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는 칩을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이제 엔비디아는 전체 시스템을 만든다. 그리고 AI는 단일 기능이 아니라 전 단계(full-stack)를 아우르는 구조가 됐다.”
1월 5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서 열린 CES 2026 엔비디아 컨퍼런스에서 젠슨 황 CEO는 엔비디아의 현재와 AI의 미래를 이렇게 규정했다. 이날 무대는 AI가 플랫폼이 된 시대에 엔비디아가 어떤 회사로 변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자리였다. 황 CEO는 AI 시대의 경쟁은 더 빠른 칩을 만드는 싸움이 아니라, AI가 작동하는 전체 구조를 누가 설계하느냐의 문제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컴퓨팅 산업, 다시 한번 ‘플랫폼 전환’의 문턱에 서다
젠슨 황 CEO는 컴퓨팅 산업의 변화를 ‘플랫폼 전환’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메인프레임에서 PC로, PC에서 인터넷으로, 인터넷에서 클라우드와 모바일로 넘어왔던 흐름처럼, 지금 역시 또 하나의 전환점에 도달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가 강조한 점은 이번 전환의 성격이다. 단순한 성능 향상이 아니라, 애플리케이션이 만들어지고 실행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첫째, 앞으로의 애플리케이션은 AI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이에 따라 AI는 하나의 기능이 아니라 모든 서비스의 기반이 된다. 둘째,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도 달라졌다. 코드를 작성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대에서 데이터를 학습시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시대로 이동했고, 그 중심 역시 CPU에서 GPU로 옮겨갔다는 설명이다.
황 CEO는 이러한 변화로 지난 10여 년간 구축된 막대한 컴퓨팅 인프라와 기업의 연구개발(R&D) 예산이 AI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는 이제 특정 산업의 기술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의 핵심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고 서두를 열었다.
#AI, ‘답변하는 존재’에서 ‘일하는 존재’로 진화
연설의 중반부에서 황 CEO는 최근 AI 진화의 핵심으로 ‘추론(reasoning)’과 ‘에이전틱 AI(agentic AI)’를 꼽았다. AI는 더 이상 질문에 즉각 답을 내놓는 도구가 아니라 정보를 찾고, 도구를 사용하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존재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변화는 AI의 활용 범위를 크게 넓혔다. 소프트웨어 개발, 문서 분석, 데이터 탐색 등에서 AI는 보조 수단을 넘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오픈소스 AI 모델의 확산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황 CEO의 발표는 자연스럽게 ‘피지컬 AI’로 옮겨졌다. AI의 다음 무대는 화면 속 대화가 아니라 현실 세계라는 설명. 자율주행차와 로봇, 공장 자동화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현실 세계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점이다. 중력과 마찰, 관성 같은 인간에게는 상식적인 물리 법칙조차 AI에게는 학습되지 않은 영역이다.
황 CEO가 제시한 해법은 시뮬레이션이다.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을 가상 공간에서 먼저 만들어 AI를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그는 이를 위해 세 가지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I를 학습시키는 컴퓨터, 현장에서 추론을 수행하는 컴퓨터, 그리고 현실을 재현하는 시뮬레이션 컴퓨터다.
엔비디아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옴니버스’와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 ‘코스모스’는 이러한 시뮬레이션 역할을 담당한다. 연산을 데이터로 바꾸는 구조를 통해, 실제로는 겪기 어려운 수많은 예외 상황을 AI가 미리 학습하도록 만든다는 전략이다.
이 흐름에서 자율주행은 피지컬 AI의 첫 번째 대중 시장으로 제시됐다. 엔비디아가 공개한 자율주행 AI ‘알파마요(Alpamayo)’는 단순히 차량을 제어하는 모델이 아니라,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AI를 지향한다. 모든 주행 상황을 미리 경험할 수는 없지만, 상황을 작은 상식 단위로 분해해 추론하면 대응할 수 있다는 접근이다. 알파마요는 카메라 입력부터 조향·가속·제동까지를 하나의 모델로 학습하는 엔드투엔드 구조를 기반으로, 인간 운전 데이터와 코스모스가 생성한 방대한 합성 주행 데이터를 결합해 훈련됐다.
특히 차량을 제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행동을 선택했는지와 그 이유, 주행 궤적까지 설명할 수 있는 ‘추론 가능한 자율주행’을 지향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황 CEO는 알파마요 기반 자율주행 스택과 기존의 전통적 AV 스택을 이중으로 운용해 안전성을 확보했으며, 이 시스템을 적용한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이 최고 수준의 안전 인증을 획득해 2026년부터 지역별로 양산·출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엔비디아가 칩 공급자를 넘어, 모델과 소프트웨어,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완전한 자율주행 AI 구조를 처음으로 실제 도로에 올리는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AI 연산 폭증의 해법, ‘칩’을 넘어 ‘풀스택’
연설 후반부에서 황 CEO는 다시 컴퓨팅의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왔다. AI 모델은 매년 더 커지고, 추론 과정에서 생성되는 토큰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반면 토큰 가격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이는 연산 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칩 하나의 성능 개선만으로는 더 이상 한계를 넘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아키텍처 ‘베라 루빈(Vera Rubin)’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베라(CPU)와 루빈(GPU)는 단일 GPU 성능 향상을 넘어, CPU·GPU·네트워크·메모리·스토리지·보안을 하나의 구조로 재설계한 통합형 AI 시스템 아키텍처다. 황 CEO는 이를 ‘AI 공장(AI Factory)을 위한 설계’라고 표현했다. 칩 하나를 넘어 풀스택 구조를 갖춘 최초의 AI 아키텍처다.
성능 지표는 그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베라 루빈 아키텍처는 이전 세대인 블랙웰 대비 AI 모델 학습 성능이 약 3.5배, 추론 성능은 최대 5배 향상됐다. 이에 비해 토큰 생성 비용은 약 10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황 CEO는 이러한 성능 향상이 단순한 연산 능력 증가가 아니라, 전력 대비 처리량을 극적으로 개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가 연설 내내 강조한 메시지는 일관됐다. AI 경쟁의 본질은 더 빠른 칩을 누가 먼저 내놓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AI가 실제 세계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전체 구조를 누가 설계하느냐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AI는 이제 플랫폼이 됐고, 화면 속 대화를 넘어 도로와 공장, 로봇과 산업 현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엔비디아는 칩 공급자를 넘어 시스템, 인프라, 시뮬레이션, 모델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AI 회사’로 스스로를 재정의했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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