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천문학은 빛의 과학이다. 망원경은 모두 우주에서 날아오는 ‘빛’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천문학에서 유난히 짜증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암흑 물질이다. 암흑 물질은 하필 아무런 빛을 내지도, 흡수하지도 않는다. 빛과 아무런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빛을 보는 망원경에게 암흑 물질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분명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선 암흑 물질을 가정해야 하지만, 애초에 그걸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적어도 천문학자에겐 말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몇 년 사이 암흑 물질의 정체를 찾는 시도는 천문학보다는 입자 물리학에서 많이 했다. 땅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검출기를 설치하고, 우연히 암흑 물질 입자가 지나가면서 남기는 흔적을 기다린다. 또는 거대한 입자 충돌기에서 쉼 없이 양성자를 부딪치면서 뜻밖의 에너지 결손이나 과잉이 나타나는지를 기다린다. 이런 실험들이 특히 땅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최대한 다른 우주선, 입자들의 방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아예 지구 바깥으로 나가는 건 어떨까? 지상의 인간들이 만드는 노이즈로부터도 도망갈 수 있고, 또 우주 속 암흑 물질의 신호를 더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을 하나의 암흑 물질 검출기로 테스트하는 과감한 실험도 진행되었다.
그런데 잠깐,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제임스 웹은 엄연히 망원경이다. 빛을 보는 도구, 아니 빛만 보는 도구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제임스 웹을 암흑 물질 검출기로 쓸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아이디어가 참으로 신박하다.
망원경은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우주의 빛이 날아와 검출기에 닿으면 전자가 튀어나오고 전류가 흐른다. 사실 망원경 카메라는 빛 자체를 찍는다기보단 빛을 얻어맞고 흐르는 전류를 감지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더 밝은 빛이 날아오면 더 강한 전류가 흐른다. 그런데 망원경 검출기가 완벽하지 않다 보니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또 다른 노이즈가 발생한다. 망원경 검출기는 별빛뿐 아니라 열에 의해서도 전류가 흐른다. 그래서 망원경은 항상 냉각이 굉장히 중요하다. 망원경 자체가 뜨거워지면, 별빛이 아니라 열기로 인해 원치 않는 전류가 흐르게 되고 관측 데이터가 오염된다.
그래서 망원경으로 관측할 때는 일부러 망원경 셔터를 닫은 채로 까만 사진을 찍곤 한다. 그러면 외부, 하늘에서 날아오는 빛의 영향은 차단한 채로 망원경 내부 열기에 의한 자체 노이즈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실제 밤하늘 사진을 찍은 다음 앞서 파악한 순수 자체 노이즈를 빼면, 노이즈의 오염을 최소화한 더 깨끗하고 순수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제임스 웹을 암흑 물질 검출기로 쓰자는 아이디어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번 시도에서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의 NIRSpec 검출기 중 하나에 불투명 필터를 씌웠다. 센서에 들어오는 빛을 전면 차단했다. 제임스 웹 카메라에 셔터를 닫은 셈이다. 그 상태로 검출기에 들어오는 미미한 자체 노이즈를 감지했다.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CCD를 비롯해 빛을 전류로 변환하는 센서를 사용했다. 망원경 카메라뿐 아니라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도 모두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따라서 우리는 망원경 검출기에 노이즈가 어떤 형태로 생성되어야하는지 잘 알고 모델링을 할 수 있다. 망원경 자체 열기, 우주에서 날아오는 강한 우주선 입자 등에 의해 제임스 웹 검출기 픽셀마다 얼마나 많은 전하가 검출되어야 할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실제로 제임스 웹의 셔터를 닫고 실험을 했을 때, 예상한 것과 달리 더 많은 전하가 검출된다면? 이것은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가 망원경 검출기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실험은 제임스 웹의 셔터를 닫은 채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즉 평범한 빛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별빛, 은하의 빛, 그 어떤 것도 원인이 되지 못한다. 대신 가능한 건 단 하나뿐이다. 검출기 셔터를 그대로 뚫고 검출기에 닿을 수 있는 유령 같은 존재, 바로 암흑 물질이다. 이번 실험에서 제임스 웹을 통째로 암흑 물질 검출기로 써보자는 아이디어가 바로 이것이다.
