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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애마', 야만의 시대를 화끈하게 뒤집는 여성 서사

전설적 에로 영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자극적 소재를 통쾌하게 풀어내는 '연기 앙상블'

2025.08.22(Fri) 16:00:03

[비즈한국] ‘애마부인’을 아는가? 1980년대 에로 영화를 대표하며 무려 13편까지 시리즈가 제작된 흥행작이자 여성의 욕망(성욕)을 주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는 작품. 당시 전두환 정부가 군사 독재로 인한 국민들의 반발을 돌리기 위해 시행한 3S(Sports, Screen, Sex) 정책에 딱 들어맞던 이 에로틱한 영화는 몰려드는 인파로 영화관 입구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넷플릭스 ‘애마’는 이 전설적인 영화를 소재로 삼은 독특한 픽션 코미디이자 가상역사물이다.

 

노출 연기로 각광받아온 톱스타 정희란. 80년대를 맞아 새로운 배우로 도약하고자 하지만, 그를 놓아주지 않는 영화사 대표 구중호의 집요함이 만만치 않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1981년, 서울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계올림픽 개최지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새로운 시대. 그리고 여기, 새 시대를 맞아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톱스타 정희란(이하늬)이 있다. 그는 지난 70년대에 노출 연기로 주목받았지만 자꾸 벗기려고만 하는 충무로의 작태에 염증이 나 있는 상태. 신성영화사 대표 구중호(진선규)와 딱 한 작품만 더 찍으면 지긋지긋한 전속계약이 풀리는데, 그 한 작품으로 배정된 것이 시나리오 전체에 ‘가슴’이란 단어가 도배된 ‘애마부인’이다. 분기탱천한 희란은 기자회견을 열어 더 이상 노출 연기는 없다고 선언하고, 이에 격분한 구중호는 대대적인 오디션을 연다. 그리고 이 오디션에서 나이트클럽 댄서 출신 신주애(방효린)가 신인 감독 곽인우(조현철)와 구중호의 눈에 들어 주연을 꿰찬다.

 

나이트클럽 댄서 출신으로 정희란 같은 톱스타가 되겠다는 욕망을 가진 신주애. 모든 것을 걸고라도 영화를 성공시키겠다는 그의 결심은 희란을 만나 변해간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갑자기 주연에서 조연으로 강등된 희란과 넘치는 패기로 정희란 같은 톱스타가 되고자 하는 신주애, 어떻게든 ‘꼴리는 영화’를 만들어 상업적 성공을 거두려는 구중호와 첫 영화에서 자신의 예술관을 펼치겠다는 포부의 곽인우. 각자 바라보는 지점이 다른 만큼 충돌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유신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야만이 폭주하는 시대. 정부의 검열로 시나리오를 전면 수정해야 하는 데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영화 촬영이 중단되더니, 그로 인해 희란과 주애는 수상쩍은 ‘대연회’란 곳에 불려가게 된다. 과연 ‘애마부인’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희란과 주애, 중호와 인우 중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이는 누가 될까?

 

영화의 상업적 성공이 최우선인 영화사 대표 구중호와 벗기는 영화일지언정 자신의 예술관을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신인 감독 곽인우. 사진=넷플릭스 제공

 

드라마의 소재가 되는 ‘애마부인’이 대표적인 에로 영화인 만큼 노출 수위와 성애 묘사 등 자극적인 부분에 일차적인 관심이 쏠릴 법하다. 2025년에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고 노출을 강요하던 영화판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우려의 시선도 있을 것이다. ‘애마’는 놀랍게도 이 모든 우려를 영리하게 피해간다. 당연히 노출과 성애 묘사가 있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야만의 시대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니와 희란과 주애의 연대와 성장을 그린 여성 서사물이기 때문이다. 에로티시즘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말을 타고 거침없이 달려가는 희란과 주애의 모습에서, 포드 선더보드를 타고 하늘을 향해 질주하던 ‘델마와 루이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달까.

 

처음에는 ‘꼴리기만 하는 영화’였던 ‘애마부인’은 감독이 지향하는 ‘에로그로넌센스(에로+그로테스크+넌센스)’와 배우의 적극적인 해석으로 점차 다른 영화가 되어간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물론 ‘양아치 짓의 끝판’을 보여주는 구중호를 비롯해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최 실장(이성욱), 권력으로 여성을 탐하려는 독재자(김준배)와 스포츠연예신문 부장(박해준) 같은 불쾌한 이들의 행태를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나 주애의 배우 도전을 지지하며 제작부 막내로 함께하는 근하(이주영), 희란의 승부수를 돕는 거장 감독 권도일(김종수), 기회주인자인 줄 알았으나 끝내 의리를 지키는 디자이너 폴 고(안길강), 공장 여공 등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양 기자(이홍내) 등 야만의 시대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연대가 꽤나 뜨거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배우들의 찰떡 같은 연기를 보는 재미가 이 시리즈의 백미. ‘비열한 양아치’의 절정을 보여주는 진선규의 연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영화를 제작하는 여러 사람들의 치열한 고군분투를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그려내는 ‘애마’. 이 고군분투를 실감나게 살려내는 건 배우들의 찰떡 같은 연기 앙상블이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에 최적화된 배우로 꼽히는 이하늬는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다. 80년대 특유의 말투와 발성, 화려한 여배우의 비주얼을 고스란히 입고 강력한 매력을 발휘, 보는 이를 단박에 매료시킨다. 멋진 언니 정희란에 이처럼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희란의 기세에 밀리지 않는 주애를 맡은 방효린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풋풋한 얼굴이지만 연기는 풋내기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진선규, 조현철, 김종수, 이성욱, 박해준 등 여러 배우가 그 시대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인물을 사실적으로 연기한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포드 선더보드를 타고 세상을 향해 질주했다면, ‘애마’의 희란과 주애는 말을 타고 야만의 시대에 맞선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애마’는 ‘천하장사 마돈나’ ‘독전’ ‘유령’ 등을 연출하며 남다른 스타일과 이야기로 대중을 사로잡아온 이해영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8월 22일 오후 4시 공개 예정으로, 6부작이라 부담없이 소화할 수 있다. ‘벗기려고만 하는 시대, 화끈하게 뒤집는다’라는 카피처럼, 화끈하고 통쾌하게 판을 뒤집는 여성들의 활약을 만끽해 보시라.​ 

 

‘원 더 우먼’ ‘밤에 피는 꽃’ 등에 이어 연이어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하늬. 우월한 피지컬을 적극 활용한 스펙트럼 넓은 연기로 시청자들을 매료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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