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살다 살다 히로뽕 파는 현빈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런데 또 그런 현빈의 모습에 끌릴 줄이야. 시즌1을 마친 디즈니플러스의 ‘메이드 인 코리아’는 우리가 지금껏 만나지 못한 현빈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시청할 이유가 충분하다. 게다가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하얼빈’ 등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아쉬운 점은 있다. 지금 당장 볼 수 있는 건 시즌1 6편이 전부다. 하반기 공개 예정이라고 알려진 시즌2의 방영일은 확정되지 않았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격동의 1970년대를 배경으로, 부와 권력을 갖고자 위험한 비즈니스를 펼치는 중앙정보부(중정) 부산지부 정보과장 백기태(현빈)를 내세운다. 백기태가 택한 비즈니스는 마약 밀매. 한국에서 제조한 히로뽕(필로폰)을 일본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심지어 이 일에 은행원 출신 여동생 소영(차희)까지 끌어들인다.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며 우려하는 소영에겐 ‘외화도 벌고 수출 역군도 되는 것이니 나랏일이고 애국’이라는 희한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또 그 궤변이 통한다. 궤변이 통하는, 아니, 힘의 논리가 통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백기태를 막으려는 인물이 있다. 마약에 중독돼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 아버지를 둔 장건영(정우성) 검사. 참혹한 장건영의 서사는, 마약 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집요한 의지를 지닌 검사로 성장케 한다. 승진이나 출세 따윈 안중에 없는 외골수의 만년 평검사 장건영의 눈에 백기태의 마약 밀매가 포착되었으니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상대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중정이지만 장건영은 개의치 않는다.
백기태와 장건영, 더 나아가 백기태가 속한 중정과 장건영이 속한 검찰이 대립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1970년대의 정치사와 맞물려 긴장감을 자아낸다. 또한 중정 요원이면서 마약 밀매로 성공을 꿈꾸는 백기태의 아이러니한 욕망은, 이전부터 부패한 독재정권을 지탱하는 부정한 자금줄과 그에 연관된 이들의 욕망과도 맞닿으면서 때론 격돌한다. 백기태가 끈을 대려 하는 청와대 경호실장 천석중(정성일), 백기태의 상사이자 천석중 휘하에 있는 중정 부산지부 국장 황국평(박용우), 백기태와 같은 부산지부 정보과장이자 천석중의 사람인 표학수(노재원) 등 중정 라인의 욕망을 주요하게 그려내지만 그 외의 욕망들도 만만치 않다.
백기태와 함께 마약 사업을 도모하며 야쿠다 조직의 수장이자 양아버지 이케다 오사무(릴리 프랭키)를 제치려는 이케다 유지(원지안), 형에 대한 애증으로 흔들리며 형과 다른 길을 걷고자 하지만 그 역시 출세에 대한 욕망을 지니고 있는 백기현(우도환), 부산 마약 경제를 주무르는 조폭 만재파의 행동대장에서 우두머리를 꿈꾸는 강대일(강길우), 고급 요정 마담 출신으로 권력자들의 비밀을 쥐고 흔드는 배금지(조여정)의 부나방처럼 위험한 욕망 등이 백기태와 장건영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물론 드라마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건 백기태와 장건영, 그러니까 현빈과 정우성의 대립이다. 그러나 중심축은 확연히 현빈으로 기울어진다. 현빈은 13kg가량 증량해 단단해진 체형과 수트 핏으로 위압감 넘치는 중정 요원을 완성하며 비주얼부터 확고한 존재감을 확보했다. 그간 보지 못했던 현빈의 눈빛과 표정은 어떻고. ‘내 이름은 김삼순’ ‘시크릿 가든’ ‘사랑의 불시착’ 등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던 전작들에서 주로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순정을 그렸던 반면 ‘메이드 인 코리아’에선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향해 직진하는 냉철하고도 냉혹한 인물로 분해 놀라움을 안긴다. 뜨거운 욕망을 차갑게 제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인 백기태를, 지극히 절제되고도 세밀하게 계산한 눈빛과 표정과 숨소리 등으로 밀도 있게 쌓아 올린 연기가 강한 인상을 남기며 악역임에도 납득을 시키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 중 하나다.
백기태에 대립하는 장건영 캐릭터는 다소 아쉽다. 인상적인 서사를 안고 있음에도 빤하게 정의 구현을 외치는 캐릭터로 그려져 단조로운 구석이 있다. 게다가 감독이 의도한 연기 디렉션의 결과라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지적하듯 다소 과장된 연기 톤이 백기태 및 다른 인물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튀어 버린다. 개인적으로 정우성의 오랜 팬이고, 그가 잘하는 연기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이번 작품의 캐릭터는 (적어도 시즌1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정우성의 아쉬움은 ‘메이드 인 코리아’ 전체로 봤을 땐 미미한 정도. 박용우, 정성일, 노재원 등 존재감 넘치는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다, 특히 ‘금지의 시대’란 제목으로 한 회를 장식한 조여정의 연기는 그야말로 회차를 잘근잘근 씹어먹는다는 느낌이 들만큼 능란하다.
순차적으로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디즈니플러스의 공개 방식, 풀어내야 할 이야깃거리는 많이 남았는데 다소 느린 전개 속도로 감질나는 게 단점이지만, 영화 같은 완성도로 그를 상쇄하는 것도 ‘메이드 인 코리아’를 보게 만드는 이유.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하며 세심하게 연출된 조명, 1970년대를 생생하게 구현해내는 미술과 의상, 그리고 캐릭터를 부각시키면서 감정선을 확대하는 음악이 잘 어우러지며 고급스러운 누아르를 완성시켰다.
시즌2에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측의 반격과 함께 시즌1에서 많이 다루지 못했던 이케다 유지와 백기현 등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보다 심도 있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안타까운 건 시즌2의 공개까지 곱씹을 것이 시즌1 단 여섯 편의 에피소드밖에 없다는 것. 언제일지 모를 공개까지 찬찬히 곱씹으며 음미하는 수밖에.
별점 ★★★☆
한국 누아르의 새 얼굴이 될 현빈에게 던지는 찬사(시즌2에 대한 여지로 빼두는 별 반 개).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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