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근로자 사망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SPC에 대한 정부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을 방문해 업무환경 문제를 질책한 데 이어, 29일 국무회의에서도 산재 대책을 논의하며 SPC 이름이 거론됐다. SPC는 급히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고 업무환경 개선에 나서겠다고 공표했는데, 업계 안팎에서는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복 산재 ‘낙인’ 찍힌 SPC, 정부의 1순위 점검 타깃 되나
25일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 시흥의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허영인 SPC 그룹 회장과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 김지형 SPC 컴플라이언스위원장, 김희성 SPC삼립 안전보건총괄책임자 등 SPC 주요 임직원이 자리했다.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건 문제가 있다”, “일주일에 나흘을 밤 7시부터 새벽 7시까지 풀로 12시간씩 일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라며 SPC의 근무환경을 질책했다.
이에 허 회장은 “개선안을 바로 기획하기는 좀 어렵지만 단계적으로 해보겠다”고 답했고, 이틀 뒤 SPC그룹은 생산직 야근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SPC그룹은 초과 야근 폐지를 위해 인력을 확충하고 생산 품목·물량을 조정, 라인 재편 등 생산 구조 전반을 변경할 계획이다. 시행은 10월 1일부터로 예정돼 있다. SPC그룹 관계자는 “생산 현장의 장시간 야간근로에 대한 지적과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여 근무 형태를 비롯한 생산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산재 강력 대응 의지를 밝히면서 SPC는 정부의 1순위 점검 대상이 된 분위기다. 29일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도 올해를 ‘산재 사망 근절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방침을 전하며 SPC를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를 질타하며 “후진적인 산업재해를 영구적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최근 야간 8시간 초과근무 폐지 계획을 밝힌 SPC를 언급하며 “꼭 지키길 바란다”고 재차 당부했다.
SPC 공장에서는 최근 3년간 8명의 근로자가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5월에는 SPC삼립 시화 공장에서 윤활 작업 중 끼임 사고로 50대 노동자가 숨졌다. 2023년 8월에는 샤니 성남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반죽 리프트 설비에 끼는 사고로 사망했고, 2022년 10월에는 SPL 평택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어 숨졌다.
SPC는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같은 형태의 사고가 반복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22년 SPL 사망사고 당시 허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안전 관리에 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나 당시의 약속이 무색하게 바로 다음 해 근로자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SPC 소속 한 근로자는 “회사가 사고 예방을 위한 설비 투자 등을 약속했다. 2022년 발생한 사고의 경우 소스배합기에 뚜껑이 덮여있지 않고, 인터록(기계에 사람이 접근하면 자동 정지하는 장치)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사고 후 이렇게 직접적인 원인이 된 부분은 개선이 됐다”며 “하지만 공장의 안전 관리는 어느 한 가지 포인트만 개선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전체적인 관리 감독과 안전 개선이 지속돼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챙기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야간 단축은 첫 단추,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목소리도
SPC가 약속한 8시간 초과 야근 폐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고 위험을 낮추는 데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의 조영훈 노무사는 “8시간 초과근무 시 업무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8시간 초과 야근 폐지가) 집중력 저하를 막을 수 있는 만큼 산재 예방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제암연구소에서는 야간근로를 2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그만큼 야간에 근무하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의미인데, 야간근로를 줄이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부 근로자들은 야간근로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급여가 줄어들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업계 관계자는 “돈이 필요해 부득이하게 야간 초과근무를 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줄어드는 수입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업이 이런 상황을 고려해 시급을 올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임종린 전국화섬노조 SPC파리바게뜨지회장은 “대통령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 환경을 지적했는데, 현재 회사의 정책은 장시간 노동을 없애는 것에 집중했을 뿐 저임금에 대한 논의는 동반되지 않은 상태”라며 “실제 공장 노동자들은 임금 하락에 대해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비즈한국은 SPC 측에 임금 보전 논의 여부 등에 대해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경영책임을 확실히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더 실효성 있게 강화하는 것이 산재 근절 대책이 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3년 차에 접어들었으나 집행유예·벌금형에 그치면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SPL 공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 관련해서도 강동석 전 SPL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동계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쏟아졌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허영인 회장이 중대재해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관리를 잘못해서 사람 생명을 잃는 사고가 계속 발생하는데, 경영자는 전혀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경영자가 처벌을 받아야 다른 기업도 이런 문제에 더욱 신경을 쓰고 긴장하게 된다. 지금은 반복 사고에도 제대로 된 처벌이 없으니 다른 기업들도 별것 아닌 문제라고 넘기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영훈 노무사는 “SPC가 야근 근로를 줄여 나가려는 것은 산재 예방을 위한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2인 1조 근무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기업설비 장비 등이 노후하지 않도록 투자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숙련된 노동자가 다쳐 일을 못 하게 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큰 자본 손실이다. 결국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기업의 장기적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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