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주요 IT 기업 노동조합들이 집단행동을 본격화하면서 한때 ‘노조 불모지’로 여겨졌던 판교 노사 관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네이버 노조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 관련 관리 책임자였던 임원의 경영 복귀를 반대하고 나섰고, 카카오모빌리티와 한글과컴퓨터 노조는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수단으로 ‘첫 파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쿠팡까지 본사와 모든 계열사를 포괄하는 노조 체계를 갖추면서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배달의민족)’ 전체에 노사 구도가 완성됐다.
치열한 플랫폼 경쟁 속 기업 간 이해관계는 각기 다르지만 IT 노조들은 근로 환경·처우의 유사성 등을 바탕으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유연성으로 대표되던 IT 기업 문화가 전환기에 접어들고 과반 노조가 확대하는 가운데 조직력과 협상력 제고를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모습이다.

#강경 노선 선회하는 판교 노조
출범 6년 만에 첫 파업에 나섰던 카카오 노조는 지난 18일 단계적 파업을 일시 중단하고 회사와 협상을 재개했다. 카카오 노조는 카카오모빌리티가 높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서 낮은 수준의 보상안을 제시했다며 지난 11일 2시간 부분 파업을 시행하고 향후 단계적 파업을 예고한 바 있다.
20일 서승욱 카카오지회장은 “큰 틀에서 사측과 방향성을 확인했다”며 “현재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4시간 부분파업 및 판교역 집회와 오는 25일 전면파업이 각각 진행될 계획이었지만 노사가 의견을 모으고 다시 합의점 마련에 나선 것. 업계는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이르면 다음주 중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카카오는 임단협 결렬로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에 들어갈 예정인 카카오VX를 제외하면 파업 리스크를 일단락 짓는 상황이지만, 판교 전체로 보면 긴장감은 여전하다.
넥슨의 개발 자회사 네오플과 한글과컴퓨터에서도 처우 개선 요구 목적의 파업이 예정돼 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두 회사 모두 창사 이래 첫 전면 파업을 맞게 된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넥슨지회 네오플 분회는 18일 서울 강남구 네오플 서울지사 사옥에서 집회를 열고 “24일과 25일 서울지사와 제주 본사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3일간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네오플의 노사 갈등은 성과급 규모 축소에 대한 직원들의 반발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이 중국에서 성과를 내며 역대 최고 매출 1조 3783억 원을 달성했지만 순이익에 비례해 지급해온 GI(신규개발 성과급)는 기존 지급액의 3분의 2로 줄어들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전면 파업 종료 후 7월부터 부서별로 1~2주씩 순환파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한글과컴퓨터의 경우 일정과 방식 등 세부적인 파업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첫 파업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노조의 쟁의행위는 임금 인상률을 놓고 노조 안(7.3%)과 사측 안(2%)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확대됐다. 지난 3년간 인상률은 △2022년 6.5% △2023년 6.8% △2024년 7.2%이었다. 공시에 따르면 한글과컴퓨터는 지난해 매출 3047억 원과 404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역대 최대 성과를 냈다. 한글과컴퓨터지회 측은 “회사가 직원과 소통 없이 성과 중심으로 인사관리 제도를 개편해 직원들의 분노를 샀다. 압도적인 쟁위행위 찬성을 얻었다”며 파업 추진 배경을 밝혔다.
#강해지는 IT 노조, ‘공통 과제’ 대응도 계속된다
쿠팡까지 통합 노조를 갖추면서 네카라쿠배 주요 기업 포함 IT 업계 전반에 노사 구도가 형성됐다. 새로운 노조가 잇따라 조직되고 활동 중인 노조는 더욱 강경한 행보를 취하는 양상이다. 이는 개별 사안에 따른 갈등을 넘어 산업 구조 전환기에 읽을 수 있는 복합적인 신호이기도 하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성장기 스타트업’이 아니라 조직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노사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산업 특성상 과거엔 기업 문화 자체가 속도와 성과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관리와 분배를 통한 지속성 중심의 문화로 전환되는 상황이다.
전통 제조업의 경우 오랜 시간 동안 노사가 일정한 협상 관행을 쌓아온 반면, IT 산업은 상대적으로 노사 논의에 뚜렷한 기준선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간 자유로운 문화와 빠른 성장세에 가려진 갈등 요인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드러나며 예측 불가능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황용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사 갈등이 관행처럼 ‘정례화’된 다른 산업군과 달리 IT 산업은 이제야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사 문제와 관련해 앞으로의 파장이 더욱 클 수 있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산업의 유연성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술 산업 특성상 시장 환경에 기민한 대응과 빠른 경영 판단이 중요한 만큼 유연한 협의 구조 등을 균형 있게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사한 근무 환경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노조 사이에서 연대 움직임도 계속될 전망이다. 카카오 노조는 임원 복귀 반대 시위에 돌입한 네이버 노조를 지원사격하고 있다. 카카오 노조와 함께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 소속인 네이버 노조는 2021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직원이 사망한 사건 이후 물러난 최인혁 전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테크비즈니스 부문 대표로 복귀한 것을 반대하는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7월 중 예고된 3차 집회에도 연대 투쟁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서승욱 지회장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IT 근로자들이 많이 공감하는 사안이다. 성과평가, 직장 내 괴롭힘, 기업 분사 등 IT 업계의 공통된 문제에 개선을 요구하는 공동요구안도 내놨다”며 “필요시 연대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분배, 경영진에 대한 불만부터 공정성, 거버넌스 등 구조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기업들은 이를 단순 갈등이 아닌 중장기적 리스크 요인으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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