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액 자산가 2400명이 지난해 한국을 떠났다는 통계를 인용한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의 상속세 연구 결과 발표 후, 수십 건의 후속 기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해당 통계는 이미 지난해 영국에서조차 통계적이지 않으며 데이터 조작까지 의심된다는 보도와 검증이 이어지며 신뢰성에 의심을 받았다.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통계를 인용한 대한상의 연구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대한상의는 2026년 2월 3일 ‘상속세수 전망분석 및 납부 방식 다양화 연구’를 발표했다. 해당 발표에는 대한민국 고액 자산가 중 2400명이 해외로 이주했으며,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숫자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영국 이민 컨설팅 업체 헨리앤파트너스(Henley & Partners)의 ‘헨리 고액 자산가 이주 보고서 2025’를 인용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통계는 발표 당시부터 영국의 조세 전문가와 주요 언론에서 신뢰성에 의혹을 받았다. 해당 조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자산 정보 기업 뉴월드웰스(New World Wealth)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다. 해당 기업은 사실상 1인 기업으로, 한 개인이 전 세계 15만 명 자산가의 현금·주식·암호화폐·부채 등 자산과 이동을 추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데이터 조작 의혹도 제기됐다. 영국의 비영리 조세 정책 싱크탱크 ‘택스 폴리시 어소시에이츠’(TPA)는 해당 보고서를 검증하며 △지나치게 많은 짝수 △변하지 않는 고액 자산가 비율 △부동산 자산 제외에도 변하지 않은 수치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TPA가 2022년부터 2025년까지의 보고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숫자에서 짝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나이트 프랭크, 포브스, UBS 등 유명 자산 보고서에는 홀수와 짝수가 비슷한 비율로 나타난다. 그러나 헨리앤파트너스의 보고서는 0을 제외한 숫자 중 홀수 비율이 41.5%에 불과했다. TPA는 이와 같은 결과가 우연히 발생했을 확률이 2%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이 방식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짝수를 선호하는 경향을 이용한 통계 조작 검증의 대표적 방법이다.
또한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세계 주요 도시의 백만장자와 센티밀리어네어(1억 달러 이상 자산 보유자) 비율이 거의 변하지 않은 점도 의혹의 근거다. 보고서에서 고액 자산가 비율 변화율이 1% 미만인 도시는 14곳(38%), 0.1% 미만인 도시는 5곳이었다. TPA는 이처럼 작은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0.03%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헨리앤파트너스 보고서는 2023년까지 부동산을 자산에 포함했다. 그러다 2024년에는 부채 없는 주거용 부동산으로 한정했고, 2025년에는 부동산을 아예 제외했다. TPA는 그럼에도 고액 자산가 수가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며 조사의 신뢰성을 의심했다. 이에 대해 앤드류 아모일스 뉴월드웰스 설립자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부동산을 수치에 포함한 적은 없다”며 과거 방법론 기술이 부정확했음을 인정했다.
데이터 수집 방식도 통계적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헨리앤파트너스는 거주지 추적을 위해 링크드인의 근무지 데이터를 활용한다고 밝혔으나, 전문가들은 링크드인 프로필이 실제 세법상 거주지를 반영하지 않으며 자산 규모 파악에도 부적절하다고 짚었다. 결국 헨리앤파트너스는 지난해 8월 뉴월드웰스의 방법론과 데이터에 대해 제3자 독립 감사 및 검토를 받기로 했다.
대한상의의 상속세 관련 연구는 통계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헨리앤파트너스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신뢰성에 의문이 생기는 상황이다. 상속세로 인한 고액 자산가의 이주에 대해 더 엄격한 연구·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해당 통계의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언론에 정정 요청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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