이 신박한 실험의 결과는 어땠을까? 이 그래프는 실제 제임스 웹의 NIRSpec 셔터를 닫은 채로 수집한 전하의 분포를 보여준다. 검출기의 픽셀마다 얼마나 많은 수의 전하가 검출되었는지 그 분포를 보여주는 히스토그램이다. 하늘색 히스토그램을 보면 전하가 많은 픽셀부터 적은 픽셀까지 부드럽게 그 수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정규분포와 같은 분포를 띈다. 여기에서 파란색 선은 암흑 물질의 효과를 배제했을 때, 순수한 자체 노이즈의 분포다. 하늘색 히스토그램과 파란색 그래프를 비교하면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다. 즉 제임스 웹의 눈을 닫고 진행한 신박한 실험에서도 암흑 물질 입자의 흔적은 딱히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 실험은 망한 걸까? 결과만 보면 암흑 물질의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가 암흑 물질을 찾을 때, 어디를 봐야 할지가 아니라 어디를 볼 필요가 없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이 그래프는 굉장히 흥미롭다. 이 그래프는 우리가 찾는 암흑 물질 후보 입자의 물리량 분포를 보여준다. 가로축은 암흑 물질 입자의 질량 수준, 에너지 수준을 나타낸다. 그리고 세로축은 암흑 물질 입자가 서로 얼마나 쉽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유효 단면적을 나타낸다. 단면적이 클수록 더 멀리 있어도 쉽게 상호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그래프에서 색이 칠해진 영역은 다양한 실험과 관측을 통해 배제된 영역을 나타낸다. 즉 암흑 물질 입자는 색이 칠해진 영역에는 놓이지 못한다는 의미다.
재밌게도 그동안 인류는 암흑 물질을 찾지 못하고, 암흑 물질 입자가 어디에 없어야 할지 걸러내는 작업을 해온 셈이다. 질량은 어느 정도 이상으로 무겁거나 가벼워야 하는지, 단면적은 어느 이상 또는 어느 이하여야 할지, 암흑 물질 입자가 놓일 수 없는 물리량의 범위를 찾고 배제하면서 일종의 소거법 식으로 암흑 물질 입자를 옥죄어가는 중이다.
제임스 웹의 셔터를 닫고 한 흥미로운 시도는 이 그래프 위에 파란색의 또 다른 배제 영역을 추가했다. 이로써 다시 한번 암흑 물질이 도망갈 수 있는 공간을 줄였다. 그래프 위에 아직 색깔이 칠해지지 않은 하얀 영역에 암흑 물질이 숨어있을 확률이 더 높아졌다.
이렇게 조금씩 암흑 물질이 놓일 수 없는 물리량 범위를 배제해나가는 과정은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계속 암흑 물질이 도망갈 수 있는 범위를 줄여나가면서, 수색 범위를 좁히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굳이 쓸데없는 영역은 찾지 않도록 시간 낭비를 줄여준다. 그리고 암흑 물질의 물리량 범위를 조금씩 압박해나가면서 결국 끝까지 숨어있던 녀석을 찾아내게 해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애초에 암흑 물질 같은 건 없었지만, 그것도 모른 채로 인간들은 하얀 영역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애초에 하얀 영역에 숨어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 조금씩 하얀 영역을 지워나가면서 색을 칠하지 않은 영역에 무언가 숨어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는 꼴일 수도 있다.
암흑 물질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천문학과 입자 물리학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천문학은 빛의 과학이기에, 빛을 내지 않는 암흑 물질을 직접 보기는 어렵다. 대신 보이는 것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가 어떤 특징을 가져야 할지, 아니 가지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러면 그것을 바탕으로 지구의 입자 물리학자들은 암흑 물질을 붙잡기 위한 함정을 설계한다.
암흑 물질을 추적하는 과정은 현대 천문학이 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철학을 대변한다. 일명 우주론적 인식이라는 개념이다. 우리는 이제 보이는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영향을 받으며,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아직 알지 못하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암흑 물질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망원경의 셔터를 여는 게 아니라 닫고서 암흑 물질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뜨고 있던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암흑 물질의 본질이다.
참고
https://journals.aps.org/prl/abstract/10.1103/s2q8-rzb3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로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날마다 우주 한 조각’, ‘별이 빛나는 우주의 과학자들’,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등의 책을 썼으며,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퀀텀 라이프’, ‘코스미그래픽’ 등을 번역했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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