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기업결합 심사제도란 경쟁 제한성을 일으키는 기업결합을 심사를 통해 규제하는 제도다. 기업결합이란 상호 독립적으로 운영하던 기업들이 자본적, 인적, 조직적 결합을 통해 공통의 지배력으로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유형으로는 주식취득, 합병, 영업 양수, 회사설립, 임원 겸임 등이 있다.
고도 자본주의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상품은 기업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기업을 거래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기업결합은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여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 시장경제의 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결합은 특정 기업이 시장지배력을 형성·강화하거나 경쟁 사업자들의 담합 가능성을 높이는 시도에 이용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공정거래법령은 경쟁 제한성을 야기하는 기업결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일정한 유형과 규모에 해당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기업결합 시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령에 따라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에 대해 시정조치도 내린다. 그러나 기업결합 신고 시 대부분의 사건에서 경쟁 제한성이 부정돼 시정조치 없이 사건이 종료된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심사 건수는 각각 865건, 1113건, 1027건, 927건이었으나 같은 기간 시정조치 부과 건수는 2건, 2건, 2건, 3건에 불과했다.
시정조치는 결합 당사회사는 물론 그 회사가 속한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므로, 시정조치가 부과된 사건의 배경이나 내용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공정위의 시정조치는 구조적 조치와 행태적 조치로 구분된다. 구조적 조치란 기업결합 자체를 금지하거나 결합 당사회사의 자산, 지식재산권 등을 회사로부터 분리해 제3자에게 매각하도록 하는 조치를 말한다. 행태적 조치란 일정 기간 결합 당사회사의 영업조건, 영업 방식, 영업범위, 내부 경영활동 등을 제한하는 조치를 말한다.
관련 고시에 따르면, 공정위는 원칙적으로 구조적 조치를 행태적 조치에 우선해 부과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속적 감시비용을 수반하는 행태적 조치와 달리 구조적 조치는 시장구조 자체를 경쟁적으로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적 조치는 영업활동을 제약하는 데 그치는 행태적 조치에 비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고, 더 많은 불확실성을 야기한다. 그래서 실제 사례에서는 구조적 조치 없이 행태적 조치만으로 종료하는 사건이 적지 않다.
경쟁 제한성이란 어떤 사업자의 행위로 인해 특정 시장에서 경쟁의 정도가 유의미하게 줄어들거나 줄어들 우려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떤 행위로 경쟁 사업자의 수가 유의미하게 감소하거나 잠재적 경쟁 사업자의 시장진입이 차단된다면, 이는 경쟁 제한성이 있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러 사업자가 과점하는 시장에서 주요 사업자 간의 기업결합은 어떨까? 주요 사업자는 감소했고, 결합된 사업자의 시장지위는 강화했으므로 경쟁 제한성 있는 행위로써 금지해야 할 것 같다.
특히 규정상 경쟁 제한성이 있는 기업결합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효율성 증대 효과(고용증대, 지방경제 발전, 산업 발전,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 환경오염 개선 등)가 크거나 기업결합 없이는 회생이 불가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할 뿐이다. 그러나 여러 사례를 보면 주요 사업자 간의 기업결합이라고 해도 그 자체로 금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저러한 시정조치 부과를 전제로 승인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위가 2020년 9월 승인한 빙그레의 해태아이스크림 인수 건의 경우 시장의 주요 사업자 간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또는 행태적 조치가 부과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1위 사업자인 롯데그룹 계열회사의 지위가 확고한 점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의 축소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기업이 기업결합을 통해 경영 정상화의 기회를 모색하면 시장에서 실질적인 경쟁이 증진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아무런 조치 없이 승인했다. 빙과류 제품의 주요 소비층인 젊은 세대의 감소로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결론이다. 이는 현재 심사를 진행 중인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 간의 합병 건에도 선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기업결합의 경우 항공 여객 부문에서 국내 1위, 2위와 4위(진에어), 6위(에어부산), 8위(에어서울) 그리고 세계 44위, 60위 사업자 간의 결합이 된다. 더불어 중첩이 발생하는 노선은 총 119개에 달한다는 점에서 경쟁제한 여부가 쟁점이 됐다. 아시아나항공의 독자 생존 가능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기업결합 자체를 반대했으나 결과적으로 구조적·행태적 조치를 하는 것을 전제로 기업결합이 승인됐다.
물론 기업결합을 금지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그룹)이 2022년 1월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한 것이 대표적이다. 해당 기업결합은 글로벌 조선시장 기준으로 1위가 4위를 인수하는 것이어서 시작부터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기업결합을 하면 글로벌 LNG 운반선 시장에서 61.1%의 점유율을 취득해 독점적 지위를 얻는데, LNG는 유럽국가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사항이어서 더욱 논란이 됐다. 결국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기업결합을 불승인했고, 공정위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면서 기업결합 신고는 철회됐다. 그 후 대우조선해양은 2023년 4월 한화그룹에 인수됐다.
기업결합은 경영상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그리고 시의성이 핵심이므로 규제기관으로부터 불승인이나 제재처분을 받으면 이를 다투기도 어렵다. 대형 기업결합의 경우 국민경제 등을 감안해 시정조치를 전제로 승인하는 사례가 많지만, 간혹 불승인하는 사례도 있어 불확실성이 내재돼 있기도 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기업결합 심사제도는 비공식 무역장벽, 규제의 보완 수단, 산업 정책적 협상 카드로도 사용된다. 규제당국은 승인-불승인의 이유로 언급하지는 않으나, 언론보도의 행간과 뉘앙스를 통해 배경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알쓸비법] 다단계판매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
[알쓸비법] 2022년 정점 찍고 내리막…다단계판매 반등할 수 있을까
·
[알쓸비법] 가맹본부-점주 간 불필요한 분쟁 방지용 체크리스트
·
[알쓸비법] 악성 댓글 30일 안에 고소해야 하는 이유
·
[알쓸비법] 프랜차이즈 본사가 창업자금 대부업을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