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 국내 통신 3사의 경영 체제가 나란히 재정비됐다. 지난해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고와 잇단 보안 논란으로 내부 통제와 의사결정 구조의 한계가 드러난 데다, 통신 사업의 성장 정체가 겹치면서 손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각 사는 위기 관리와 신뢰 회복을 위한 자사만의 해법을 내세우고 있다. 사령탑들이 어떤 우선순위와 실행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향후 통신 산업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통신업계를 강타한 정보 유출 사태 속에서 LG유플러스는 묘한 위치에 서 있다. 위약금 면제 조치가 잇따르며 번호이동 시장이 요동친 국면에서 LG유플러스는 오히려 가입자 순증 흐름을 이어갔고, 홍범식 대표 체제 2년차를 맞아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20%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됐다. 반면 해킹 사태의 후속 국면에서 서버 폐기 등 관련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으면서 제재 리스크에서 비롯된 불확실성 역시 상당하다.
경쟁사들이 수장을 교체하며 인적 쇄신에 나선 것과 달리 LG유플러스는 홍범식 대표 체제를 유지하며 ‘정면 돌파’를 택했다. 홍 대표는 재편된 가입자 지형을 전략적으로 지켜내는 동시에 ‘익시오(ixi-O)’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사업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3사 중 유일하게 유임, ‘안정 속 혁신’ 택했다
지난 한 해 보안과 ‘AI 전환(AX)’이 업계를 장악한 가운데 홍범식 대표는 지난해에 이어 자리를 지킨 유일한 통신사 수장이다. 교체 대신 유임을 결정한 데에는 홍 체제에서 그려온 기존 전략과 실행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홍 대표는 베인앤드컴퍼니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보통신 테크놀로지 부문 대표와 한국 법인 대표를 지낸 전략 컨설팅 전문가다. 2019년 LG그룹에 합류해 (주)LG 경영전략부문장을 맡았고, LG유플러스 대표 취임 이후에는 AI·데이터 기반 신사업 확대를 핵심 축으로 삼았다. 그룹의 AI·DX 역량을 통신 인프라와 결합해 수익 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임기 첫해 기업용 AI 솔루션과 산업 맞춤형 플랫폼을 강화하며 AI 서비스를 키웠지만, 자리를 지킨 만큼 AX 성과에 대한 시장의 검증 요구는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번호이동 전쟁 국면에서 LG유플러스는 최대 수혜자로 분류됐다. SK텔레콤이 지난해 7월 해킹 사태 후속 조치로 열흘간 위약금 면제를 시행했고, KT 역시 연말부터 면제 조치를 단행하는 사이 LG유플러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했다. 해킹 사고가 불거진 지난해 4월 이후 약 9개월간 LG유플러스의 무선 가입자는 33만8220명 순증했다. 같은 기간 SK텔레콤은 52만여 명 순감, KT는 6만여 명 순증에 그쳤다. 조용히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려 점유율 20% 돌파를 눈앞에 둔 배경이다.
#수사선상 오른 ‘증거 폐기’ 의혹
하지만 향후 제재 리스크를 고려하면 LG유플러스의 부담이 가장 크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SK텔레콤과 KT는 피해 규모가 명확히 드러난 대형 사고였던 반면 LG유플러스 경찰 수사결과 등에 따라 추가 제재 가능성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관합동조사단은 지난해 12월 말 LG유플러스 통합 서버 접근제어 솔루션(APPM) 서버에서 정보 유출 사실을 확인했지만, 해당 서버가 재설치되거나 폐기돼 추가 조사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출 경로로 의심되는 서버들이 KISA의 정황 안내 이후 조치됐다는 점에서 고의성 여부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LG유플러스는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수사 의뢰된 상태다.
만약 수사를 통해 고의적인 증거 인멸 정황이 드러날 경우 홍 대표는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LG유플러스는 앞서 2023년 개인정보 유출로 68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전력이 있다. 당시 기준 국내 기업 최고액이었고 이후 SK텔레콤에 과징금 1348억 원이 적용되기 전까지 업계 최대 규모였다.
특히 AI 사업을 대표하는 통화비서 서비스 ‘익시오’ 브랜드에 정보 유출 논란이 얽힌 점은 부담이다. 지난해 말 익시오에서 고객 36명의 통화 정보가 다른 이용자 101명에게 노출된 사고가 발생했다. 해킹이 아닌 내부 개발진의 실수에서 비롯된 사안으로 파악됐다. 원인과 범위가 특정돼 수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제재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익시오는 온디바이스 AI를 전면에 내세운 서비스로 소개됐지만, 실제로는 일부 데이터가 서버에 일정 기간 저장된다는 점이 지적됐다. LG유플러스는 “재설치 시 서비스 연속성을 위한 고객 동의 기반 저장”이라고 설명하며 올해 상반기 엑사원 3.5 기반의 온디바이스 sLM 탑재를 통해 통화 요약까지 기기 내에서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강조했다.
LG유플러스는 이 같은 불확실성을 반영해 지난 16일 증권신고서에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주요 투자 위험 요인으로 명시하고, 보안성 강화와 통신망 안정성 확보가 필수적이며, 평판과 브랜드 이미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2년 차, 이제는 뭔가 보여줘야 할 때…
임기 2년 차를 맞은 홍 대표의 역량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홍 대표는 취임 이후 ‘LG유플러스 2.0’ 구상을 내세우며 AI·데이터 조직을 CEO 직속으로 재편하고 외부 전문 인력을 영입해 조직 체질 개선을 추진했다.
그룹 차원의 AI 전략 속에서 LG유플러스의 역할과 몫을 얼마나 키워낼지도 관건이다. LG유플러스는 LG AI 연구원과 협업해 초거대 AI 모델 ‘엑사원’을 통신 데이터에 접목했고, 그 결과 통신 특화 경량 모델 ‘익시젠(iXi-GEN)’을 선보였다.
보안 거버넌스 강화도 병행 중이다. LG유플러스는 두 번째 정보보호백서를 발간하고 CEO 직속 정보보안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향후 5년간 정보보호 분야에 7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KISA 정보보호공시 기준으로 2024년 정보보호 투자액은 약 828억 원으로 전년 대비 31.1% 늘었고, 2025년에도 30% 이상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익시오의 고도화와 함께 B2B 분야 AI 사업 확대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AI 콜센터, 스미싱 차단 시스템 등 통신 사업자만 다룰 수 있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LG유플러스는 4년 만에 영업이익 1조 원 회복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8921억 원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고, 매출은 15조 4517억 원으로 5.7% 늘었다. 순이익도 5092억 원으로 크게 늘었지만, 이는 2024년 자회사 손상차손의 기저효과가 반영된 결과다. 다만 개인정보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여부와 추가 제재 가능성이 변수로 남아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정부 당국이 위약금 면제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경우 가입자 이탈과 함께 사후 보상안 마련 과정에서 이익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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