼팽의 이야기는 아니다. ‘셜록’이 19세기 말 명탐정 홈즈를 21세기의 섹시한 인물로 재탄생시켰다면, ‘뤼팽’은 세네갈 출신 이민자 아산 디오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아산 디오프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어릴 적부터 성경처럼 읽고 자라며 뤼팽의 정신을 모두 습득한 새로운 뤼팽인 셈이다.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의 흐름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나의 뤼팽은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흑인이 아니야!’라는 진성 뤼패니앵도 달랠 수 있는 영리한 방법이랄까.

 

사진=넷플릭스 제공

 

‘뤼팽’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경매에 부쳐진 마리 앙투와네트의 목걸이를 아산 디오프가 훔쳐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목걸이는 25년 전, 펠레그리니 가의 운전기사로 일하던 아산의 아버지 바바카르 디오프가 훔쳤다고 알려진 것. 아무 증거도 없이 범인으로 몰린 아버지는 감옥 안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자살한 바 있다. ‘뤼팽’의 아산이 마리 앙투와네트의 목걸이를 훔치는 모습은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서 여섯 살 어린이 뤼팽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수모를 주던 백작 부부가 아끼던 마리 앙투와네트의 목걸이를 훔치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이후 아버지가 이 목걸이를 훔치지 않았다는 증거를 포착한 아산이 진실을 추적해가는 과정이 선공개된 시즌1의 5회에 걸쳐 그려진다.

 

루이스 페레라, 폴 세르닌 같이 아산이 가명으로 사용하는 이름들, 아들에게 붙인 뤼팽의 어릴 적 이름 라울은 물론 숙적이 되는 재벌가 펠레그리니란 이름도 원작의 칼리오스트로 백작 부인의 실제 성에서 따왔다. 세세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뤼패니앵들에게 숨은 그림 찾기 하는 듯한 재미를 준다. 눈 깜빡할 새 상대방의 수갑을 자신에게 채우는 수갑 마술을 선보이며 감옥을 제 집처럼 들어가는 묘기도 보이지만 21세기 뤼팽인 만큼 컴퓨터 실력은 기본이요, AI(인공지능)와 드론 등 첨단기술을 다루는 데도 능숙하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물론 넷플릭스의 ‘뤼팽’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건 아니다. 마리 앙투와네트의 목걸이를 터는 것 외에 대부분은 호쾌한 괴도의 면모보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 아산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사방팔방에 CCTV가 존재하는 21세기치고 허술한 변장과 느슨한 트릭은 촘촘함이 떨어져 보인다. 어느 나라에서든 경찰이 한 발 늦게 묘사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산의 뒤를 쫓는 경찰들이 느슨함은 한층 심하고.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펠레그리니 가문이 숨기는 진실, 아산의 첫키스 상대인 쥘리에뜨 펠레그리니와의 오묘한 관계와 아직 여운이 짙게 남아 있는 전 여자친구 클레어, 그리고 5화 마지막에 납치당한 아들 라울과 아산이 21세기 뤼팽임을 알아내고 다가온 형사의 존재 등 현재 공개된 분량만으로는 큰 일 보다 끊긴 듯 아쉬움이 남는다.

 

대신 ‘뤼팽’은 세네갈 출신 이민자 아산 디오프를 내세워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고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2020년을 달구었던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캠페인과 가난한 흑인이라는 이유로 목걸이 도둑이라 몰린 아버지 바바카르의 죽음은 맞닿아 있다. 도움을 주려고 다가온 사람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자동차 문을 잠그던 펠레그리니 부인의 모습과 흑인에게 친근함을 준답시고 고정관념을 잔뜩 덧씌운 ‘흑형’이라고 부르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다를 것인가. 이외에도 “부자들은 우리를 자세히 보지 않아”라는 대사처럼 언제나 논외로 밀려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멸시도 주목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21세기 뤼팽인 아산 디오프를 연기한 오마르 시(Omar Sy)도 현재 인기에 큰 몫을 했다. 신출귀몰 날렵한 뤼팽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거구의 체격이 걱정되었지만, 어느 순간 그의 선량한 미소에 빠지게 된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을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더욱 반가울 것. 아산의 전 여자친구 클레어로 등장한 뤼디빈 사니에(Ludvine Sagnier)도 반가운 얼굴. 영화 ‘8명의 여인들’의 깜찍한 막내 까뜨린느와 ‘스위밍 풀’의 고혹적인 줄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새삼 세월의 무상도 느끼겠지만 남은 이야기를 통해 예전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리라 믿는다.

 

‘뤼팽’은 시즌1 남은 5회 분량이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라 올해 안에 공개될 예정이지만 그때까지 애를 태우며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기다림이 지루하다면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르센 뤼팽 전집을 읽으며 덕심을 채울 것을 권한다. 지난 2018년, 최신 발굴된 작품 7편과 오리지널 삽화를 넣은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이 10권 분량으로 아르테 출판사에서 출간된 바 있으니 덕심 채우기엔 충분하다. 5회를 다시 복기하며 루브르 박물관, 뤽상브르 공원, 몽마르트 언덕, 에트르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를 ‘랜선여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

 

사진=넷플릭스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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